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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석 Feb 15. 2018

프롤로그, 파밍 보이즈

그리고 월간농터뷰





                                                     

프롤로그, 파밍 보이즈                                                              


  돌이켜보니 2017년은 참 바쁜 한 해였다. <파밍 보이즈>가 7월 13일에 극장 개봉하고 나서 몇 주 동안 정신없이 시사회를 다녔다. 영화 상영 덕분에 많은 곳에서 강연회 및 단체 상영 섭외가 들어왔다. 영화를 개봉하는 것 자체로도 너무 감사한 일인데, 이로 인해 감사한 것들이 더 풍성해졌다.


파밍보이즈 팀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시사회 무대인사 [출처 시연누나의 핸드폰]


  처음 '유반장'(팀의 리더 형)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다고 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카메라 한 번 제대로 다뤄본 적 없는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금방 포기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유반장이 좀처럼 포기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비는 늘어났고, 어느덧 촬영에 집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누구나 처음 하는 것에 서툴게 마련인데 나 역시 촬영이 처음이라 많이 혼났다. 유반장은 그 당시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혼난 기억밖에 없다.


  아침 햇살에 눈을 뜨면 텐트를 걷으면서 촬영을 시작했다. 정말 잠자는 몇 시간을 제외하고서는 온종일 카메라를 켰다. 밥을 먹을 때에도, 누군가와 잡담할 때에도 늘 카메라는 켜져 있었다. 방법을 모르니 무엇이든 촬영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그럼에도 정말 명장면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은 늘 놓치기 십상이었다. 촬영에 점점 더 욕심을 낼수록 아쉬움도 커져갔다. 촬영만 했으면 조금 쉬웠으려나? 우리는 출연자이면서 동시에 촬영자였다. 그래서 늘 쉼이 없었다.


  농장에 도착하면 제법 익숙해진 몸놀림으로 누구는 촬영을 하고 누구는 질문을 던졌다. 비록 착각일 수는 있겠지만 비주얼 담당인 내가 주로 인터뷰를 맡았다.


  처음에는 농부들의 눈치가 많이 보였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촬영을 해도 될지, 우리로 인해 그들의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하지만 나의 우려와 달리 농부들은 언제나 맘 편히 촬영할 수 있도록, 잠자리나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게 늘 세심하게 챙겨 주었다. 그래서 헤어질 때 더 아쉽고 슬펐나 보다.


늘 야외 취침을 해야 했던 시절 회상[출처 파밍보이즈 페이스북 홈페이지]

  

  우리들의 짧고도 길었던 2년간의 농업 세계일주는 끝이 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현재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두현이'(팀의 멤버 나랑 동갑)는 고향인 산청에서 부모님이 하시던 딸기 농사를 물려받아서 어엿한 농부가 되었다. 농장 식구들이 제법 늘어났고, 여행을 하면서 보고 배웠던 것들을 하나씩 접목하면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가 만났던 세계 각국의 농부들처럼 두현이도 본인만의 철학을 가진 멋진 농부가 되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유반장은 한국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려고 했지만, 아무런 기반이 없어서 맨땅에 헤딩을 몇 번 하더니 '코부기 하우스'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Cooperation'의 와 주택 모양이 거북이와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인 코부기. 농사를 짓기 위해 본인이 지낼 공간부터 마련하자는 취지였는데, 6평 남짓한 이동식 목조주택이 어느덧 3호까지 완성된 상태라고 한다. 코부기 프로젝트를 통해 농사를 꿈꾸는 청년들의 주거지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 유반장님의 가장 최근 소식인데 아는 지인으로부터 농지를 무상으로 임대하게 되어 농사 지을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나랑 같이 농사짓자고만 안 한다면 형님을 늘 응원할 예정이다.


예비 농부 유반장[출처 : 유반장 블로그]                                        딸기 농부 권두현[출처 : 영화사 진진]


  나는 생활협동조합에 취업했다. 농업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농업 관련 분야에서 일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아마 여행의 영향이 많이 컸던 것 같기도 한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농촌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면서부터 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7년 전, 농자재 도매점에서 유반장이랑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유반장은 농자재를 작은 소매점에 납품하는 일을 했고, 나는 농자재 입고부터 하역 그리고 판매까지 매장 내에서 다양한 일들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많은 농촌의 어르신분들을 만나 뵈었다. 종종 어르신들께 혼나곤 했는데 늘 같은 이유였다. '젊은 사람들은 농촌에서 일하기 싫어한다' , '농촌의 고령화는 심각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농촌에는 희망이 없는 듯 보였다. 어렴풋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농업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농촌을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충남 홍성군 풀무 마을에서 유기농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 [출처 유반장의 블로그]












그리고 월간농터뷰


  나는 올해 '월간농터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계획 중이다. 월간은 우리가 아는 의미대로 한 달에 한 번씩을 의미하고, 농터뷰는 '농부를 인터뷰하다'의 줄임말이다.


  매월 한 명의 농부를 선정해서, 인터뷰한 내용을 연재할 것이다. 어떤 농부를 인터뷰할 것인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겠지만 일단은 젊은 농부, 청년 농부를 위주로 인터뷰하려고 한다. 그래야 조금 더 또래의 친구들에게 공감 가는 농업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월간농터뷰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은 건, 늘 생각만 해왔던 농업의 중요성을 어떤 형태로든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올해 읽었던 책들 속에서 얻은 교훈 중에 '생각에만 갇혀 있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라'는 말을 살아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른이 되니, 내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농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농업의 중요성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월간농터뷰를 연재해 보려고 한다.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월간농터뷰를 통해 농업과 농촌에 대해 그리고 농부에 대해 얕게든 깊게든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그러했듯이, 더 많은 사람들이 농부의 삶과 철학 속에서 자연과 함께 일하는 기분을 만끽하며, 땀을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다만 두려움이 있다면 늘 함께 해왔던 일을 동료들 없이 내가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홀로서기는 참 쉬우면서도 어렵다.


  월간농터뷰는 인터뷰가 전문인 나에게 딱 어울리는 취미이다. 덤으로 1년 동안 농촌의 싱그러운 풍경들을 내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게 되어 벌써부터 들뜬 기분이다. 서울에 올라와 한동안 취업하느라 바깥바람을 쐰 적이 많이 없었는데 올 한 해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농촌은 어떤 모습일지 내심 설렌다. 그리고 어떤 '농부'들을 만날지, 그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어떨지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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