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의 순간, 그리고 타이밍

영화 <너의 결혼식>을 보고

by 영화킬러


연식이 좀 된 나같은 사람이라면, <너의 결혼식>하면 바로 떠오르는 건 그 옛날 '몰랐었어'로 시작되는 윤종신이 부른 바로 그 노래일거다. 유행하던 당시에도 낯간지러운 가사와 청승 멜로디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가사를 다시 찾아보니 '순결한 너의 비밀', '촛불의 약속' 아이구야 왜 부끄러움은 보고 있는 나의 몫인지...





제목은 그래서 별루다 했는데, 주연배우가 우리 깜찍 상큼이 박보영 배우고, "기억하나요? 당신의 첫사랑"이라는 광고 문구에 혹해 보게 됐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엄청 잘하는 전학생 '환승희'가 바로 우리의 여주인공 박보영 배우!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할 미모니 남학생들에게 인기폭발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축복받은 기럭지의 소유자 '황우연'(김영광 배우)은 툭하면 학교에서 주먹질이다. 전학 온 승희를 처음 만난 곳도 싸움질하다 선생님에게 걸려 교무실에서 엎드려벋쳐 하고 있을 때.



키 큰 놈, 쪼매난 놈


자율학습 땡땡이치고 같이 떡볶이 먹으며 쌓여가는 정. 저 모델처럼 쭉 뻗은 장신의 김영광 옆, 그의 어깨까지밖에 안 오는 아담한 박보영이 서 있으니 너무너무 잘 어울린다. 어려서부터 땅꼬마인게 영 불만인 내게 귀에 쏙 들어오는 우연의 대사는 니가 원하면 싸움 안 할게, 사귄다고 해라 뭐 그런 달달한 대사보다 우연이 하는 바로 이말이다.


나 전학왔을 때 164cm였어.
서울내기 다마내기
맨날 놀림만 당하고 맞았었는데
도장다니면서
하루에 우유 세 통씩 마셨더니
일 년만에 이렇게 커서 복수하는거야.


도장에 좀 다닐걸... 하루에 우유 세 통 마실걸... 근데 무슨 도장인지 한 통에 몇 밀리짜리 우윤지는 말 안하네. 하긴 그때 알았어도 운동은 안 했을거구, 유당분해 못하는 전형적 아시아인의 장을 가진 나는 우유 한잔에도 배가 부글부글했으니 그만큼은 먹지도 못 했을거다.



비오는 날, 박스펼쳐 둘이 우산 만들어 뛰어간다. <클래식>의 오마주인가?


승희 :
근데 왜 너는 공부 안 하냐?
대학 안 가?
니네 집에 돈 많냐?
우연 :
공부하는 거 재미없잖아.
책만해도
교과서보다 재밌는게 쌔고 쌨는데...
승희 :
야, 무슨 공부를 재미로 하냐?
인생낭비 그만하고 공부해!
우연 :
야, 팔구십 사는 인생에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이삼년 사는 게 뭐 낭비냐?
승희 :
야, 등신아!
니가 놔 버린 그 이삼년 때문에
팔구십까지 고생하면서 사는 거 아냐.


승희의 생일날, 우연은 승희에게 MP3플레이어를 선물로 주고, 승희는 우연의 손바닥에 그려준 그림처럼 뽀뽀한다.



그렇게 공부가 재미없던 우연은 갑자기 이사 가버린 승희를 '우연히' 찾아내, 사랑의 힘으로 일류대 체육학과에 합격, 그녀와 재회하지만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 한참 후에 길에서 다시 '우연히' 만난 그들, 이번엔 우연에게 여자친구가 있다.


사람을 보고
아, 이 사람이구나 싶은 순간이
3초래
너 3초 얘기 들어봤어?
사람을 보고
아, 이 사람이구나 싶은 순간이 3초래.
처음 보는 순간일 수도 있고
원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갑자기 다르게 보이는 순간...



결국 사랑은 타이밍이다.


우린 왜 항상 엇박자였을까...
결국 사랑은 타이밍이다.
내가 승희를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 보단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게 운명이고 인연인 거다.


타이밍을 탓했지만 결국엔 꽁냥꽁냥 사귀게 되는 둘의 모습은 너무 부러울 정도로 보기 좋다. 그러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우연이 힘든 현실로 괴로워하며 그녀를 만난 걸 후회할까봐 겁난다고 친구에게 하는 말을 들은 환희는 이별을 고하고 외국지사로 떠난다.


그 말을 못 잊는 게 아니야.
니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
그걸 못 잊는거야.


그리고 몇 년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가 찾아오고, 우연에게 결혼할 거라는 소식을 알리고, 결국 그는 그녀의 결혼식에 가는데...






우연과 승희의 아이러니한 엇갈림
3초의 순간을 얘기하는 건 승희지만,
3초의 순간에 그녀에게 반하는 건 우연이고,
우연은 사랑이 결국 타이밍이라고 말하지만,
잘못된 타이밍에 등장해
우연의 맘속 불안함을 알게 되는 건 승희다.


사랑하는 그녀의 결혼식에 가서 그는 뭘 할까?

윤종신의 노래 <너의 결혼식>을 부르며 청승을 떨까?
영화 <졸업>에서처럼 승희 손을 잡고 식장을 뛰쳐 나올까?
그녀에게 다시 한번 사랑을 고백할까?
결말이 궁금하시면, 꽤 어울리는 꺽다리 꼬맹이 커플과 웃을거리도 많은 깨알 조연들의 연기가 보고 싶으시다면, 부담없이 볼만한 영화라 생각된다.

그저 주인공 이름처럼 '우연'이 빈번하고, <클래식>과 <건축학개론>이 연상되지만, 그 둘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살짝 부족한 것만 눈감아 줄 수 있다면 그럭저럭 볼만하다.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 흐르는 박보영의 '내 얘기 좀 들어봐'라는 노래도 참 좋지만 나는 자꾸 이 노래가 생각난다.

신데렐라는 12시♪
우연이는 11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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