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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수 Jul 26. 2019

實在하는 예민한 아이, 엄마 잘못이 아니예요


혹시 아가가 밤이나 낮이나 엄마로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아서 고민인가요?

식성이 심하게 까탈스러워서 고민인가요?

잠귀가 밝은데다 한 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약간의 불빛만 있어도 잠들지 못하여 고민인가요?

걱정스러울 정도로 낯가림이 심하거나 수줍음을 많이 타서 고민인가요?

엄마 껌딱지 유아기를 보내고 나서 어린이가 되었는데도 낯선 학교나 학원이라면 질색이라서 고민인가요?

이대로 크다가는 호된 사춘기를 겪게 될까봐, 사회성이 떨어지는 어른이 될까봐 고민인가요?

다른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우리 아이만 유독 아무래서 고민인데, 그게 다 내가 잘 못 키워서 이러나 싶어 고민이라면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아들은 벌써 만70개월 차에 접어들어 우리 나이로 7살입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육아서가 한창 유행을 했습니다. 미국인 작가가 프랑스에서 육아와 출산을 하며 엄마로서만이 아닌 사회인으로서도 육아와 삶의 균형을 맞추는 프랑스식 육아를 소개한 책이었는데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아기를 혼자서 잠들게 한다든지 3개월이면 탁아소에 맡기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든지 아기를 포대기로 묶어서라도 엄마 몸에 붙어있게 하는 우리네 육아와는 굉장히 다른 내용이 많았습니다.

  <프랑스 아이처럼>에서 소개된 프랑스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 달이면 혼자서 잠을 자고, 3살이면 어른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합니다, 참 원더풀 하지요? 만삭 당시 저도 제 아이가 그런 얌전한(?!) 아이이기를 소망하며 정독을 했답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요, 남자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 어쩌지요? 엄마 손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웁니다. 수유 간격도 고작 1시간 30분, 대부분의 책에는 3시간에 1번씩 수유를 하라고 나오잖아요. 게다가 수유 후에는 잇몸 양치를 해주라고 하는데요. 힘껏 엄마 젖을 빨고 잠이 든 아기를 내려놓을라치면 어찌나 울어대는지, 겨우 잠든 아기 입을 벌려 손가락을 넣어 양치를 시킬라치면 또 자지러지게 울고, 달래려면 다시 젖을 물려야 하는데 이미 수유를 한 직후라 젖은 비어있고... 그 육아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내가 애를 잘 못 키워서 이렇나?’라는 걱정으로 잠시간을 쪼개서 인터넷 검색에 들어갑니다, “생후 1개월 혼자 눕혀서 재웠어요. 울었지만 그냥 두었습니다. 결국은 이제 혼자 뉘여 놓아도 잘 잡니다.” “수유는 3시간에 한 번, 먹여놓으면 3시간 쭉 잡니다.” “100일의 기적이 왔네요. 우리 아기가 밤에는 통잠을 잡니다.” 등등. 한 시도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고 밤낮없이 1시간 30분마다 수유를 하며 100일을 보냈지만 100일의 기적을 맞지는 못한 엄마로서 당혹감이 컸습니다. ‘다들 잘 하고 있는데 나만 이 모양인가...!’ 절망감이 엄습했습니다.

저는 출산 때 골반 깊숙이에 있는 관절을 다쳐 병명도 빨리 찾지 못하고 6개월을 혼자서 일어나지를 못 했습니다, 그래서 친정에서 치료 겸 산후조리를 한 덕분에 부모님께서 육아를 많이 도와 주셨는데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한시도 엄마 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저 아이를 혼자서 어떻게 키웠을까 싶습니다. 홀로 예민한 아이를 혹은 둘 이상의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계실 텐데요,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작은 소리나 빛, 불쾌한 냄새에도 시끄럽게 울던 신생아기를 지나 이유식을 시작하자니 식성은 또 어찌나 까다롭던지, 재료를 으깨고 다지고 갈아서 만든 이유식은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마치 마스터피스 하나를 선별하기 위해 무수한 도자기를 깨트리는 장인이 되어가는 과정같았죠. 걷기 시작하면서 밖에 데리고 나가보니, 야생 동물 마냥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숨기지를 않나, 여전히 잠은 별로 없고, 밥이라 많이 먹어주면 좋은데 그것도 아니요, 대변은 집이 아니면 절대로 보지를 않고... 첫 아이인지라 모든 아기들은 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까다로운 아기를 키우며 화낼 일이 점점 많아져 갔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육아서 탐독. 그런 와중에 평균의 다른 사람보다는 민감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하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레인 N. 아론이라는 미국인 심리학자의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심리학계 최초로 ‘민감함’이라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심한과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고민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 이혼과 박사과정을 포기하는 어려운 과정에서 심리치료를 받으며, 자신이 가진 민감함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연구에 돌입하죠. 이렇게 나온 책이 바로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이 책은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뜨거운 호응을 얻습니다. 민감함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방증입니다. 그 이후로 <까다롭고 예민한 내 아이, 어떻게 키울까>를 비롯한 저서를 잇달아 출간하면서 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상처 치유를 돕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이 세상에는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들이 있으며 대략 15~20% 선으로 추정합니다. 다른 아가들은 수월하게 해내는 것을 유독 까다롭게 거부하여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아이들이 바로 이 비율 안에 드는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들>은 1997년에 출간되었는데요, 민감함에 대한 연구의 출발점이라고 본다면 이제 2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일레인 N. 아론을 선두로 프랑스의 크리스텔 프티콜랭, 독일의 롤프 젤린, 일본의 오카다 다카시 등 민감함을 연구하는 학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학자들이 예민함을 연구하게 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예민한 사람이었던 거죠. 예민함이 야기한 심리적인 문제와 문화적인 충돌 때문에 고통을 겪어오다가, 예민함은 타고난 신체적 특징(기질)이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다루기 힘든 예민함 때문에 양육에서부터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며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어, 자존감이 낮고 대인관계가 불편한 성인으로 자란다는 일련의 . 즉 자신들이 처한 문제의 본질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예민함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과 세상의 오해라는 점을 밝혀낸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타고난 예민한 아이들은 키우기 까다로운 특징 때문에 부모에게는 매 순간 시험에 든다는 좌절감을 주고, 사회・문화적으로는 숫기가 없고 예민한 경쟁력 떨어지는 인물이라는 오명을 쓰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건 엄마 혹은 부모라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죄책감과 타인의 질타입니다.

  평균 밖의 소수는 이해받기 보다는 공격이나 질타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이 예민한 아이들은 예민할 수밖에 없는 신체적 특징을 타고 납니다. 뿐만 아니라 감수성이 풍부하고 상대방의 감정도 스펀지처럼 흡수합니다. 이런 특징을 이해하지 않고는 이 아이들은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이’로 ‘유난스러워 상대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달고 일평생을 상처 속에서 살게 되기도 합니다. 저마다 타고난 개성을 자신의 특징으로 평범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잘 활용하며 행복하게 섞여 살 수 있기를 바라며 예민한 아이에 대한 공부와 육아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학자들의 책을 읽었지만 진위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라 예민한 아이와 예민한 아이를 기르는 법에 대한 ‘취향고백’입니다. 평균에 비해 수가 적다보니,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만으로 5년이 넘도록 아들을 키워오며, 어디를 가나 제 아들처럼 예민한 아이들이 한 둘은 꼭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또한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임을, 그것을 이해받지 못해서 상처로 남아 있는 흔적이 많음을 알았으며, 아들을 키워가며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경험을 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께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참고로, 사람의 기질이나 성격을 두고 민감하다는 단어보다는 ‘예민하다’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지만 ‘민감함’으로 번역된 도서나 연구결과는 ‘민감함’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예민함’으로 혼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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