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변화

백수의 하루

by 해일

10월에 퇴직 후 약 두 달이 흘렀다.

퇴직한 직후에는 아직 직장인의 관성이 남아 있었는지 백수답지 않게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많은 이들의 걱정과 축하로 시작된 휴식은 시간이 지나니 이젠 걱정도 축하도 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난 퇴직하고 난 후 특별히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진 않았다. 단지 아내와 함께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노동으로만 보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아, 세계일주의 거창함은 아니지만 여러 나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지내볼 계획은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언제 갈지는 아직 미정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삶을 살면서 어떤 특별한 계획을 세우며 살아가는 것 같진 않다.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과 결혼이란 숙제를 마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을 살게 된다. 물론 최근에는 아이와 결혼은 선택의 문제로 유연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가던 길 그대로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걸 불안해한다. 지금 내가 액셀을 떼어버리면 남들보다 뒤처지고, 사고가 날 것 같은 두려움에 매일 같은 하루를 살면서 조금의 의미를 찾으려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마흔 즈음의 은퇴와 갭이어, 휴식을 계획하고 살아왔던 나조차도 처음에는 불안하고, 이렇게 해도 되는지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퇴사한 직후에 일부러 바쁘게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 처음보다는 많은 부분에서 불안감이 사라지고 있다. 당장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해서 길거리로 쫓겨나지 않고, 통장의 돈이 연기처럼 사라지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 여유자금을 모아놓았기에 당연한 얘기지만, 왜인지 모르게 돈을 버는 행동을 멈추면 모든 게 사라질 것 같은 불안감이 무의식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느 정도 백수의 삶에 익숙해진 느낌이다. 일주일에 3~4번은 아침에 눈뜨자마자 출근 대신 헬스장으로 가서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여의도의 헤비하고 빠른 점심식사 대신 집에서 여유롭게 그리고 부담 없는 식사를 한다. 그리고 매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카페에서 멍 때리며 책을 보기도 하고, 드럼이나 골프 같은 취미생활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집에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를 본다. 물론 백수도 주변에 사람이 있기에 사람을 만나러 다니기도 한다.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만병의 근원인 ‘회사’를 그만둬서인지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얼굴 좋아졌다는 얘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전과 달리 몸이 가볍고 컨디션이 좋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다.

이렇게 살기 위해 지금까지 그렇게 힘든 고생을 해왔던 것일까 라는 허무함이 들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없다면 지금의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여유롭고 한가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하루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간다.



* 아직 아내는 퇴사하기 전이라 백수보다는 전업주부에 가까운 삶인 듯하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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