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내면의 혼란을 극복하기
늘 그렇듯, 나는 이 책을 읽고 뜬 눈을 곧 감았다. 점점 깨달음은 빨리 휘발되고, 난 그전에 알던 만큼만 알기를 계속한다. 아는 게 있기는 하다면 말이다. 성장이란 손에 넣기 까다로운 것이다. 방해물은 딱딱한 나의 사고뿐만 아니라 영혼의 동반자인 무기력이다. 과연 이 책의 내용을 체화하면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모르겠지만 도움은 될 것 같아서 나를 위해 이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불안과 감정은 다 생각에 불과하다. 이 생각은 나로부터 비롯되지만 내 자체는 아니다. 불쾌한 가능성, 과거의 실수, 두려움, 나약함 등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번뇌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은 거기서 물러나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생각을 하는 자가 아닌 생각을 인식하는 자이다. 생각, 즉 내면의 목소리는 대체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저 마음 속에 풀어내야 할 에너지가 쌓여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지껄이는 것이다. 불안을 불안의 목소리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불안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
계속하여 지껄이는 내면의 목소리가 실존하는 인물이라면 우리는 진작에 절연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분석하고 걱정하면서, 본인의 오류에 대해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 불안증 환자,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 속의 지껄임이다. 우리의 삶은 이 불안증 환자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 즉 '인식하는 자'의 것이어야 한다. 의식보다 더 높거나 깊은 것은 없다. 의식은 순수한 인식이다.
우리 안의 의식, 진정한 영적 존재는 아무런 노력도 의도도 없이 살고 있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차원의 대상들이 우리 앞을 끝없이 지나가고 있다. 중심을 잡고 있지 않으면 어느 대상에 이끌리게 된다. 의식이 다른 대상에 너무 몰입하게 될 경우, 대상 속에서 인식의 느낌이 실종되어 버리고, 우리는 대상을 인식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의식이 안에서 중심을 잡고 있지 않으면 대상에 함몰된다. 그렇게 쓸데없는 불안에 힘을 뺏기고 기력을 잃으며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에너지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에너지는 우리 안에 있고, 그것은 음식이나 숙면 따위와 상관없다. 이 에너지는 언제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이 에너지를 느끼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스스로 그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요가 수행자들은 이 에너지 중추를 차크라라고 부른다. (Chakra: '바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로 에너지의 샘이자 관문 같은 곳)
마음을 닫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보통은 과거 경험에 의한 심리적 요인에 좌우된다. 마음을 열어 두는 궁극의 비결은 닫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보통 자기보호의 수단으로써 마음을 닫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습관이다. 그러나 마음을 닫아거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고 그저 당신을 에너지원으로부터 차단시키고 우리를 자기 속에 가둬놓는다.
삶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우리가 가슴을 닫을 만큼 중요한 일이 되도록 내버려두면 안된다. 힘을 빼고, 상황이 일어나게 하고, 그저 그 상황을 함께 하라. 그 상황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대면하라. 그리고 모든 수단을 다해서 해결하라. 열린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흥분과 열의로써 그 일을 다루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그날의 즐거움이 되게 하라. 시간이 지나면 마음을 닫는 법을 잃어버릴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온 가슴과 영혼으로 삶을 그저 포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경지에 이르면 에너지 레벨은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다.
명심하라, 삶을 사랑한다면 마음을 닫아걸어야 할 것은 아무 데도 없다. 당신이 가슴을 닫아야 할 대상은 아무 데도, 아무것도 없다.
과거로부터 정리되지 않고 남아 있는 고정된 에너지 패턴이 에너지를 막고 가슴을 닫히게 한다. 외부세계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은 우리의 감각을 통해 들어와 내면적 존재에 흔적을 남긴다. 특정한 경험을 내가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 내면에 남는 흔적은 달라진다. 어떠한 일을 겪을 때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닌 감각을 통해 변환된 에너지 패턴이다.
그 에너지가 다른 생각이나 관념에 부딪혀서 마음을 지나가지 못하면 가슴을 통해 풀려나려고 한다. 이것이 감정을 동요하게 한다. 이것을 저항한다면 에너지는 뭉쳐져서 가슴속의 창고에 쑤셔 넣어지고, 인도철학에서 이 처리되지 못한 에너지 패턴을 삼스카라라고 부른다. ('samskara' 산스크리트어로 인상 혹은 각인이라는 뜻)
갓난아이 적부터 지금까지 풀려나지 못한 삼스카라는 아직도 그곳에 있다. 영적 가슴의 밸브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이 각인, 이 삼스카라이다. 이 엉킨 덩어리가 갈수록 커지며 에너지의 흐름을 막는다. 삼스카라가 많이 쌓이면 사람은 우울증에 빠진다. 가슴과 마음에 에너지가 거의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감각이 의식에 도달하기 전에 이 억압된 에너지를 거쳐야 한다.
보통 가슴은 세월이 갈수록 막히고, 삼스카라는 계속 쌓여 간다. 에너지가 싫어서 밀쳐내려고 하거나, 좋아해서 붙잡으려고 애쓸 때 가슴이 막히는 경험이 일어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에너지를 지나가도록 놔둬야 한다. 우리는 저항이나 집착으로 흐름을 막음으로써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대안은 삶을 밀쳐내거나 붙잡지 않고 그저 즐기는 것이다.
이런 경지를 얻으려면 삶의 다양한 경험이 우리 안으로 흘러와서 지나가도록 허락해야 한다. 오래 묵혀 있던 에너지가 다시 나타났다면 지금 그것을 떠나 보내라. 그것은 이렇게 쉽다. 두려움이든 질투든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그저 미소를 지으면 된다. 오랜 세월 깊숙이 저장되어 있던 삼스카라가 드디어 당신을 지나갈 기회를 얻은 것을 기뻐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큰 문제만 생기지 않도록 주위를 단속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보는 모든 것은 그저 마음속의 것들일 뿐 우리가 아니다. 그저 우리가 보는 것들이다. 생각과 감정의 물결을 일으키는 순수한 에너지가 속에서 솟아나고 있고, 그것을 인식하는 의식이 있을 뿐이다.
자유로워지고자 한다면 그것이 모두 동등하게 당신의 인식 앞에 노출되고 풀려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을 닫고 있으면 그것은 결코 노출되지 않는다. 애초에 마음을 닫은 목적이 마음의 예민한 부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므로 그 노출이 아무리 큰 고통을 가져온다고 할지라도 자유를 위해 대가를 기꺼이 지불해야만 한다. 자신을 무수한 조각들로 분열시키고 있는 자신의 부분과 더 이상 동일화되어있기를 거부할 때, 진정으로 성장할 준비가 된 것이다.
의식은 매우 강력한 힘이다. 의식이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면 그 에너지와 힘이 거기에 충전된다. 집중할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주의를 더 많이 요구한다. 보통 이런 식으로 악순환된다. 지나쳐 가는 생각이나 감정으로 시작했던 것이 결국에는 삶에 중심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영혼의 자유를 위해서 치러야 할 유일한 대가는 놓아 보내는 것뿐이다.
두려움도 그저 대상에 불과하다. 이 우주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무수한 대상들 중 하나이다. 당신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놓아 보낼 수도 있고, 아니면 계속 품고 있으면서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도망다닐 수도 있다. 삶이 어떠어떠해야 문제가 없을지 정의해 놓고 매사를 통제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아간다. 보통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사실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사람들과 환경과 상황을 통제하려 하면 할수록 삶이 우리를 공격해 오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문제로부터 자기를 지키려고 애쓰는 삶 자체가 문제를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인식하는 내면의 존재이다. 중심에 머물러 있으면 힘든 경험조차도 음미하고 존중하기를 터득할 수 있다. 생각은 늘 새로운 문제를 낼 것이다.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문제에는 끝이 없다.
한 개인의 인격적 자아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서 그 너머를 탐사해 갈 수 있는 게 가능할까? 저 너머로 가려면 스스로 사물에 갖다 붙이는 한계를 게속하여 넘어가야 한다. 벽을 넘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날마다 무수히 부딪혀 와서 우리의 벽을 무너뜨리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막아낸다. 우리가 자신을 방어하려고 애쓸 때 사실은 그 벽을 지키고 있다.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쌓아 놓은 그것에서는 결코 자신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은 그것을 쌓아올리고 있는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