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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킬러 Feb 24. 2019

소설을 통한 소설가의 '속죄'

이언 매큐언 <속죄 Atonement>


* 스포일러 지뢰밭이니 원하지 않는 분들은 피해 가시길...

영화<어톤먼트 Atonement>를 십 년 전 베이징에서 먼저 봤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중국 생활 3년 만에 영국식 영어를 들으며 중국어 자막으로 영화를 봤으니 대사 전부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단순 명료하게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고, 여자의 여동생이었던 어린 소녀의 오해로 남자의 삶이 망가졌고, 소녀는 커서 그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로 고것 참 나쁜 년이고, 소설 따위로 속죄가 되겠냐며 흥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소설이 원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읽을 맘이 없었다. 멋지고 아름다운 두 주연배우의 훌륭한 연기를 이미 보았겠다, 내용도 반전도 다 알고 있는데 읽기보다는 베고 자기 편한 두께의 책을 뭐 굳이 읽을 필요가 있겠나 생각했을거다. 그런데 십 년이 지나 이렇게 소설 <속죄>를 읽었고, 이제서야 그 소녀의 '속죄'가 그저 쉽지만은 않았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줄거리

제1부 때는 1935년, 글쓰기를 좋아하는 열세 살 소녀 브리오니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올 오빠를 위해 희곡을 쓰고, 사촌 언니 롤라와 쌍둥이 사촌동생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질 않는다. 그 와중에 우연히 언니 세실리아와 친남매처럼 자란 파출부의 아들 로비 사이에 일어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로비가 언니에게 쓴 불경스러운 편지의 내용을 훔쳐보고, 둘이 서재에서 사랑을 나누려는 장면까지 보게 된 브리오니는 사촌 언니 롤라를 강간한 사람을 로비라고 믿고 증언한다. 

제2부  : 이 일로 로비는 감옥에 간 후,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참전하게 된다. 그는 간호사가 된 세실리아와 잠깐 재회하지만, 전황이 나빠지고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리며 고된 퇴각의 길을 꿋꿋이 버텨낸다. 

제3부  : 한편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브리오니도 언니처럼 간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군인들을 간호하며 지내던 어느 날, 용서를 빌러 언니의 집으로 간 그녀는 언니와 함께 있는 로비를 만나게 되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1999년 런던 : 작가가 된 브리오니는 의사에게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고 일흔일곱 번째 생일을 맞아 저택에 가족들과 모여 생일파티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 될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지독하게 생동감 넘치는 묘사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의 분량 중에서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제1부는 시작부터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브리오니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열세 살 아이답지 못하게 진지하고 장황하기 그지없고, 이런저런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간단히 설명하고 지나가질 않는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왜 그런 집요함과 섬세함이 필요했는지 알 수 있었다. 

브리오니의 엄마 에밀리 탈리스가 편두통으로 침대에 누워 있으며, 쌍둥이들이 목욕하는 소리와 마셜과 롤라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던 걸 왜 굳이 그렇게 길게 설명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고, 롤라가 쌍둥이 동생들에게 공격당한 장면을 본 마셜의 얼굴엔 왜 긁힌 상처가 있었는지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세실리아가 로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되는 과정과 서재에서 둘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은 마치 눈앞에 그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것처럼 격동적이고 에로틱해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킬 정도였다. 

전쟁에서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묘사 또한 생생하기 그지없다. 제2부에서 독일군의 폭격을 피해 가며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덩케르크로 향하는 로비와 그 일행들의 이야기는 바로 영화<덩케르크>의 프리퀄로 찍는다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과연 브리오니만의 잘못일까?


의대 진학이라는 꿈을 눈앞에 둔 청년이 열렬히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까지 얻은 인생의 절정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그것도 열세 살 소녀의 오해에서 비롯된 증언으로. 그가 총검으로 찌르는 상상을 할 정도로 그 아이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고, 죄 없는 사람을 그렇게 만든 그 아이의 잘못은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온전히 브리오니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혼란한 세상을 정돈된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소설을 좋아할 정도로 정리정돈의 욕구를 가진 브리오니에게 자신의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정돈된 삶을 뒤흔드는 일이 하나씩 발생한다. 자신이 쓴 희곡의 주연배우 역할을 사촌 언니 롤라에게 뺏기는 것으로 시작해 언니 세실리아가 로비에게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
까지(브리오니가 보기에는) 보게 된 브리오니는 이 혼돈을 바로잡고 싶었을 것이다. 경찰에게 로비의 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던 롤라는 자신을 강간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무대에서는 슬쩍 비껴 서며 브리오니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준다. 이 정의감에 불타는 꼬마 소설가는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무모한 자신감으로 그 기회를 덥썩 잡고는 당당히 무대에 올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한 가지씩은 좋은 면을 가지고 있다'는 레온의 말을 빌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적어도 로비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이유가 한 가지씩은 있었을 것이다. 엄마 에밀리는 파출부 아들 주제에 '감히' 세실리아를 넘본 로비가 괘씸했으니 그랬을 것이고, 마셜은 자신의 잘못을 대신할 희생양이 필요했을 거고, 롤라는 겁에 질려 혹은 굳이 진범을 밝힐 필요가 없었을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경찰은 자진해서 나선 목격자가 있으니 소녀의 '알고 있다'는 추상적 진술을 '보았다'는 실제적인 진술로 바꾸는 것만으로 족했을 것이다. 

만약에 로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쌍둥이를 찾으러 갔었다면, 실수 없이 평범한 편지를 봉투에 넣기만 했더라면, 브리오니에게 부탁하지 않고 편지를 직접 전달했었다면, 세실리아가 고집부리지 않고 로비의 도움을 받아 꽃병이 깨지지 않았더라면, 둘이 서로의 감정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더라면 과연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 만약에 브리오니가 그날 밤 엄마와 같이 집에 있었다면, 로비의 편지를 몰래 뜯어보지만 않았다면, 분수대에서 일어난 일을 보지 않았다면 그런 실수를 했을까? 나도 이렇게 수많은 가정들을 생각하는데, 그들 자신은 얼마나 수많은 '만약에'를 상상해 보았을까 생각하니 더 마음이 아파진다.                 




소설을 통한 소설가의 '속죄', 그리고 소설을 통한 소설가의 '용서'


1,2,3부를 다 읽고 난 직후,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1999년 브리오니가 쓴 소설 원고라는 걸 알게 된다. 그것도 59년에 걸쳐 여러 번을 다시 고쳐 쓴 여덟 번째 원고다. 그녀는 그 긴 시간 동안 소설가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해, 그 죄로 인해 고통받은 연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끊임없이 속죄하려고 노력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죽어가는 병사를 위해 그의 약혼녀가 되어,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었듯이, 독자를 위해, 그리고 두 연인을 위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간 그들을 소설 속에서 살려내 행복한 시간을 선물한 것이다.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브리오니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소설 <속죄>안의 세계에서는 신 같은 존재인 이언 매큐언은 끊임없이 속죄해왔던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 주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혈관성 치매라는 병으로 자신의 잘못을 조금씩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는 망각이라는 친절을, 작은 용서를 그녀에게 베푼 건 아니었을까? 

그녀를 용서할 자격은 없는 그저 한 명의 독자로, 망각의 파도가 그녀의 기억을 모두 쓸어버리기 전에 소설이 완성되어, 적어도 소설 안에서만이라도 모든 잘못된 일들이 제대로 자리 잡아 정리될 수 있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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