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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오잡 Mar 16. 2024

운명이란 무엇인가

무엇이든 믿어보세요


인터넷을 하다가 작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O선수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이 벌어진 것에 대해 몹시 유감으로 생각하며 잘 이겨내길 바라고 있다. 작년 가을, 사건이 막 터졌을 무렵, 인물검색을 하다 그 분과 내가 생년월일(태어난 시는 모르지만)이 같다는 것을 알고 신기해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땐 그러구 말았는데, 그냥 자버리기엔 너무 맨정신인 금요일 밤, 느닷없이 궁금증이 폭발한다. 포털사이트로 가서, OOO사주, 라고 검색을 했다. 제법 많은 수의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발적 무료로 제공한 나의 사주풀이가 나왔다. 대부분이 깜짝 놀랄정도의 악평이긴 했지만. 


기사에 나오는 것들이 전부 사실인지, 선수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 지 없는 지를 떠나서, 본인의 인생 또한 크게 주저 앉았으니 지금 그가 강력한 불행을 만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불행이 다 사주에 예고되어 있었던 걸까. 남편의 가까운 친구의 아내도 나와 생일이 같다. 사주는 통계라지만, 같은 날 태어난 세 명 중 한 명에게서만 일어난, 아니 내가 알지 못하는 이 세상의 같은 날 태어난 그 많은 분들에게서도 일어나지 않은 굉장한 불행이 단 한 명에게 일어났다면 과연 그것을 사주에 들은 망신살 때문 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저런 대단하고 강력한 일은 사주 대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사주에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게 차라리 맞는 게 아닐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시고 작은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지켜내고 키워내기가 참 힘드셨던 모양이다. 큰 일을 앞에 두거나 힘든 결정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면 부모님은 자주 전문가를 찾아가셨고, 덕분에 나는 뜻하지 않게 무속신앙과 명리학 관련 잡지식을 제법 갖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데, 도교+유교+불교+토속 신앙+조상신을 다 함께 아우르는 이 분야는 우리 나라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꽁꽁 뭉쳐 계승하는 어마어마한 느낌이 들어서 무시할 수 없다. 호칭도 꽤나 세분화 되어있는데, 보통 신점 봐주시는 분은 보살(여자)이나 도령/도사(남자)로 부르고 철학관에서 사주 봐주시는 분은 선생님이다. 보살/도사님들은 불상과 함께 절(?)에 계시고 철학관에서 사주명리 보시는 분들은 서예 작품이 걸려 있는 사무실(?)에 계시는데, 막상 가보면 대충 다 집에 계신다. 엄마는 제갈량을 찾아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어려운 의사 결정을 앞두고 또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만났을 때, 최소 세 군데를 방문하신 뒤 두 군데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을 새겨 들으셨다.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은 항상 미래에 자신에게 닥칠 일을 알아내어 준비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사주, 신점, 토정비결, 관상과 손금, 그 외 수 많은 어떤 것들.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다 안 맞는 것도 아닌 그 모든 가능성을 위해, 아주 사소한 희망찬 한 마디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복채를 준비한다. 두둑한 복채를 내고 사주풀이를 듣고, 영험한 보살을 물어물어 찾아가 만났다고 해도, 사주풀이나 신점의 내용을 믿고 안믿고는 꽤나 복잡한 문제다. 듣고 나면 대체로 믿고 싶지 않은 말들이 많고, 나 편할 대로 끼어맞출 수 있는 내용도 많다보니 돌아보면 그런 것만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개연성 없는 밝은 미래 한조각으로, 매일같이 마주하는 수 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들과 어찌하면 이 짧은 생을 잘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괴로운 불확실성으로 미칠 것 같은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법 괜찮은 거래일 것이다. 


운명의 운(運)은 Driving 운(運)자를 쓴다고 한다. 천명도 천명이겠지만 어떤 마음과 자세로 얼마나 삶을 잘 이끌어 살아내느냐도 중요한 것이다. 한참을 살고 나서 보니 사주 대로 딱 맞네, 시상에 그 보살 참 용하네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운명이 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던 것이다!라고 말하기엔 어제의 고생과 오늘의 노력이 좀 많이 아깝다. 그렇다면, 사주나 신점을 '인생을 효율적으로 살기 위한 과거로부터의 컨설팅'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피할 수 없었던 사주 탓으로 죄다 넘기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이겨낼 수 있다면, 기억나는 내용 몇 가지 믿어보며 희망차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별점도 리뷰도 안내문도 없는 친절하지 않은 우리 인생에, 찰나의 순간이나마 기댈 수 있는 실낱 같은 기둥 하나 있다면 그걸로 또 꾸역꾸역 버티면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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