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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석 Feb 22. 2018

산청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권두현 농부를 만나다

월간농터뷰 [1월호] 인물 편






고민 그리고 고민


  월간농터뷰를 연재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인터뷰할 대상인 청년 농부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농업' 키워드를 넣고, 조금만 검색해보면 무수히 많은 청년 농부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정작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내가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일까? 좀처럼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고 있을 때, '인터뷰할 농부를 정할 때 꼭 기준이 있어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못해도 12명의 농부들을 만날 텐데, 모르긴 해도 농사를 시작한 계기가 다를 것이다. 아마 키우는 농작물도 다를 테고, 농업에 대한 가치관도 다를 것이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서 물려받은 사람도 있을 테고, 갑자기 직장에 다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귀농 귀촌한 케이스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케이스가 있을지도.


  어쨌든 결론은 어떤 농부든 빨리 만나야 되는 게 첫 번째이고, 그들이 들려줄 이야기들이 각각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막연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하지만 첫 번째 고민을 끝내 놓고, 얼마 못 가서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인터뷰는 얼마큼 분량을 만들어야 할지, 어떤 내용들로 질문을 구성해야 할지. 하나부터 열 가지 생각할 것들이 더욱 쌓였다. 괜히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한 것일까, 시작하기도 전에 기운이 다 빠졌다.

  

인터뷰를 부탁하려고 두현이에게 카카오톡 보낸  매세지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두현이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두현이는 청년 농부이자 흔쾌히 내 인터뷰를 수락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 딸기 수확철이라 제일 바쁜 시기라는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서둘러 두현이에게 연락을 했다. 간단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 얘기했다. 한 달에 한 명씩 농부들을 찾아가서 직접 그들을 취재한 내용을 연재하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 두현이는 특유의 긍정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며' 오히려 나를 독려해줬다. 그리고 1월 중에 스케줄을 잡고 다시 연락을 준다 하니, 언제든 내려오라며 환영한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첫 번째 농부로 친구인 두현이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불안한 출발

  

  아침에 네이버 날씨를 봤는데 오늘이 하필이면 최강 한파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인터뷰 날짜를 바꿔야 하나, 싶을 만큼 날씨가 추웠다.


  산청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두현이와 인터뷰할 내용들을 정리하려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전원이 켜지질 않았다. 너무 당황스러워 여기저기 살펴보니 배터리가 터져있고 노트북 밑 부분이 벌어져 있었다. 분명 가방을 던지거나 노트북을 떨어뜨린 기억은 없었다. 날씨도 춥고 노트북도 고장 나고, 여러모로 출발이 좋지가 않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눈을 떠보니 산청 원지 터미널이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하얀색 트럭 옆에 두현이와 두현이의 여자 친구는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도로가 조금 막혀서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 늦었지만, 두현이는 괜찮다며 얼른 밥부터 먹자고 했다.


  간단히 저녁을 먹으려던 내 생각과는 달리 우리는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두현이는 늘 산청에 올 때마다 내게 고기를 대접했다. 내 추측이지만 시골인심인 것 같기도 하고, 귀한 사람에게 귀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번에 두현이를 만나면 고기를 대접하는 이유를 물어봐야겠다.


권두현 농부를 파헤치다


  저녁을 먹고서 곧바로 카페로 향했다. 내일 새벽부터 농사일을 시작할 두현이를 생각해서라도 빠르게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함께 여행했던 두현이를 인터뷰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어색했다. 물론 여행 중에 촬영을 목적으로 틈틈이 인터뷰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두현이를 인터뷰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주문한 아이스커피를 쭉 들이키고 나서 두현이에게 조심스럽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농사를 짓게 된 계기는?

  농업 세계일주가 끝나고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는데, 사람들이 농사를 짓게 된 계기에 대해 많이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했던 얘기가 특별한 계기는 없다고 대답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한 날은 뒷산에 올라가서 마을 풍경을 바라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농사를 짓는다기 보다는 막연하게나마, 여기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농사만큼 건강하고, 정직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조선공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재미도 느꼈고 비전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의 놀이터라고 생각했던, 우리 동네에서 농사를 짓고 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감하게 원예학과로 편입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농사를 짓게 된 스토리다.

  

일리네어 힙합 크루를 좋아하는 농부 권두현


농사를 시작할 때 걱정은 없었는지?


  원예학과에 편입하기 전,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왜냐하면 농부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고,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시키는 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성격 자체가 뭔가를 하기 전에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뭔가를 하면서, 부딪치면서 이겨내는 스타일이다.


  농대에 편입하고 난 후에 학과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견학도 60~70군데 정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조금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대학교에서 공부도 했고 견학도 많이 다녔으니, 나중에 농사를 지으면 내가 부모님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농업 세계일주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다음날 곧바로 농장에 투입되었다. 어머니가 무릎이 조금 안 좋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시는 바람에 내가 도맡아서 농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책에서 배우던 이론과는 달리 실제로 농사를 짓게 되니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수확, 선별, 포장, 납품 거기다 작물 관리까지 전 과정을 거의 홀로 책임지게 되었다. 그때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고, 부모님 밑에서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농사일을 시작했던 첫 해에는 경험 부족으로 매출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실패를 겪었다고 해서 주저앉기보다는 이 실패를 경험 삼아 일어서기로 결심했다.

  비록 농장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좋지는 못했지만, 다음번에는 보란 듯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작년의 실패를 딛고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전년도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달성할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찬양군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농부 권두현




부모님 때문에 딸기 농사를 시작하게 된 건지?

 

  조선공학과에 다니던 시절 대학교 친구들을 산청에 초대한 적이 있다. 우리 동네 구경도 시켜주고 고기도 구워 먹을 겸 불렀는데, 친구들이 비닐하우스에서 딸기 재배하는 것을 처음 봤다고 해서 조금 놀랐다. 때마침 딸기 수확철이라 친구들이 딸기를 직접 따 볼 수 있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친구들은 딸기 따는 게 재밌다며 즐거워했다.


  비록 내가 농사를 지은 건 아니지만 친구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그리고 딸기라는 작물이 사람들에게 매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나중에 농사를 짓게 된다면, 딸기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으레 부모님이 딸기 농사를 지으시니깐 나도 딸기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어릴 때부터 딸기를 보고 자라왔고, 곧바로 딸기 농사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으니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꼭 전하고 하고 싶다. 부모님이 딸기 농부 셔서 딸기 농사를 물려받은 건 아니다. 내 나름대로 딸기에 애정을 갖게 되어 고심 끝에 딸기 농사를 짓게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딸기의 매력을 알게 해줄 수 있는, 그런 농부가 되고 싶다.


3년차 딸기 농부 권두현

  

  두현이는 할 말이 더 있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 동네에서 농사를 짓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동네라 추억이 많다. 여름에는 동근이, 민범이랑 같이 강가에서 뛰어놀고, 겨울 되면 산에 올라가서 썰매 타고. 내가 자주 가는 뒷산이 있는데 거기서 보는 동네 풍경이 진짜 예술이다.

  사실 지금은 여건이 조금 부족해서 바로 옆동네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부지런히 일해서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오려고 계획 중이다.  


  두현이의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여행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두현이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면 꼭 아이폰에 찍어두었던 사진 한 장을 보여주곤 했다. 그 사진 속 시골 풍경과 에메랄드 빛 강물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다.


  두현이가 언젠가 내게 해줬던 얘기가 있는데, 본인은 나중에 마을에서 이장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니, 강누 마을이 너무 좋아서 더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도시에서 자라서 별로 농촌에 대한 애정은 없었지만, 두현이와 함께 했던 시간 동안 농촌이 아름답고 좋은 곳이라고 느꼈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위치한 아름다운 강누마을


 농부에 대한 만족감은 얼마나 되는지?

  농부로서의 직업에 대한 만족감은 높다.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하고 자라서 일이 몸에 배어 있고, 스스로 체력관리도 잘하는 편이라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덜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후배들과 일할 때 육체적으로 힘든 일 이 있으면, 내가 그 일을 조금 더 맡게 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비록 육체적으로 몸은 힘들지만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고, 내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아무래도 농사는 육체적인 노동이 많다 보니, 일을 할 때 힘들다고 생각되면 만족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농사일이 체질에 잘 맞는 것 같다.


  엊그제, 서울 롯데월드 몰에 있는 카페 직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동엽이가 관리 중인 인스타그램에서 우리 농장을 발견해서 연락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청년들이 농사를 짓고, 농약을 치지 않고 딸기를 재배한다는 점이 본인들이 찾던 농장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한 빨리, 우리 농가의 딸기를 납품받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 같이 전화를 받던 식구들이 얼마나 기뻐하며 놀라 하던지, 그 표정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비록 작은 성과였지만, 농장의 가치를 인정받고 농부로서 보람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순간이었다.


  누구나 알듯이 농사일은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고단한 직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 일을 하고 토양에서 생명을 가꾸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또한 스스로가 더 나은 농장을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일을 하다 보니, 더 부지런히 자율적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더욱 멋진 농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흑투성이가 된 농부 권두현 손 클로즈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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