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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경 May 31. 2019

한낱 <기생충>에게도 존엄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개봉날에 맞춰 보다

#1.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개봉일.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단 게 제1의 이유이긴 하지만, <살인의 추억>부터 <괴물>, <설국열차>, <옥자> 등을 감탄하면서 봤기 때문에 어차피 나오면 볼 생각은 있었다. 개봉일에 맞춰보려고 하진 않았겠지만. 참고로 2018년 황금종려상 작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봐서 아는 건 아니고, 시사상식의 일부로 외웠기 때문에 안다. <어느 가족>은 보지 않았다. 나에게도 국뽕과 국가주의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 말로 대충 덮어버리기엔, 영화 <기생충>매우 좋았다.


#2.

줄거리? 한 마디로 설명하기 참 어렵다. 내가 연극영화과와 문화콘텐츠학과 수업을 들었을 때, 교수님들은 늘 영화를 한 마디로 정리해오란 과제를 시켰다. 어떤 영화든지, 한 마디로 딱 설명할 수 있어야 잘 팔린다는 게 요점이었다. 예를 들면 ‘못생긴 채 20년 살아온 여학생이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성형수술을 함으로써 완벽히 환골탈태 후 벌어지는 대학 로맨스 이야기!(내 ID는 강남미인)’, ‘퉁퉁한 몸매, 평범한 얼굴, 게다가 노처녀 30대, 하지만 꿈만은 20대인 파티쉐가 잘 생기고 돈 많은 베이커리 사장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연상연하 러브 스토리(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느낌의 한 줄 줄거리. 하지만 <기생충>을 한 줄 글로 옮길 수 있을까? 매우 어렵다. 봐야 한다. 그리고 스포일러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 그리고 사실 이 영화에서 줄거리는 제일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3.

하지만 줄거리에서 단연 돋보인 요소가 있다면, 왜 송강호는 참을 수 없었느냐 이다. 사실 그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생일 파티 장면에서, 송강호가 참았다면, 그의 딸은 희생되었을지 언정 극의 줄거리에서 큰 변화가 오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큰 변화 왔겠지. 하지만 송강호가 모두 눈 감은 뒤 다같이 밖으로 피신했더라면? 그럼 딸을 제외한 아들과 엄마, 아빠는 다시금 그 가족에 빌붙어 살면서 그대로 기생충처럼 살았을 수 있다. 그러나 송강호를 참지 못하게 했던 건, ‘존엄’이었다. 이선균은 존엄을 건드렸다. ‘냄새’로. “그 왜 지하철 가면 나는 냄새 있어.” “선을 넘을듯 말듯 하면서 안 넘는데, 딱 하나 넘는 게 있어. 냄새.” 이선균 조여정에게 송강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냄새란 미장센은 영화 내내 쌓아져 왔는데, 특히 이선균 아들이 이들 가족 구성원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고 했을 때 놀라웠다. 관객들에게 ‘들키는 거 아냐?’와 같은 두려움을 주었지만 사실은 끝에 쓰일 복선 같은 거였으니까.

이 냄새라는 게, 인간 존엄과 맞닿아 있다. 사실 체감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체취는 나보다 남이 더 잘 맡거든. 그래서 나한테 어두침침한 반지하 방에서 말린 빨래 냄새가 나는지, 반찬이 그득하게 들어있는 오래된 냉장고 냄새가 나는지, 남이 쓰다 버린 이 거대하게 쌓인 중고서점 냄새가 나는지, 치킨을 하도 튀겨 기름 쩐내가 나는지 등은 참 알기 힘들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대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내가 어디서 자며, 내가 돈을 어디다 쓰는지 하물며 향수를 쓰는지 페브리즈를 쓰는지 섬유유연제 비싼 걸 쓰는지 좋은 걸 쓰는지 등을 모두 알 수 있는 게 냄새다. 사람이 쓰는 비누나 그외 먹는 것, 입는 것 들도 냄새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래서인지 내 전 남자친구나 썸남들은 다 다른 냄새가 났다. 그들 또한 나에게 ‘너만의 냄새’가 난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선균이 송강호에게서 맡은 냄새는 ‘가난의 냄새’ 였다. 가난뿐만 아니다. ‘노화의 냄새’ ‘가장의 냄새’ ‘책임감의 냄새’ ‘빈민의 냄새’ ‘못 배움의 냄새’ ‘게으름의 냄새’ 등을 맡았다. 그리고 그걸 타인에게 전했고, 그걸 다시 당사자가 전해 들었다. 여기서 존엄이 무너진다. 몰랐던 사실-나의 체취-을 알게 되고, 이를 지인이 알고 있단 걸 알게 되고, 이를 지인이 자신의 지인에게 험담하는 걸 알게 되었으니, 우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무너진 존엄이 송강호 뇌 안의 살인 스위치를 눌렀다. 이를 무너뜨리는 데엔 그가 쓴 인디언 모자 또한 큰 역할을 했다.


#4.

이전 줄거리에선 그에게 존엄이 중요하단 사실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반지하에 사는 풍경서 부터 시작해서, 창밖 앞 노상방뇨를 내버려두는 것, 방역차 연기를 그대로 마시는 것, 자신의 가족과는 또 다른 기생충의 존재를 만났을 때 보여준 행동들 모두. 그러나 모래시계의 모래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 시간과 동작만큼 천천히, 그의 존엄은 무너지고 있었다. 기생을 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자신이 인간처럼 대접받고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5.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이 앞에 (존엄이 무너지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을 넣어주고 싶다. 최근에 일본에서 5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10초만에 20명이 살상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큰아버지, 큰어머니(였나? 확실하지 않다 기억이)와 함께 살았던 가정폭력의 피해자이자 이혼한 부모님을 둔 아들이었는데, 완전한 히키코모리로 지내면서 큰아버지와도 말 한 번하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이 그의 뇌에 있던 살인의 버튼을 누르게 했을까. 그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존엄의 붕괴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물론 범죄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어떤 버튼이 눌려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6.

이 줄거리 외에 봐야 할 것? 너무 많다. 특히 음악. 난 음악을 잘 쓰는 감독과 잘 쓴 영화를 보면 매우 감탄을 하는데, <기생충>도 마찬가지였다. 칼을 휘둘러 피가 난무할 때 클래식을 튼다던지, 살금살금 다가갈 때 긴박하고 하이한 바이올린 선율을 넣는다던지, 그런 장치가 있을 때 영화에 매우 과몰입하게 된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도 속으로 감탄하면서 본다. 이 영화 음악 잘 하네, 하면서.

대사? 대사도 다들 명품이다. “상징적이네.” “우리한테 관심 좀 가져달라고!” “우리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넌 내가 여기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야. 계획을 하면 실패를 하게 되거든.” 스크립트를 보고 외우고 싶을 만한 대사가 많았는데, 기억의 한계로 이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이것도 완전한 대사는 아니다.) 이걸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고, 거미줄처럼 줄거리 전체에서 이어지게 짰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화면 구성 자체.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고 불리는 감독의 별명대로였다. 장면 하나하나, 구도 하나하나 버릴 게 없었다. 포커스 아웃을 시켜놓은 배경에서 벌어지는 일들, 위로 갔다가 아래로 가는 카메라 워킹.

배우들의 연기? 여긴 신의 영역이다. 내가 뭐라고 왈가왈부할 것도 못 된다. 난 개인적으로 송강호와 조여정의 연기가 제일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 둘은 ‘연기’를 하는 것 같았고, 나머지  배우들은 자기 자신이 영화로 콕 들어간 것 같았다. 뭐, 그럼 다들 너무 잘한 건가?

그외에 쓰인 모든 미장센들. 모스 부호, 케익, 캠핑, 커피(코너링할 때), 계단 올라감과 내려감으로 표현하는 계급, 필라이트(나중엔 삿포로가 되던), 변기의 위치, 돌 등등. 여기에 제목까지 완벽.


#7.

영화는 웰메이드란 말 정도붙이는 게 미안할 정도로 웰메이드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지적하고 싶은 점은 ‘극심한 국뽕에 차있는 건 아닐까’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광희 영화평론가가 KBS 2시 프로그램 <사사건건>에 나가 화제를 일으켰다. 칸 영화제의 권위를 묻는 앵커에게 한 방 먹였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들은 최광희 평론가는 앵커에게 되레 “작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의 제목을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는 앵커에 대답에 그는 “딱 그정도의 권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한국 영화가 상을 받았을 때 권위가 생기는 게 칸 영화제다. 세계 3대 영화제를 대보라고 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듯이, 우리는 해당 문화권의 영화제 이름은 물론 문화권 내에서 그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선 잘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고, 굳이 알 필요도 없다. 그냥 뉴스에서 ‘칸 영화제 해요’, ‘베니스 영화제가 열려요’, ‘베를린 영화제가 시작합니다’ 또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누가 받았습니다’, ‘올해의 영화상의 영예는~’ 이라고 하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정도가 아닌가. 그러니 이번 황금종려상에 다들 관심을 쏟는 건 그야말로 봉준호 효과다. 봉준호 감독이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상을 받지 않았다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냥 지나가는 뉴스 기사 중 하나로 소비됐을 잔잔한 뉴스 거리다.


#8.

국뽕에 취했단 말이 싫으면, 앞으로 꾸준히 영화계에 관심을 갖자. (스스로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국뽕에 취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한다면 상관없다. 난 국가주의를 이렇게 까지 옹호하고 싶지 않으므로, 꾸준히 영화계에 관심을 갖겠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국가주의가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잘 만든 게 문제라면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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