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아내와 함께 오래전부터 계획해 왔던 마흔의 첫 번째 은퇴를 앞두고 걱정과 기대, 설렘과 불안등 여러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정말 이대로 퇴사해도 괜찮은 것일까? 어서 퇴사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데…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아무리 싫더라도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게 맞는 것인가? 목표한 자산을 모아 기반을 마련하였으니 이제 너무 돈을 좇지 말자…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돈이 안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시도하고 싶다…
나의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 부부,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였고, 두 달의 기간 동안 누군가가 어떻게 읽었으면 하는 것이 아닌 나의 생각과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처음에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로 가벼운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퇴사 전후로 글을 쓰다 보니 글이 자연스레 진지해졌다. 중요한 결정을 내린 시기인 만큼 생각이 복잡하고 깊어져서 그랬던 것 같다.
2010년 10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총 15년의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직장생활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된 지 이제 겨우 3주 남짓 되었다. 아직도 다음 회사를 가기 전에 긴 휴가를 쓴 기분이라 실감이 나지 않지만, 나에게 당장 다음 회사가 없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할 뿐이다.
출근을 해야 하는 아침 익숙한 집에서의 기분 좋은 미시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이제야 ‘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음을 느낀다.
억지로 잠을 깨워 출근하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눈을 떠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온갖 가짜노동이 난무하는 회사에서의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생각하고 앞으로의 삶을 그릴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회의 대신 산책을 하며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고, 보고서 대신 노트에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바뀐 지금의 삶을 천천히 즐겨보고 있다.
또한 회사를 다니며 보고서 아닌 다른 글을 쓰려 몇 번이고 시도했으나 번번이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했다. 퇴근 후 글을 쓰려면 피로가 찾아왔고,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했지만 정리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 간혹 마음을 잡고 글을 시작하더라도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 미루다 보면 내가 쓰려했던 글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미완성의 글과 주제들이 늘어 갈수록 ‘혹시 나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들며 회의감에 빠져들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글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온전히 나의 시간을 갖게 된 지금 퇴사하며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우리 부부의 첫 번째 은퇴라는 큰 결정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지금의 감정과 생각들이 시간이 흘러 잊혀지기 전에 글로 담아 지금의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앞으로는 그동안 묵혀두었던 주제들을 꺼내 하나씩 글을 써나가보고 싶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작가’라는 단어에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