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경 Aug 17. 2019

채널A의 북한이탈주민 아사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제발 남의 집 좀 쳐들어 가지 마세요, 그거 기자다운 거 아니에요

#1. 채널A의 보도, 어땠는가

지난 12일, 채널A에서 북한이탈주민 모자가 숨진 걸 단독으로 냈다.(8/12, https://bit.ly/2Ts0u3a) 숨진 이유는 아사로 추정되고 있었다. (당시 경찰의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채널A는 ‘아사’라고 확언하며 보도했고, 더불어 집에 들어가 온갖 집기류와 가구를 다 찍고, 숨진 여성의 사진이나 하나원 수료증, 여러 자격증을 다 보여줬다. 종이 통장도 훑어 넘겨 보여주면서 잔고가 0원이었다는 사실까지 하나하나 묘사했다. 이름 또한 공개됐다.

13일에 M, S, T조, MBN, YTN 등도 보도했는데 MBC나 TV조선에서도 아파트 창문 사이로 집 내부를 비춰준다든가 하는 문제가 보였다.


#2. 개인적으로 하는 분노

이 사건은 여러 가지가 걸쳐진 문제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만 있는 특이한 계층, 약자이자 소수자와 관련된 문제였고 또 그는 동시에 여성이었으며, 그는 자살이나 타살이 아니라 굶어서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복지 체계 미비로 인한 사회적 타살이긴 하겠지.) 정말 계층적, 젠더적으로 너무나 소수자인 인간의 죽음인 것이다.

만약 그가 남쪽 땅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국적의 사람이었으면? 동시에 남성이었으면? 그리고 자살이나 타살이었으면? 기자가 그의 집에 들어가서 집기류를 다 찍고 그의 사적 영역에 속할 수도 있는 각종 자격증과 통장 잔고를 보여줄 수 있었을까? 굳이 그렇게 그의 죽음을 드러낼 필요도 없었겠지만 기자 개인이나 방송사 자체에서 그런 화면을 촬영하고 취재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부담이 있음을 알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러한 취재를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근데 그는 가난한 여성 북한이탈주민이었다. 동의를 받아야 할 유가족도 없고, 그러니 동의를 받아야 할 필요도 없고, 그의 죽음이 굉장히 충격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회에 드러내고 싶었을 거고, 거기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기자가 몇 마디 설명을 더 하는 것보단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가장 간편하고 값싸고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채널A처럼 보도하려고 하면 뭔들 못하겠나. 최근 한강에서 사지가 절단된 채로 발견됐다는 시신도 보여주고,(이 문제를, 인간의 악마성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간편하고 값싸고 비윤리적인 방법이니까.) 최근 속초 공사장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져 숨진 노동자들의 시신도 보여주고,(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공사장 안전 실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끔 유도하는 가장 간편하고 값싸고 비윤리적인 방법이다.)  그렇게 보도하면 참 쉽다.

그런데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취재를 그렇게 했을지 언정, 규제나 윤리적으로나 저널리즘적으로 그것은 옳지 않다고 누구나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취재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취재하고 있다면 반성하세요, 기자님들.) 그런 방법이 이전에는 ‘기자답다’, ‘기자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장에 들어가야지’ 라는 말로 포장됐지만, 이제 더이상 그런 건 기자답다고 보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는 물론 그 이전에 인간답지도 못한 행동이다.

북한이탈주민의 인권은 없나? 누군가의 죽음에 왜 단독을 붙이나? 채널A 탐사보도팀의 단독 취재라고 하는데, 그가 죽었다거나 그가 어렵게 살았다는 것 외에 뭘 더 탐사보도한 것인가?


#3. 보도 가이드라인에도 없는 그의 죽음

나의 이런 1차원적인 분노를 본 우리 사무처장님은, 좀 더 생각해보라고 전하면서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살펴볼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본 것은 <2018 영상보도 가이드라인>(한국영상기자협회 버전)과 <인권보도준칙>(인권위 버전)이었다.

먼저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1장에서 사적 공간과 영상보도, 3장에서 위험/전시/재난/범죄 상황과 영상보도 를 다루고 있는데, 이것이 이 사례가 그나마 적합한 규정들인 것 같았다. 나머지는 2장 공개 공간과 영상보도, 4장 비즈니스/외부 이해관계와 영상보도 인데 아무래도 얘네들은 아닌 것 같아서.

근데 사실 ‘가난한 여성 북한이탈주민, 심지어 모자가 아사한 현장’을 규정할 만한 규정이 없었다. 일단 1장 사적 공간과 영상보도 에서 말하는 내용은 ‘사적 공간은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촬영될 수 없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하려면 그 공간이 공개됨으로써 달성될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의 범위 내에서 취재되어야 한다’, ‘만약 불가피하게 촬영이 필요하다면 취재 목적이 정당하고 대안이 부재하다는 점을 회사의 편집권자나 경영 책임자에게 설명, 보고하고 회사의 편집권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편집권자는 반드시 이에 대한 기록을 유지하고 일선 현장 영상기자는 반드시 승인해 달라고 보고한 증거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이탈주민의 죽음에서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촬영할 수 있다는 규정은 무용해진다. 당사자가 없을 뿐더러, 유가족도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이들이 숨진 장소이자 사적인 삶을 영위했던 장소를 공개해서 얻을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은 무엇인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자? 우리 한국 사회의 무정한 현실? 무엇을 공공의 이익으로 바랄 수 있나?

3장 위험/전시/재난/범죄 상황과 영상보도 에서도 마땅한 규정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이 모자의 죽음은 재난인가 사고인가, 자살인가, 무엇인가? 일단재난이라고 보면, ‘재난의 희생자 시신은 명백하게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촬영, 방송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외에 ‘집 내부를 촬영해도 되는가’하는 의문에 있어선 범죄 항목 아래에 이런 설명이 있다. ‘범죄 현장이 명백한 공인과 관련돼 있고 범죄 현장을 방송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에 확실하게 부응한다고 판단되지 않는 한, 사적 공간인 피해자의 집 내부를 동의 없이 촬영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건 재난인지, 범죄인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이 규정에 담기지 않는 사례인 것이다. 그렇담 기본적으로, 기자가 개인의 집으로 들어가서 촬영해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이것과 비교할 만한 사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서울지법이 이렇게 판례한 사실이 있다. 2014.3.19. 선고 2013가합50737판결. ‘영상 중 일부는 집 외부에서 촬영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여 기자가 동의 없이 집 내부로 들어가서 촬영한 것이 분명하다면서 주거침입에 의한 사생활 침해를 인정하였다.’


결국 채널A의 보도가 대체 어떤 공익을 위하고자 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주거침입을 했는지, 이를 편집권자들과 상의했는지 묻고 싶어졌다.


다음으론 인권보도준칙을 살펴보자. 9장엔 북한이탈주민 및 북한 주민 인권 파트가 있다. 9장 1항 ‘언론은 북한이탈주민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1목 ‘본인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동의가 없는 한 성명, 출신 등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2목 ‘북한이탈주민을 항상 도움이 필요한 수동적이고 자립심이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3목 ‘사회 부적응 등 부정적 사례를 보도할 경우,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나는 채널A가 이 모든 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이탈주민 모자를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봤으면 그렇게 무턱대고 그들의 사적 공간을 공개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렇담 당연히 동의없이 공개한 점은 문제다. 자격증 같은 걸 보여주면서 자립심이 강하다는 식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처럼 그들의 가난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 또한 문제다. 3목의 제도적 관점에서 살펴보라는 조언 또한 나중에 깨달았는지 12일 첫 보도에선 느낄 수 없던 사회와 제도에 대한 비판을 15~16일 쯤 되면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어떤 제도를 우리가 운용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하기보단 주변 북한이탈주민들이 슬퍼하는 모습이나 숨진 모자가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증언에 의존하고 있다. (대체 뭘 취재한 건지 물어보고 싶다.)


#4. 그럼 뭘 보도해야 돼?

그러게 말이다. 대체 언론에서 뭘 보도할 수 있을까?

그 사건을 귀로 처음 맞닥뜨렸을 때, 물론 그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당사자 근처를 취재해야한다고는 본다. 그러나 그것이 사생활 침해나 인권 침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또한 개인의 책임만 묻지 않도록 조심조심 돌다리를 두드려 가면서 취재하고 보도했어야 한다. 추후에는 잘 준비해서, 우리나라가 북한이탈주민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을 존중해주기 위해 어떤 도움을 주고 또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죽음은 스트레이트성으로 건조하고 드라이하게 보도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채널A처럼 무슨 자기네들이 단독으로 탐사하고 기획하고 보도한 마냥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대대적으로 그를 파헤치고 주변의 증언으로 그의 죽기 직전 삶을 퍼즐 맞추듯 하는 거 말고.

그럼 뭘 보도해야 돼? 라고 묻는 언론이 있다면 그럼 뭘 보도하지 말았어야 하지? 라고 스스로 묻길 바라며, 동시에 뭘 보도했어야 할까?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