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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름 판타지아 Jan 11. 2022

유년기의 상실을 마주하는 어른

차일드 인 타임 (2017)

아이를 잃은 부모, 공식의 변주 


아이가 실종되고, 부모가 찾아 나서는 스토리는 종종 스크린에 등장한다. 실제로 일어난다면 끔찍한 일이지만, <테이큰> 시리즈를 보면 영화로서 스릴과 오락을 동반하는 소재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만큼 실화 바탕의 영화도 많고, 늘 같은 공식이 되풀이된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아이를 잃는 과정에 대해 러닝타임의 상당 비중을 할애해 상세히 보여주며 그를 통해 서스펜스를 형성하고 추리하여 아이를 어떻게 되찾는지 까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차일드 인 타임>에서는 스티븐(베네딕트 컴버배치)이 네 살짜리 딸인 케이트를 잃어버리는 과정을 상당히 간결하게 보여주고 넘어간다. 대사를 인용하자면, "바로 저기에 있었는데, 없어졌어"라는 한마디로 정리될 정도다.


영화 <차일드 인 타임> 스틸 컷 ⓒ그린나래미디어㈜


케이트가 사라지고 슈퍼마켓을 뛰어다니며 아이를 찾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이 애절하다. 화면이 갑자기 전환되고 집에서 아내 줄리를 마주하고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감정의 변화와 전환이 급해서 굉장히 강한 오프닝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듯 영화는 시작에서 몰아치는 감정을 내세운 뒤, 부부의 달라진 일상을 그리며 서서히 가라앉는 감정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스티븐'이라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캐릭터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기에 스토리에는 구멍이 많고 플롯도 시간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아이의 실종이나 유괴, 그 과정이 어떤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줄리와 스티븐이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어른과 아이, 두 가치관의 대립


플롯이 복잡하여 감정이 주로 남는 영화이긴 하지만, 주요하다고 여겨지는 사건은 일어난다. 스티븐은 극 중에서 아동도서를 집필하는 유명 작가인데, 그의 출판을 담당하며 총리 밑에서 일하는 절친한 친구 '찰스'가 등장한다. 찰스는 아동의 교육에 대한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게 되고, 어느 날 갑자기 위원회에서 사직하게 된다. 역시 위원회에 참석했던 스티븐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줄곧 잃어버린 딸 케이트를 생각하며 관료들의 의견에 맞서기도 한다. 기억에 남았던 논쟁의 중 하나는, 아이가 11~12세가 되기 전까지는 글을 가르치지 말고 내버려 두어야 한다는 관료의 말에 맞서는 스티븐의 태도다. 스티븐은 글을 읽고 쓸 때 아이가 느끼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반박하는데, 이에 대해 결국 그것도 어른의 시점에서 한 생각일 뿐이라며 논쟁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견에 동의를 표한 여성과 스티븐은 '유년기'는 권리이자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다소 정치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위원회의 논쟁은 왜 등장한 걸까? 아마 찰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설명할 열쇠가 바로 이 논쟁이지 않을까 싶다. 위원회를 관둔 찰스는 집에서 점점 아이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이 행동은 찰스 내면의 유년기와 어른으로서의 의무가 충돌한 결과하고 생각된다. 그는 아동을 위한 법안을 만드는 사람인데, 본인이 제출해낸 법안이 결국 아이들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자리에서 물러나 유년기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찰스가 겪는 상황은 어른이 되며 상실한 유년기에 대한 향수이며 되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스티븐이 잃어버린 딸 케이트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그들이 잃은 '유년기'가 케이트를 비롯해 주인공들이 목격하는 아이들의 환영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 <차일드 인 타임> 스틸 컷 ⓒ그린나래미디어㈜


스티븐이 집필하고 있는 책의 내용도 관련이 있다. '물고기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그의 책에는 유년기의 소년과 그렇지 못한 중년 남성이 등장한다. 책 속의 소년은 마치 찰스가 그랬던 것처럼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나무를 타기엔 부적절한 신발을 신은 남성은 그러지 못한다. 소년은 찰스, 나무를 타지 못한 남성은 스티븐이다. 동시에 스티븐은 소년이기도 한데, 그가 욕조에서 숨을 참으며 시간을 재기 때문이다. 소년은 물고기가 되고 싶어 하지만 역시 그러지 못한다. 그들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전부 '아이'를 나타내며, 불가능이 말해주는 것은 '유년기를 되찾을 수 없다', '다시 아이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다.


이 지점이 영화 <칠드런 액트>에서 보여준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아이는 자라면서 많은 것을 배워 어른이 되는데, 정작 어른이 된 그들은 모든 것을 잊고 아이로 돌아가려 하는 아이러니다. 결코 어른은 다시 아이의 입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차일드 인 타임> 스틸 컷 ⓒ그린나래미디어㈜






상실과 극복의 순환


서사에서 갑자기 등장해 의구심을 만들어 준 내용 중 하나는 줄리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 스티븐이 케이트의 환영을 따라가다가 발견한 "The Bell"이라는 작은 가게다. 스티븐은 가게 안에서 케이트와 닮은 여성의 환영을 보게 되고, 마치 그 장소에 와봤다는 느낌을 받아 부모님께 여쭤본다. 스티븐의 어머니는 그를 임신했을 당시 그곳에서 분명히 '스티븐'이라는 느낌이 드는 아이를 봤다며 자신에겐 중요한 날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두 주인공이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아이들의 환영과 연결이 되는 지점인데, 이후 그들에게 태어나는 새로운 아기가 미리 보여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 <차일드 인 타임> 스틸 컷 ⓒ그린나래미디어㈜


결국 케이트의 실종에 관한 사건은 종결되지 않은 채 영화가 마무리된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전화를 받고 뛰어나간 스티븐은 아내 줄리가 출산을 하고 있는 병원에 도착하여 새로운 아이를 맞이하게 된다. 결국 상실의 끝에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극복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별과 상실이라는 감정을 토대로 파편적인 기억과 플롯을 구성한 연출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줄곧 봐왔던 실종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되고 어떻게 해결이 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키기보다는 이미지나 강한 느낌으로 남았던 것들을 추상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이렇듯 <차일드 인 타임>은 있어야 할 곳에, 있었던 곳에 이제는 없는 아이들과 유년기. 잃은 것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분명히 다른 감정이라는 걸 일깨워 주기도 하며 상실 이후의 삶에 대해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원작의 색채가 짙게 남아있긴 하지만 중간중간 비어 있는 스토리라인을 채우기 위해서는 소설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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