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랜드 플리켓의 <코 파기의 즐거움>
얼마 전 페친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절판된터라 살 수는 없었고 코로나19로 도서관이 무기한 휴관되기 바로 직전에 대출할 수 있었다. 책 표지에 소개된 저자가 '코딱지 연구에 있어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고해서 나름 전문적인 내용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했던 탓에 실망도 컸지만, 제목에 아주 충실하게 갖가지 '코 파기의 즐거움'에 대해 서술하는 것만큼은 이제껏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
위에 나와있는 것처럼 여지껏 듣도보도 못했던 코를 파는 여러가지 방법을 그림으로 상세하게 그리면서까지 소개하고 있고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각 별자리에 따른 코 파기 성향까지 다루고 있다.
전갈자리 (10월 24일 ~ 11월 22일)
많은 작가들이 '자르고 꿰뚫고 돌진하는' 전갈의 능력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들은 여러 면에서 이상적인 코 파기의 명수들이다. 파대는 것을 강박적으로 즐기면서도 숨겨져 있는 것을 발굴하려는 끊임없는 노력, 일하는 동안에도 내내 손가락을 콧구멍에 끼워 넣고 있을 정도의 고집과 끈기가 더불어 잘 발달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열심들인지! 아주 미세한 퇴적물까지 샅샅이 파헤치려는 열정과 고도의 집중력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할 지경이다. 예로부터 전갈자리 사람들은 뛰어난 외과 의사나 군인, 탐험가, 리더로 유명했다. 코 파기의 명수가 되기 위해 그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마틴 루터와 드골 장군 둘 다 전갈자리인데, 이들의 초상화를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성장과정을 지켜보아왔던 코딱지에 관심이 많은 초등학생 소년(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최대한의 예의를 지켰음)과 함께 이 책을 봤다. 그의 별자리인 전갈자리 사람들의 코 파기 성향을 보고는 소년 본인도 자신이 코 파기의 명수임을 인정했다. 서너 살때는 코를 파는 것뿐 아니라, 그 결과물을 즐겨 먹었던 소년에게 왜 그렇게 자꾸 먹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었다. 눈꼽은 먹기에는 양이 너무 적고, 귀지는 너무 건조해서 못먹겠고, 코딱지는 양도 적절하고 촉촉해서 먹기 좋다고. 자기 것은 블루베리맛이라고. 왜 요즘은 안 먹냐는 물음에 점점 커가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코딱지 맛이 변했다고 한다. 예전만큼 달지않고 좀 더 짜졌다나 뭐라나.
가끔 책을 빌려보는 게 찜찜할 때가 있다. 책 제목때문에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이 책에도 이렇게 떡 하니 누군가가 자신의 즐거움의 결과를 남들에게도 보여주려 노력한 흔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코를 파줄 수도 있나?
허락 없이 타인의 코를 파는 행동은 절대 금물이다.
자기 코를 마음대로 파는 것은 괜찮다.
자기 친구를 마음대로 고르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친구의 코를 마음대로 파서는 절대 안 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적혀 있었다. 한 문장을 꼭 더 추가하고 싶다. "그리고 굳이 자기 코를 파서 타인에게 보여 줄 필요는 없다. 부디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만족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