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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석 Mar 19. 2018

온나 농장 식구들의 좌충우돌 성장 이야기

월간농터뷰 [1월호] 농장 편







온나 농장에 방문하다


  인터뷰는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여전히 바깥 날씨는 추웠지만, 비닐하우스 안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뿌연 안개 너머로 할머니들이 열심히 수확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두현이는 할머니들이 수확하신 딸기가 담긴 대야를 트럭에 싣고 있다. 나도 뭔가를 도와야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지만, 오히려 방해만 될 것 같아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내 비닐하우스 한 동 작업이 끝났고, 우리는 선별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작은 테이블과 캠핑용 의자가 몇 개 있었는데, 두현이는 포트기에 물을 올리고 할머니들께 드릴 간식과 차를 준비했다. 매일 아침 작업이 끝나면 이렇게 같이 차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눈다고 한다.


  분주한 두현이와 달리, 나는 느긋하게 두현이가 내준 차를 마시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농부로 산다는 것은 얼마만큼의 무게감을 안고 사는 걸까?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무게감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농사를 직접 지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농부의 삶을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일하는 성실함을, 흙에서 생명을 틔우고 가꾸는 사명감을 나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


 

아침부터 분주한 권두현 농부의 일상



본격적으로 온나 농장을 파헤치다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할머니들과 담소를 나눴다. 학생은 어디에서 왔냐며, 나를 굉장히 어리게 봐주셨는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자연스럽게 본인 손주 얘기를 하시는 할머니. 손주가 어린 나이에 벌써 좋은 회사에 입사해서 자기 밥벌이를 한다고 무척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이제 손주도 다 키웠고, 가끔 이렇게 나와 농장에서 일하는 재미로 사신다고 하셨다.


  간식 겸 티타임이 끝나고 나서, 할머니들은 다음 비닐하우스에 딸기를 수확하러 가셨고, 두현이는 납품을 위해 선별 작업 준비를 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농장 식구들과 함께 선별 작업을 했을 테지만, 오늘은 친구들이 부추 농장에서 수확하는 날이라 혼자 작업을 해야 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작업해야 할 양이 꽤 많았지만, 두현이는 금방 할 수 있다며 익숙한 듯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두현아, 이제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해보도록 할까?




온나 농장이란?



   사실, 세계일주를 다니며 느꼈던 감정으로 돌아와서 농사를 짓고 싶었다. 하지만 귀국 후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서로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다. 기존의 농사법과 내가 보고 배우며 느낀 농사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마찰이었다. 점점 농사일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1년 반 동안 부모님께 농사 기술을 배우고서는 독립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 후 나만의 색깔을 가진 '온나 농장'을 만들게 되었다.


  '온나 농장' 유럽을 여행할 때 농장주가 늘 열린 마음으로 우리에게 오라고 하는 것에 모티브를 얻었고, 나 또한 열린 마음으로 우리 농장에 오시는 분들을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온나'라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인데, 흔히 놀러 온나, 일하러 온나, 밥 무로 온나 등 내가 편하게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다.


부모님과 독립해 처음 시작하게 된 온나농장

  

  홀로 힘겹게 농사를 짓고 있던 어느 날, 괜찮은 장소에 비닐하우스 6동이 비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후배인 동엽이와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같이 딸기 농사를 지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동엽이는 우리 동네 인근인 수곡에서 부추농사를 짓고 있었다. 종목이 다른 딸기라는 작물의 농사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동엽이었지만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주었다. 사실 우리는 매번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늘 같이 일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곤 했다. 하지만 혼자보다는 함께, 특히나 열정만 가득하고 기반 없는 청년 농부들은 뭉쳐야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에, 동엽이와 함께 농사를 짓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큰 기쁨이었다.


붐마스터와 함께 힙합을 들어며 농사짓는 두 청년들

 

  동엽이와 함께 한다는 의미에서 같이 하게 될 농장은 '두리 온나 농장'이라 불렀다. 그리고 동엽이 와이프이자 대학교 후배인 '민욱'이가 같이 합류하게 되었고, 작년 9월에는 비어있는 비닐하우스 3동에 '찬양'이라는 친구가 농사를 짓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찬양이는 예전에 동엽이와 함께 농촌에서 농사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알게 된 인연으로 산청까지 오게 되었다.


  찬양이는 별개로 본인의 농장을 운영하면서도 늘 우리들이 바쁠 때 와서 일손을 많이 거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찬양이에게 늘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와 농사를 짓는 방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찬양이도 온나 농장의 정식 멤버가 되었으면 해서 제안을 한 상태다. 아마도 내년에는 우리가 함께 농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지 않을까? 찬양이가 허락만 해준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다.




온나 농장 에피소드



  늘 꿈에 그리던 농장을 가지게 되었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거의 맨땅에 헤딩하다시피 농장을 시작했기에 오히려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임대한 하우스의 시설은 20년도 더 돼 보이는 아주 노후한 시설이었고, 녹이 슨 하우스 파이프들은 수리해서 써야 했다. 특히 비닐하우스에는 아무것도 갖춰진 것이 없어서, 뭐든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최대한 비용을 아끼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대부분 우리들이 직접 하게 되었다. 딸기 선별 작업장을 만들었고, 기계 설비가 들어갈 양액실도 우리 힘으로 만들었다.


  제일 난관에 부딪혔던 일은 배관작업이었다. 비닐하우스 3동과 3동이 떨어져 있어서, 6동을 서로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그 일이 불가능처럼 보였다. 우리가 이런 작업을 해본 적이 없어서 더 막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땅을 열심히 파다 보니 엉망이 되어있는 지하 배수관을 발견할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새 것으로 교체해서 성공적으로 배관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실수를 하기도 했고, 서툴기도 했다. 전기 작업을 하다가 합선이 일어나서 전선이 녹아내린 적도 있었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은 하루면 6동을 씌울 수 있는데 이틀, 삼일씩 걸려 하기도 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붓던 날은 두둑으로 물이 들어와 힘겹게 만들어 놨던 두둑이 무너지기도 했는데, 오죽했으면 꿈속에서도 두둑이 물에 잠겨서 무너지는 꿈을 꿨을 정도였다.


홍수로 인해 두둑이 무너졌을때, 그래도 웃자







  그래도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가 아닌 후배들과 함께 했기에, 그 순간순간들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마침내 9월 13일에 딸기를 정식하게 되었고, 2개월 뒤인 11월 9일에는 첫 수확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고 뿌듯했다. 서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함께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제일 크지 않았을까?'


온나 농장 딸기 첫 수확 했을때




온나 농장 식구들 소개



이름: 이동엽
나이: 90년생
농사경력: 3년 차
농사짓게 된 계기: 조용한 환경을 좋아했고, 흙을 만지면서 하는 일들이 좋아서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신념: 욕심 가지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나에게 권두현이란: "농촌을 사랑하는 사람"


이름: 이민욱
나이: 92년생
농사경력: 3년 차
농사짓게 된 계기: 남편이 농사를 짓자고 했고, 나도 그게 싫지 않아서
신념: 긍정, 긍정, 또 긍정
나에게 권두현이란: "많이 고마운 사람"


이름 : 전찬양
나이 : 89년생(올해 6월까지는 만 28세)
농사경력: 알바 제외 7개월
농사짓게 된 계기 :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음(딱히 이유는 없고 그냥 하고 싶은 게 이유)
신념 : 여유로운 삶을 살자
권두현이란 : "멋진 남자"


<온나 농장 식구들> 왼쪽부터 이동엽 농부, 이민욱 농부, 전찬양 농부




온나 농장의 형태?

 

   온나 농장은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개인 농장을 가지고 있다. 동엽과 민욱은 부추농사를 짓고 있고, 찬양이는 베드에서 키우는 딸기 농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각각의 농장을 운영하는서, 동시에 온나 농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아까 내가 이 온나 농장을 대표하고 있냐는 질문을 해주었는데, 거기에 대한 답변은 "온나 농장은 우리 모두가 대표다"라고 얘기할 수 있다. 내가 후배들보다 농사일에 대해 조금 더 아는 부분이 많다고 해서, 혹은 책임감을 더 가지고 일을 한다고 해서 온나 농장의 대표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돕고 일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나는 후배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려주고, 그들이 농부로서 잘 성장하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대표라는 명칭보다는 '농부'로 불리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하다.


  농사일이 바쁘다 보니 농장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해 논의할 시간이 부족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온나 농장의 방향성은 선별작업을 하거나, 납품할 때 서로 힘을 합쳤으면 한다. 물론 그 외에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서로 도울 수 있겠지만, 농부로서 성장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본인이 직접 작물을 키워 보고 수확도 해보고 농사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즉, 구성원 모두가 농부로서 농사일을 배우는 것이 가장 필요한 때이다.


  아직은 후배들이 농사를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농사일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고 걱정이 많겠지만, 농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작물을 키우는 것에 익숙해지면 분명 농부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책임감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6시 내고향에 출현한 온나농장 식구들

  


같이 농사를 지어서 좋은 점?



  농사라는 일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혼자서 일을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능률도 많이 떨어진다.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사를 같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서로 일하는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도 많다.


  만약 내가 혼자서 농사일을 했다면 지금처럼 즐기면서 일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랑 성격도 잘 맞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다 보니, 조금 힘들더라도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보며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내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식구들이 컨디션 관리를 잘하고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 같은 경우도 동엽이가 갑작스럽게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지금 병원에 간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마음이 안 좋다. 농사일이 대부분 육체적인 노동이다 보니, 안 다치고 건강하게 오랫동안 다 같이 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농사일이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로울 수 있겠지만, 이 힘듦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뭉쳐서 서로에게 힘을 주고 힘든 시간을 같이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


사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같이' 일하고 '같이' 밥먹기




온나 농장의 목표는?



  온나 농장의 최종 목표는 같이 일하는 구성원들이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아직까지 다들 청년이다 보니,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다. 특히 농사를 지으면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지, 결혼 자금을 마련해서 결혼을 할 수 있을지 등 우리에게는 큰 이슈이다.


  예전에는 '케어팜'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었다. ('케어팜'은 몸이 조금 불편하거나, 마음이 아픈 분들이 농장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치유를 받는 것을 뜻하며, 네덜란드 농가를 방문했을 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당장 눈앞의 현실이 힘들고 바쁘다 보니 '케어팜'을 만들고 싶었던 꿈을 잠시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얼마 전에 할머니랑 같이 작업을 하다 은연중에 케어팜에 대해 다시 떠올리는 사건이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할머니들과 작업을 하고 있었다. 보통 작업이 끝나면 비닐하우스 앞쪽 입구로 모이셔야 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뒤쪽 입구로 나가려고 하셨다. 급하게 동료 할머니께서 앞쪽으로 오시라고, 어디로 가시냐며 얘기하셨는데, 우리가 보기엔 약간 치매 증상이 있으신 것 같았다.


  민욱이는 할머니께서 농장에서 일하시는 동안 우리들과 같이 일하고 소통하면서 그것이 회복되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나 역시, 할머님들과 일하는 동안 잘 보살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쩌면 이러한 모습들이 케어팜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지냈던 '케어팜'을 만드는 꿈을 떠올리며, 비록 형태는 많이 다르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케어팜'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농장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아무래도 농사일만 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는데, 같이 목공 작업도 하고, 농촌에서 뭔가 재밌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면 조금 더 즐기면서 농사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농촌에서 젊은 에너지를 '뿜뿜' 하고 있는 청년 농부들




두현이 농장 인터뷰를 마치며


  첫 번째 농터뷰가 끝이 났다. 시작인 것을 감안하면 썩 나쁜 출발은 아니었다. 연재에 필요한 인터뷰 내용도 충분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한 명의 농부를 알아가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다만 생각보다 인터뷰 분량이 길고 내용이 많아서 글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첫 예상과는 달리, 3월이 되었음에도 1월호 연재를 이제야 마치게 되었다.


  그래도 시행착오를 겪어보니, 다음 인터뷰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연재하면 재밌을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부디 농터뷰를 읽으시는 독자분들이 조금이나마 농촌과 농부에 대해 알아가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취재하고 글도 연재할 예정이다.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큰 수확이 있다면, 두현이와 만남이었다. 사실 다큐멘터리 '파밍보이즈' 촬영을 끝낸 이후 지황이형과 두현이의 삶이 무척 궁금했다. 왠지 나보다는 그 둘이 좀 더 농업과 맞닿아 있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서 꿈꿨던 것들을 잘 실현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보니, 두현이는 여전히 농촌과 딸기를 사랑하는 시골청년, 내가 기억하는 예전의 멋진 모습 그대로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진짜 농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과 이제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서 웃음기가 많이 빠졌다는 것. 앞으로도 많은 고난이 있겠지만, 지금처럼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그들이 원하는 농장의 모습을 갖추길, 그리고 멋진 농부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로써 월간농터뷰 1월호를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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