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크리스마스

내가 아닌 그의 방향

by JE

오늘은 12월 25일이었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유난히 가볍게 느껴지는 날.


부모님과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고,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던 순간이었다.

그는 그의 여자 친구와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였고, 거리엔 사람도 많았고, 모든 게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더 잔인했다.


우리는 거의 정면으로 마주쳤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그는 정면을 보고 있었고, 그래서 어쩌면 나보다 먼저 내가 있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끝내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못 본 건지,

본 척하지 않은 건지 알 수 없게, 허공만 응시한 채 그의 여자 친구와 손을 잡고 그대로 지나갔다.


그 순간 가장 아팠던 건,
그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보다
그 장면이 하필 크리스마스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내 앞을 그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지나갔다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그에게 묻지도 못한다.
“봤는데 모른 척한 거야?”
“아니면 정말 못 본 거야?”
그 질문조차 할 수 없게,

상황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남은 나는 마치 이 세상에서 투명한 사람이 된 것처럼
이미 지나간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것 그거밖에 없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마치 이 세상의 주인공은 그와 그의 여자 친구이고,
나는 우연히 같은 장면에 끼어든

엑스트라 같다는 느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들의 크리스마스 한 장면 속에서
나는 그냥 지나가는 배경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짜증 나는 건,
그 순간 그렇게 궁금해하던 그의 여자 친구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끝까지 그만 봤다.
그만 보였고, 그만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더 슬프다.
이미 끝난 사람인데도,
내 시선은 아직 그에게 묶여 있다는 사실이.


분명 예전에는,
나를 보면 웃어주던 눈이었다.

내가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내가 바라보고 있지 않아도 그는 항상 나를 따듯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본 그의 눈은
정말 아무 감정도 없었다.
나를 보지 않았고, 나를 지나쳤고,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밉고, 너무 낯설어서
차라리 못 봤다고 믿고 싶어졌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크리스마스에,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저렇게 무표정할 수 있나,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저런 표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시선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왜 여자 친구를 보지 않고 허공에 시선이 가있었을까,

그는 항상 자신의 사랑에 시선이 가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리고 만약 내가 그 상황에서

남자 친구를 마주쳤다면,
나는 허공이 아니라 나의 사랑을,

나의 애인을 봤을 것 같은데.


그냥 잠시 이유 없이 표정이나 시선이 흔들린 걸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걸까.



그와 그의 여자 친구는 두 번째 재결합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두 번째 이별과 재결합 사이에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럼에도 다시 만났다는 건,
그만큼 좋은 걸까.
그만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익숙함일까.


나는 자꾸 상상해 본다.
그가 그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무언가를 깨닫고,
조금은 변하고 성숙해져서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와
“누나, 오랜만이야”라고 말해주는 장면을.


그 상상이 얼마나 허무한지 알면서도,
나는 아직 그 장면을 마음에서 지우지 못한다.
오늘 나는 그를 만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이 무너졌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