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킬러 Apr 20. 2020

입은 설사병, 타자기는 변비

<다시 태어나다>(수전 손택의 일기와 노트 1947~1963) 


미국의 유명한 예술평론가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 극작가, 연극연출자 그리고 영화감독까지. 매번 수전 손택의 이력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했는지 궁금했었다. 그녀의 책 중에서 가장 유명한 평론집 <해석에 반대하다>나 소설을 택하지 않고 그녀의 일기와 사적인 기록인 이 책을 가장 먼저 선택하게 된 것도 바로 그 이유때문이다.


백여 권이나 된다는 그녀가 남긴 일기 중, 이 책은 그녀가 버클리대에 들어갔다는15세 전후를 시작으로 30세까지의 기록이 실려 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읽고 싶은 책들을 메모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에 대한 숨김없는 사적인 감정들을 고스란히 적었다.   




결혼을 발명한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그 사람은 천재적인 고문 기술자였다.



자신이 소녀로 자라는 것을 원치않으며 가슴을 도려내 버릴 거라고 말했던 그녀가 17세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결혼생활로 자신의 개성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그녀에게 결혼이란 엄청난 고통일 수 밖에 없었음을 이 한 문장으로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입은 설사병, 타자기는 변비에 걸렸다.
형편없어도 상관없다.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쓰는 것뿐이다.
......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명료하고, 혼자여야 한다.



끊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왕성한 활동을 했던 그녀에게도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가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그녀답게 짧고도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마음에 쏙 와닿는 유머러스한 비유도 잊지 않으며. 또한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에게 쾌감을 주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아름다운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은 아프다.
상대가 언제든 내 껍질을 들고 
떠나 버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산 채로 껍질을 벗기라고 
몸을 다 내놓고 있는 기분이다.



늙어간다는 두려움은
지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인식에서
탄생한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살아갔던 그녀가 일기에 기록한 사랑과 늙음에 대한 단상을 읽으며 그녀가 왜 우리의 삶을 닮은 예술분야 전반에 대한 비평에 탁월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일기를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것이 아닌 자아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담는 매체로 간주하며 자신의 삶에 대안을 제시하는 글쓰기라고 생각한다는 그녀의 주장에 설득되어, 나도 텅 비어있는 다이어리를 다시 채워볼까하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붙임 : 그녀가 매일 목욕을 하고 열흘에 한 번씩 머리를 감았다는 기록에 정말 깜짝 놀랐다. 머리를 자주 감지 않으면 머릿속 지식이 달아나지 않고 오랫동안 머물러 주는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