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이전의 영화 제작

필름, 컴퓨터가 없는 영화 세상의 폭군.

by filmni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용어를 정리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글을 읽으면서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컴퓨터는 단순히 데스크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 글에서 언급되는 컴퓨터는 영상제작에 사용되는 모든 컴퓨터 장치 및 장비를 일컫는다. 즉 디지털 영상 제작 장비와 기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디지털카메라도 이 컴퓨터 영역에 포함될 것이다. 반대로 컴퓨터라 할지라도 디지털 영상이 등장하기 이전의 컴퓨터나 관여하지 않는 컴퓨터는 이 글에서 말하는 ‘컴퓨터’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분의 집에 있는 컴퓨터나 노트북 컴퓨터도 포함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 주기 바란다. 그에 따라 제목에 쓰여있는 ‘컴퓨터 이전의 영화’는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 이전의 영화’를 의미한다. 이점을 참고해 주길 바란다.


영화 제작이라고 하면, 돌아가는 카메라와 밝은 조명, 그리고 그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간단히 말해서 촬영 현장이다. 그만큼 촬영은 영화 제작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촬영의 핵심은 무엇일까? 배우의 연기력, 미술감독과 의상 디자이너의 완벽한 배경과 옷, 조명감독이 자아내는 빛의 마술, 촬영감독의 카메라 앵글과 움직임, 감독의 연출력...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 이렇게 판단하기 어려운 인간의 영역은 그냥 놔두자. 대신, 물질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보자. 촬영하는 데 있어서 뭐가 가장 중요한 물건을 무엇일까? 촬영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카메라다. 카메라는 영상을 기록하는 가장 핵심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배우가 없어도, 조명이 없어도, 의상과 미술이 없어도 심지어는 촬영감독이 없어도 카메라만 있으면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영상이 디지털화되면서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고 편집까지 할 수 있다. 영화 제작의 핵심 작업이 손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만큼 영상 제작 작업이 편리해지고 간결해졌다. 그렇다면 디지털 영상이 등장하기 이전의 영화 제작은 어땠을까? 여전히 카메라가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당시의 영화제작 상황을 살펴보고 난 후 알아보도록 하자.


2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98년, 어떡하면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까? 영화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 할까? 인맥을 쌓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필수 코스는 아니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필모그래피다. 필모그래피란 영화 제작 경력을 의미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연출부에 들어가서 감독의 노예가 되어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내며, 영화 연출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감독을 보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행히, 감독의 이름값이 있어서 극장에 개봉이 되고 관람객 수도 적지 않다면 박봉(운이 좋다면 연봉 500만 원)에 시달린 고된 시간들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영화가 끝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엔딩 크레디트(영화 제작진과 출연진 이름이 올라가는 화면)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면 더욱 그렇다. 그 이름 한 줄이 경력이고 필모그래피다.


그러나 필모그래피를 높이 쌓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감독과 연출부의 관계는 일종의 도제 시스템이다. 그것은 명장이 제자를 키우는 시스템이다. 그 속에서 제자가 명장의 지위를 얻기란 쉽지 않다. 명장이 은퇴하거나 죽지 않는 한 제자가 명장을 대체하는 경우는 없다. 감독 데뷔도 이와 비슷하다. 명장이 허락을 해야만 감독이 될 수 있다. 감독이 되고 싶은 입장에서는 너무 오랜 기다림을 요구한다. 이런 도제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려면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감독 지망생들이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는 유일한 황금티켓은 바로 ‘단편영화’ 다. 극장에서 상영도 되지 않는 단편영화들이 얼마나 많이 제작되는지 알면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다. 수익도 내지 못하고 제작비가 고스란히 적자로 기록될 이런 영화들은 왜 제작되는 것일까? 단편영화의 존재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그것은 메인 코스로 가기 위한 애피타이저다.


감독으로 데뷔하려면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감독의 자질이 있는지 제작자에게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실력은 공허한 말로 설득할 수 없다. 직접 보여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아직 감독으로 데뷔를 못했으니 아직 연출한 영화가 없다. 그렇다고 영화를 제작할만한 금전적인 능력도 없다. 그래서 감독들은 가진 돈을 탈탈 털어서 자신의 재정이 허락하는 영화, 즉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된 단편영화들이 영화제에 출품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상이라도 받으면 제작자들이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감독에 데뷔하는 것이다. 그러면, 단편 영화를 하나 제작하는 데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할까?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 여러개의 단편을 재활용한 장편영화였다.



현재 충무로에서 인정받고 있는 류승완 감독의 경우,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장편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메이저 배급사들의 투자를 받지 않은 독립영화였지만, 영화가 입소문을 타고 상영관이 확대되면서 결국 류승완 감독이 상업영화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해 준 영화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비록 장편영화이긴 했지만, 사실상 단편영화 4개의 에피소드를 붙여서 하나의 장편 영화로 재구성한 독특한 형식을 취한 영화다. 이런 형식을 취했던 이유 중 하나는 류승완 감독이 만든 단편영화들을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첫 번째 장 <패싸움>과 세 번째 장 <현대인>은 각각 1998년과 1999년에 영화제에 출품되고 수상도 했던 단편영화들이다. 기존의 단편 영화에 다른 두 편을 더 추가로 촬영해서 한 편의 장편영화로 완성한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처음 단편영화를 제작할 단계부터 이런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영화 제작비를 개인이 감당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감독에게 영화 제작비를 선뜻 내줄 제작자는 없다. 그래서 류승완 감독은 단편영화로 자신의 연출력을 검증받고 동시에 장편영화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촬영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내고 현재의 메이저 영화감독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비록 단편 영화들을 짜깁기했지만 류승완 감독에 따르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제작하는 데에 1억 원 정도 들였다고 했다. 20년 전의 독립영화 치고는 매우 큰 제작비였다.


금수저로 태어나 부족함이 없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영화감독 지망생들은 돈 없고 가난하며 최저임금 알바로 연명하는 학생들이다. 이런 금전적인 제약 때문에 단편영화를 찍을 때, 많은 부분을 현실과 타협을 한다. 그래서 값비싼 장비는 접어두고 학교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장비를 대여한다. 조명, 마이크, 카메라 정도다. 나머지 스탭과 배우들은 선후배 인맥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촬영하는 동안 식비 정도는 감독의 주머니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단편영화를 제작하는데 돈이 들어갈 곳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 복병은 따로 있다. 촬영이 시작되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모든 것이 돈이다.




배우와 스탭에 장비까지 다 갖춰져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 돈이 들어가는 걸까? 당연한 의문이다. 우리가 대부분의 디지털 장비에서 쉽게 존재감을 잊는 장치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저장매체다. 대부분의 디지털 저장매체는 본체에 딸려 나오기 때문에 별도의 매체로써 인식을 안 하게 된다. 그러나 저장매체는 분명히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특히 용량이 부족할 때 더욱 그렇다. 연필은 종이가 필요하고 물감은 스케치북이 필요하다. 디지털 장비에는 하드디스크나 그와 동등한 기능을 가진 메모리 장치가 필요하다. 디지털카메라에 메모리 카드가 들어가는 것처럼, 영화에 사용되는 카메라에도 용량이 더 크고 빠른 저장 디스크가 사용된다. 하지만 지금은 20년 전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현재 영화 촬영에 사용되는 카메라는 디지털 장치가 아니다. 따라서 메모리카드나 하드디스크 같은 저장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 대신 ‘필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단편영화 제작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필름은 가로 폭의 길이에 따라 70mm, 35mm, 16mm, 8mm로 나뉜다. 숫자가 클수록 스크린 화면의 가로 폭이 길어진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필름의 폭의 길이와 상관없이 모든 영화는 1초에 24장의 필름이 돌아간다. 즉 초당 24 프레임이 소비된다. 필름을 생산하는 회사는 몇몇 회사가 있긴 하지만 영화 필름은 사실상 코닥이 독점하고 있었다. 일본 후지사도 영화 필름을 생산하지만, 코닥의 아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코닥 본사가 미국에 있다 보니 필름의 판매단위는 피트(feet)다. 1피트는 우리나라의 1자와 비슷하다. 약 30센티미터다. 30 센티미터면 대략적으로 24 프레임이 들어간다. 영화로 치면 1초 분량의 길이다. 35미리 필름은 1피트에 천 원 정도다. 즉 카메라에서 촬영이 시작되면 무조건 초당 천 원씩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는 영화 기록 매체 필름. 독립영화 제작비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35미리 필름으로 5분짜리 단편영화를 제작하면 비용은 얼마나 들까? 1초에 천 원이니 5분 정도 촬영하면 30만 원이 들어간다. 그럼 제작비 30만 원이면 끝일까? 그렇지 않다. 일단 필름 값만 150만 원은 들어간다. 그것도 매우 잘 끝났을 때의 일이다. 왜냐하면 엔지(NG : No good, 촬영 시 의도했던 화면이 아니어서 재촬영을 해야 하는 상태) 때문이다. 배우들이 대사를 틀릴 수도 있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개가 짖어서 오디오에 원하지 않는 소리가 들어갈 수도 있다. 분장이 지워질 수도 있다. 연기가 마음에 안들 수도 있다. 이런 우발적인 사건들이 도처에 숨어서 영화 제작 과정 내내 발목을 붙잡고 필름의 소비를 증가시킨다.

운이 좋아서 필름 소모량을 최소로 하고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쳤다고 하자, 그래도 영화 제작은 끝난 것이 아니다. 후반 작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후반 작업은 주로 편집과 사운드(음향과 음악) 작업이다. 물론 컴퓨터로 색보정을 하거나 특수효과를 입히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20년 전이다. 그런 경우는 돈 많은 메이저 영화사에서나 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작업이다. 영화를 편집하려면 우선 촬영된 필름을 현상해야 한다. 물론 이것도 다 돈이다. 현상소에다 맡겨야 하는데 역시 필름 1자 단위로 요금이 청구된다. 편집이 완성되고 나면 음악과 음향을 추가한다. 녹음실을 대여해야 한다. 역시 다 돈이다. 녹음실은 시간당 요금이 청구된다.

이렇게 화면과 사운드가 다 완성되고 나면, 그것을 다시 상영 가능한 필름으로 프린트(현상) 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하나의 영화 영화 제작 과정이 마무리된다. 이 모든 후반 작업이 다 돈이다. 따라서 아무리 싸게 제작한다고 하더라도 5분짜리 단편영화에도 필름값과 현상료, 녹음비용 그리고 기타 장비 대여료로 5백만 원은 들어간다. 하지만, 학생의 입장에서 좋지도 않은 장비를 가지고 어지간한 창의력이 아니고서는 5분 길이의 고퀄의 단편을 제작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짧은 영화를 찍는다 하더라도 극 영화의 형식을 취한다면 최소한의 내러티브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10분 이상의 분량이 요구된다. 따라서 재촬영을 최소한으로 할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필름은 20분 정도의 분량이 필요하다. 35미리 필름 20분 분량은 육백만 원이다. 다른 후반 작업까지 고려하면 천만 원은 족히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당연히 더 싼 가격의 필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학과의 졸업생들은 16미리 필름을 이용한다. 16미리는 화질도 떨어지고 화면 비율도 4 대 3으로 영화보다는 텔레 지젼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미리는 35미리의 반 값이다. 이것은 돈 없는 대학생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다. 과거 단편영화들은 16:9 비율이 아닌 4:3 비율의 화면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20년 전의 영화 제작 방식이다. 영화도 책이나 그림처럼 일종의 기록을 위한 매체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필름 위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필름 기술의 발달은 영화의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의 예술적 측면부터 제작과 배급이라는 상업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영화 제작 전 영역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상황이 달라졌다.


한 때, 세계에서 제작되는 영화의 90퍼센트 이상을 담당했던 필름회사 코닥은 이제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필름은 사진기뿐만 아니라 영화사(史)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그 덕분에 십 수년 동안 한국영화들을 독점하다시피 현상해 온 한국 최대의 필름 현상소, 세방현상소도 문을 닫았다. 현상소가 소유하고 있던 원본 필름들은 한국영상원 자료원에 기증했다고 한다. 영화 카메라의 대명사였던 아리(ARRI)는 한 대에 2억짜리 카메라를 생산하면서도 없어서 못 팔았다. 하지만 현재 아리 카메라의 명성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필름과 관련된 모든 산업들이 사라졌거나 심각한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시작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영화 편집 작업에 처음으로 디지털 방식이 도입되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편집은 필름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디지털 방식으로 변환시킴으로써, 편리함을 도모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필름 회사와 카메라 회사는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편리해진 후반 작업을 더 환영했다. 디지털 편집의 등장이 필름과 필름 카메라에 대한 수요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 과정에 컴퓨터가 등장했어도 여전히 필름은 자신의 왕좌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디지털 영상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영향력은 미미했다. 그 이유는 다음 글에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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