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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석 Mar 06. 2018

권두현 농부가 들려주는 딸기재배 이야기

월간농터뷰 [1월호] 작물 편






딸기 농사에 대해 물어보다



두현이와 첫 만남 회상

  

  대학 시절 두현이와 처음 만난 곳은 내가 다니던 대학교 앞 천사다방이었다. 당시 두현이는 필리핀 어학연수를 준비 중이었고, 나와 유반장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호주로 가려고 계획 중이었다. 우리는 우영 형님을 통해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는데, 아마도 형님은 농업에 관심 많은 청년들이 서로 알고 지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소개해 주셨던 것 같다.


  그 날 유반장은 약속이 있어서 나만 두현이를 만나러 갔다. 예상과는 달리, 두현이가 카페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멋쩍게 인사를 나누고서, 간단히 서로에 대해 소개를 했다. 테이블 위에는 딸기 한 팩이 올려져 있었는데, 본인이 직접 수확해 왔다며 나중에 한 번 먹어보라고 했다. 그때 두현이네가 시골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주 로드트립 중 두현이와 함께 진지한 얘기를 하던 시절 [출처 유반장의 블로그]


  우리는 농업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농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여행을 다니면서 어떻게 농업을 공부할 것인지. 이것에 대해 주로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당시 유반장과 나는 호주를 시작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장기적인 세계일주를 계획하고 있었고, 두현 역시 기회가 된다면 후배들과 함께 비슷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얘기했다.


  내가 농사보다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농업에 관심이 있었다면, 두현이는 농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농업기술에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나는 더 많은 청년들이 농촌으로 유입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두현이는 산청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나는 당시만 해도 농부가 되려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 두현이가 농부가 되고 싶다는 것이 신기했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두현이와 대화를 통해서 조금 더 농업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단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호주에서 우리가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람의 인연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본격적으로 딸기농사를 파헤치다

  

  나의 우려와 달리 인터뷰는 잘 진행되고 있다. 잠깐 어색했던 시간이 지나니, 두현이도 나도 예전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했을 때처럼 금방 인터뷰에 적응했다. 농사일로 하루 종일 바쁘고 피곤했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답변해주는 두현이에게 참 고맙다.


  어느덧 시계가 10시를 가리킨다. 두현아, 이제 네가 좋아하는 딸기 얘기 좀 해보자.



딸기는 어떻게 키우는지?



  우선 딸기는 '향'이 들어가는 게 국산 품종이다. 품종의 종류는 대략 설향, 매향, 금향, 금실, 죽향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게 설향이다. 예전에는 장희라는 일본 품종이 인기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설향이 더 인기가 많다.


  딸기 재배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11월에 어미묘에서 나온 런너(자묘를 생산하는 줄기)를 절단해서 자묘(어린 모종)를 받고, 자묘들을 월동시켜준다. 우리는 이를 휴면이라고 부르는데, 모종들이 충분히 잠을 자야지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대략 3월까지는 월동을 해야 된다고 보고, 월동이 끝나 자묘가 깨면 자묘들을 모종동에 심는다. 모종동에 심은 자묘들이 6월까지 자라고 나면 다시 런너가 나오는데, 이때 한 포기당 20~30개의 자묘를 받을 수 있다.


  거기서 받은 자묘들을 2개월 정도 더 키워서 9월이 되면 본포(두둑을 만들어 놓은 하우스)에 심는다. 이때 심어놓은 자묘들이 자라서 11월이 되면 꽃대가 나오고, 그 꽃대에서 꽃이 피고 딸기가 열리게 된다.


권두현 농부님이 노트로 설명해준 딸기 재배 사이클

 

  두현이가 처음에 말로만 설명할 때는 그 과정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들이 많아서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두현이가 그려주는 그림을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까 이해가 훨씬 쉬웠다. 옆에서 내내 인터뷰를 지켜보던 두현이의 여자 친구도 평소 궁금한 게 많았는지 재배 과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이번에 두현이 농장에서 처음으로 딸기꽃에서 딸기가 열리는 걸 눈으로 보았다고 했다. 내 추측이지만 아마 그 딸기꽃을 보고 매우 놀랐을 것이다. 나도 처음 딸기꽃을 봤을 때 그 꽃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처음 봤을 때 감탄했던 딸기꽃



번다버그 딸기농장 회상


  나는 26살에 호주에서 처음으로 딸기 농장을 체험했다. 당시 나는 워홀러였고 번다버그 지역에 도착해서 우연히 머무른 백패커에서 딸기 농장을 소개받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농장에 도착해보니 광활한 노지에 탐스럽게 익은 딸기들이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꽃이 피고 딸기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니 일꾼들이 모였고, 대부분 아시안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이상하게 생긴 자전거에 플라스틱 박스를 싣고 페달을 밟으며 딸기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사실 수확이라고 하기보다는 풀을 뜯는 수준에 가까웠다. 수확하는 딸기의 버킷에 따라 일당이 정해졌기 때문에 빨리 따야 된다는 생각에 급급했다.


  하지만 두현이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작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된다고 얘기했다.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작물에 손을 대고, 생채기 내는 걸 지켜보는 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때 두현이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던 이유를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해가 된다.


번다버그 딸기농장에서 수확한 딸기를 보여주는 워홀러 권두현






 처음에 부모님이랑 같이 농사지을 때는 뒤에서 지켜보며 시키는 것만 했었다. 그러다 작년 6월부터는 독립해서 혼자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짓는 매뉴얼을 만들려고 현장에서 일일이 메모해뒀는데, 그게 조금 두꺼운 노트로 두 권 작은 메모장으로 두 권 정도 된다. 사소하지만 꼼꼼히 메모해둔 덕분에 농사를 짓는데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그간의 노력을 보여주는 보물같은 재배 일지



무농약으로 딸기를 키우게 된 이유는?



   나도 처음에는 관행농으로 농사를 지었다. 하루는 똑같이 약을 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토양에게도 안 좋고 우리 몸에도 안 좋은 농약을 매일 쳐야 할까. 농약을 치지 않더라도 건강하게 땅을 가꾸면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을까? 그즈음부터 농약을 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던 것 같다.


  딸기를 키울 때 농약을 치는 이유는, 딸기가 자라는 환경조건과 병해충이 자라는 환경조건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농약을 치지 않고 며칠만 방치해도 진딧물, 응애, 잿빛곰팡이로 인해 작물이 입는 피해가 상당하다. 약을 쳤을 때 딸기를 100개 생산해 낸다면, 약을 치지 않았을 경우 60개 정도밖에 생산할 수 없다. 이는 농부에게는 엄청난 손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농약을 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생산성과 수익성만을 위해 농사를 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다. 언제나처럼 모르는 부분들은 부딪치면서 연구하고 배워가고 있다. 비록 관리할 부분이 많이 늘었고, 생산성도 많이 떨어졌지만 이런 노력이 토양을 지키고 건강한 딸기를 키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꽃 곰팡이에 감염된 모습 & 잿빛곰팡이에 감염된 딸기 모습



  두현이 얘기를 듣다 보니, 벨기에 농가에서 엘리자베스가 얘기했던 'Pay back'이 생각났다. 엘리자베스는 자연과 토양의 도움으로 작물을 키우고 먹을 것을 얻었으니, 우리도 자연과 토양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pay back)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인상적이었던 우리는 엘리자베스와 얘길 나눈 후 몇 번이고 'Pay back'을 되뇌었다.


  두현이가 그 말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자랑스러웠다. 엘리자베스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 두현이가 앞으로도 자연과 토양,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딸기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작업이 있다면?

  딸기를 키울 때 중요하게 관리돼야 할 요소는 온도, 습도, 광, 이산화탄소, 물 이렇게 다섯 가지다. 물론, 모든 관리가 중요하지만 요즘 부쩍 물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을 주는 양, 물에 비료를 섞어서 주는 농도 그리고 얼마나 적절한 시기에 물을 주는지가 중요한데, 이 작업이 쉬우면서도 참 어렵다.


  최근에 생각보다 물을 많이 주는 바람에 작물 상태가 안 좋은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때 정말 물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다. 식물체들은 민감해서 물의 양이 조금만 달라져도 금방 변화하는데, 초보 농부인 나는 너무 둔감해서 그걸 알아차리는 게 쉽지가 않았다. 농사일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일일이 작물들을 확인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부족하기도 했다.


  한동안은 수확한 딸기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며칠 물을 안 줬더니 딸기 상태가 나아지는 걸 확인했다. 이것만 봐도 물의 양 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농장에서 일하다 보면 모르는 것들 때문에 곤욕을 치를 때가 많은데, 그래도 작물이 성장하는 것처럼 나도 조금씩 농부로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딸기는 어떻게 판매되고 있는지?



  현재 산청에서 재배되는 딸기의 절반 이상이 서울에 있는 가락동시장에 납품되고 있다. 산청에서 딸기가 올라와야 경매가 시작된다고 할 정도로, 산청 딸기는 좋은 품질로 평가받고 있다. 나의 경우도 농협을 통해 서울로 올려 보내는 물량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머지 물량은 한 주에 60~70kg 정도씩 서울 롯데몰에 있는 카페에 납품하고 있다. 보통 1박스에 2kg 단위로 판매되고 있는데, 내가 일하는 것에 비해서는 값을 많이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딸기 가격 책정에 있어 농민들보다는 유통하는 사람들에 의해 값이 매겨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이런 구조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일부 물량은 직거래를 통해 판매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미 SNS 계정은 2년 전부터 만들어 놓은 상태인데, 농사짓기 바쁘다 보니 업로드도 많이 느리고 관리가 소홀한 편이다.


  아직은 농장을 키워가는 단계라서 농사를 짓는 거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농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규모가 커지면, 우리 농장의 딸기를 드시고 싶은 분들께 직거래로 판매하고 싶다.


납품 준비를 하고 있는 농부 권두현



맛있는 딸기를 고르는 비법이 있다면?



  딸기가 가장 맛있는 시기가 있는데, 그게 12월에서 1월 사이인 것 같다. 이 시기의 딸기가 어느 정도 경도(딸기의 단단함)도 있고 있고, 당도도 높기 때문이다. 지금 딸기 브릭스(당도)를 측정하면 12~13 정도 나오는데 수치가 꽤 높은 편이다. 딸기는 일교차가 클 때 당도가 높은 편이라서, 2월까지는 당도가 높은 딸기를 먹을 수 있다.


  딸기는 아무래도 끝까지 익었을 때 그러니깐 초록색 부분이 없을 때가 가장 달긴 한데, 그만큼 빨갛게 될 정도로 놔두면 식감은 좀 떨어지는 편이다. 구매해서 바로 먹을 거면 완전히 빨갛게 익은걸 사야 되고, 며칠 두고 먹을 거면 좀 덜 익은 걸 사서 냉장고에 숙성해두고 먹는 게 낫다.


  딸기를 보면 이파리가 약간 위쪽으로 향하는 모양이 있는데, 이런 모양의 딸기가 맛있는 것 같다. 지금 시기에 딸기가 이런 모양으로 자라는 게 많고, 내가 먹어보니깐 대부분 당도가 높았다. 그리고 딸기가 광택이 나고 너무 빨갛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당도가 높거나 맛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딸기가 의외로 맛이 없을 때가 더 많다.


권농부가 추천하는 맛있는 딸기, 잎파리가 하늘로 솟구치는 모양

다음화에서는 1월호의 마지막 에피소드 <강누 마을 온나 농장 식구들의 이야기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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