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타인>을 보고
겉으로는 하루 종일 사람들 손에 잡혀 있는 모양새지만, 실은 사람들을 그 손바닥만한 직육면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요물같은 핸드폰. 그 안에는 우리들의 업무와 일상의 모든 것들이 숨김없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 핸드폰을 친한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함께 공유하는 게임을 시작한 이들이 있다. 그리고 핸드폰을 통해 그들 각자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는 고향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함께 모였다. 의사 커플인 석호와 예진의 집들이에 초대받은 태수와 그의 아내 수현, 준모와 세경 커플, 그리고 영배 일곱 명은 저녁식사를 하며 각자의 핸드폰에 오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게임을 시작한다.
우리가 헤어진다고 하더라도 노력은 했구나 그렇게 할 수 있게...
돈 잘 버는 성형외과 의사 석호와 예쁘고 능력있는 정신과 의사 예진 부부는 좋은 집에 공부 잘하는 딸까지, 누가봐도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완벽한 커플이다. 하지만 석호는 부동산 사기를 당한 사실과, 자신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예진에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한편 예진은 혼전임신으로 너무 일찍 결혼하게 된 자신같은 상황을 딸이 겪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맘에, 딸이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그러나, 먼저 게임을 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아무 비밀이 없어 보이던 예진도 사실은 아주 큰 비밀을 숨기고 있었는데...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사람이었네.
깐깐하고 고루한 남자인 변호사 태수는 아내의 화장부터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자신의 맘에 안 들면 눈치를 주고 지적질하기 바쁘다. 그런 그에게도 비밀이 있다. 바로 밤10시만 되면 핸드폰으로 한 여자의 묘한(?) 사진이 전송되는 것. 게임이 시작되고 불안한 그는 혼자 온 영배를 불러내 핸드폰을 바꿔 달라고 통사정하는데... 과연 그는 이 비밀을 들키지 않고 잘 넘어갈 수 있을까?
그의 아내 수현은 남편에게 존댓말을 하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전업주부로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을 문학반 강좌를 듣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 게임 도중 받은 요양원 홍보 메세지와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팬의 문자로 남편에게 추궁을 받지만, 남편의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며 폭발한다.
난 옛날 여자친구들하고 절대 통화 안 해!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은 준모와 세경 커플은 알콩달콩 신혼티가 줄줄 흐른다. 준모는 세경과 만나기 전에 많은 사업을 벌였다 실패하고, 지금은 세경의 도움으로 레스토랑을 개업해 운영하고 있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석호가 장난으로 보낸 메세지에 필요 이상으로 과민반응하는 그에겐 처음부터 찜찜한 구석이 많아 보인다.
세경 또한 남편 준모에 대한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게임 중, 결혼 전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온 전화로 준모에게 오해를 사지만, 오히려 믿음을 져버린 준모의 비밀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사람의 본성은 월식같아서 잠깐은 가려져도 금방 드러나게 돼 있어.
체육 선생님인 영배는 이혼남이고, 최근에는 학교까지 그만 둔 상태다. 친구들은 현재 사귀고 있는 애인과 같이 올 거라 기대했지만, 그녀가 몸이 안 좋아서 혼자 왔다는 말에 실망한다. 게임 중에 핸드폰을 바꿔 달라는 태수의 부탁을 마지못해 들어 주지만, 갈수록 수습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에 이르자, 급기야 자신의 비밀을 솔직하게 친구들에게 고백하게 된다.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스타일의 한국영화 <완벽한 타인>은 시원한 액션이나 자극적인 장면없이도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원톱이 아닌 일곱 명의 주인공, 한정된 공간에서 주로 대화로만 진행됨에도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과 인물들 사이의 관계변화를 매끄럽게 만들어 나가는 서사의 능수능란함까지 갖췄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제목답게 영화는 핸드폰으로 '우정 그리고 사랑'이라는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생각했던 40년 지기 친구들 사이와 부부 사이를 헤집어 놓는다. 무리와 다르다고 생각되는 친구를 몰래 따돌리고, 겉으론 둘도 없이 친해 보이지만 다른 친구에게는 뒷담화를 하고, 가장 서로 모르는 게 없어야 할 부부 사이에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들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하나.
개인의 하나..
그리고, 비밀의 하나...
영화<인셉션>에 대한 오마주로 생각되는 세경의 결혼반지가 탁자 위에서 돌아가는 장면이 영화의 끝이라 생각했는데, 뒤이어 게임을 하지 않고 다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또 다른 결말이 등장한다. 게임을 했다면 남편 석호의 진심과 소중함을 알게 되었을 예진은 여전히 딴 사람을 그리워하고, 준모의 외도를 모르는 세경은 변함없이 행복하다. 개기월식이 만들어낸 마법이었을까? 수현을 소 닭 보듯하던 태수는 그녀와 작은 침대에 함께 누워 이불을 뒤집어 쓴다.
'완벽'이라는 단어의 단호함이 부담스러운 나는,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완벽한 내 편, 내 사람'이 되어주기 힘든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열면 '완벽한 타인'이라고 생각된 사람도 조금은 내 편, 가끔은 내 사람이 되어주기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