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봉하마을에서 온 편지>, 눈물과 함께 봤습니다
#1
우연히 멈춘 KBS1 TV(저는 퇴근 후 이 채널을 가장 오래 봅니다). 2019년 5월 23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KBS에서는 <봉하마을에서 온 편지>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했습니다(실지 지금 제가 보고 있습니다). 2019년 현재와 함께, 2008년 이맘때 즈음, KBS <다큐 3일> 팀이 봉하마을에 내려가 노무현 대통령을 촬영했던 것을 편집해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까 11년 전 KBS는 봉하마을을 찾아갔습니다. 대통령직을 내려놓고 고향에 내려간 노무현 대통령, 이렇게 고향에 내려가 살고 있는 첫 대통령을 만나러 갔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2019년 서거 10주기를 맞아 올해 봉하마을을 또 찾았더군요. 그렇게 11년 전과 현재를 계속 오버랩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고(draw and miss) 있습니다.
11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기억 속 모습 그대로입니다. 재밌습니다. KBS가 당시엔 단순히 봉하마을을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밤에 마실 나온 대통령 내외를 만나 대화 나누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국가 원로 같은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젊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자는 말씀을 제작진들에게 하십니다. 아침엔 제작진을 만나 고사리 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 날은 제작진과 함께 부엉이 바위도 올랐습니다. 그가 가꾼 장군차밭, 오리농법으로 가꿔보고 싶어했던 논, 쓰레기를 치우던 봉하마을 습지 등이 한 컷 한 컷 담겼습니다.
올해의 봉하마을을 찾았더니, 노무현 대통령의 빈 자리를 찾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KBS는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그립습니다, 보고싶습니다, 미안합니다 같은 말들을 하는 시민들이 KBS를 통해, 우리 집 텔레비전을 통해 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분명 그들은 봉하마을을 찾아갔을 뿐인데, 그랬을 뿐인데. 제 마음에는 그들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들이 그리는 사회, 그리는 마음이 제 마음에 들어와 눈물이 됐습니다. 여러분도 못 믿고, 저도 내일 이 글을 보고 웃을지 모르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또 그런 제가 우스워 웃으면서 이 글을 씁니다. 그는 어딘가 그리운 사람이었습니다.
#2
야자를 마치고 돌아온 막내 동생(18살)이 울고 있는 저를 보고 놀랐습니다. “오늘 회사 야유회 가서 무슨 일 있었어?” (도리도리) “그럼 뭐 슬픈 일 있어?” (절레절레) “? 혹시 이거(텔레비전) 보고 우는 거야?” (끄덕끄덕) “?” 이런 대화가 있고 제가 아이패드를 꺼내드니 동생이 ‘또 뭘 하나’하고 쳐다봤습니다. “웃기지? 근데 잊어버릴까봐. 이걸 보고 느낀 감정을 빨리 써놔야 할 거 같아.” <오늘밤 김제동>을 보면서 씁니다. 이 기록은 노무현 대통령 관련 다큐멘터리, <봉하마을에서 온 편지>을 보고 북받쳐 쓴 글입니다.
#3
2009년, 저는 고1이었고, 아무 것도 모르고 공부만 잘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는 하늘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째 제 마음엔 항상 그가 있을까? 이유를 곱씹어보면, 아버지 때문일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하십니다. 아버지는 대통령 살아생전에 저를 가족과 모두 함께 봉하마을에 데려간 적 있습니다. 그때 기억이 굉장히 깊게 남아있습니다. 그 문 앞에 경찰인듯한 사람이 서 있었고, 그 앞엔 시민들 몇몇이 서서 문 너머를 힐끔 보고 가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사는 공간에, 사람들이 놀러도 오고, 그 뒷산도 올라가고, 또 그 부엉이 바위도 올라가는 그 모습이 가슴 따뜻하게 남아있습니다. 저 또한 아빠따라 부엉이 바위에 올라갔던 적 있습니다. 아버지가 ‘여기가 대통령 할아버지가 산책 자주 오시는 곳이래’라고 알려주셨었습니다.
#4
2009년, 저는 똑같이 고1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 봉하마을을 다녀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보러갔던 그 대통령이, 돌아가셨단 소식이 들렸습니다. 2009년 5월 23일, 토요일입니다. 그러고 일주일 뒤였나, 이주일 뒤, 그러니까 굉장히 빠른 시일 내에 아버지는 또 다시 저와 우리 가족을 데리고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그땐 지금 대통령의 비석인 너른 바위도 없었습니다. 대통령 집 앞에 여러 천막이 까맣게 노랗게 쳐져있었고, 장례식 풍경처럼 보였단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아버지가 그 앞에서 눈물 훔쳤던 기억도 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무척 그리워했던 아버지, 그의 기억이 제게도 똑같이 남았습니다. 아, 국민적 존경을 받는 인물이 사라지셨구나! 저 또한 당시 슬퍼했습니다. 이후, 너른바위가 세워지고 또 한 번 봉하마을을 찾았는데, 검은 돌 깔린 잔잔한 물가와 너른 바위, 그리고 올라가지 못하게 한 부엉이 바위가 또한 기억에 남습니다.
저와 무슨 큰 인연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제가 대학 가는 것이나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것과 크게 관련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당시의 아버지 눈물과 사회의 분위기. 이 두 가지가 제게도 스며들어 저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란 사람을 어딘가 모르게 그리게 되었습니다. <봉하마을에서 온 편지>에는 장군차밭을 가꾸기 위해서 차 묘목을 심는 노무현 대통령 모습이 나왔는데, 그의 주변인이(전 청와대 OO실장이었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나무는 7년 뒤에 제대로 된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데, 대통령이 그래도 과실나무를 심으라고 했다고요. 자신이 과실을 심으면 누군가가 열매를 따먹을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아주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아버지와 많은 국민이 제 마음에 심어놓은 그리움이라는 과실이, 제 머릿속에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열매를 주렁주렁 열리게 해놨습니다.
#5
모르겠습니다. 그 하면 밀짚모자와 막걸리, 자전거, 오리농법, 봉하마을 등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그는 평생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뭔가 그는 이런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무현은 저렇다, 농촌에 흔히 있는 할저씨 같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대통령은 없었습니다. 고향에 내려가서 사는(그것도 지방을 위해서) 대통령도 한 분도 없고, 밀짚모자 쓰고 자전거 타는 대통령도 한 분도 없고, 오리농법이라는 걸 들고 와서는 그걸로 농사지어보겠다고 하는 대통령도 한 분도 없고, 찾아오는 시민들을 매번 나와 맞아주는 대통령도 한 분도 없었습니다. 오직 그만이, 그렇게 했습니다. 오직 그만이, 시민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대통령은 ‘전’ 대통령으로 돌아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저는 전두환 씨라고 부르고 싶습니다만, 이 문장에 한 해 한 번만 전 대통령이라고 쓰겠습니다) 같이 말입니다. 그럼 그는 ‘전 대통령’으로 기능합니다. 무슨 자택 정치를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을 불러 어떻게 하라고 시키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건 일반 시민의 모습은 아닙니다. 어느 일반 시민이 집 앞이나 집 안에서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주변 참모를 시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시킵니까? 일반 시민으로 돌아온 대통령은 오직 노무현 대통령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점은 그를 유일하게 만듭니다.
#6
저는 ‘정의’를 추구합니다. 대학 친구 중 하나는 제게 말했습니다. 그 정의는 정의하기 나름이라, 정의를 추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그 말에 매우 동의한 저는 한동안 ‘정의’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내려놓고 정의에 대해서 정의하는 길에 올라본 것입니다. 현재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 있으면서 점점 정의를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마는, 오늘 하루는 그 답을 말해보고 싶습니다. 정의는, 노무현 정신이 아닐까요. 시민이 주인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모두가 양심에 따라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며, 모두가 배 곪는 것 걱정 안 하고 하루하루 웃으며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는 것.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듯이, 우리 개인이 사회의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 그렇게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살아있는. 아무리 강한 자에게 약한 자가 잡아 먹히더라고, 쉽게 잡아먹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나라. 그것이 정의. 그것이 정의라고, 그의 서거 10주기인 이 날에 외쳐보고 싶습니다.
#7
KBS에 감사합니다. <봉하마을에서 온 편지>를 보며 울었습니다. 10년 전 저와, 아버지와, 사람들과, 노무현을 떠올렸습니다.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답을 떠올리게 도와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물론 저는 내일 또 출근해서, 여러분과 즉 언론과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KBS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