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나’와 ‘타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실험이었다.
우리는 타인을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을 보고,
자신을 잃어갈수록 더욱 그 타자에게 매달린다.
인간은 스스로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거울처럼 세우고,
그 거울이 깨졌을 때 비로소
자신의 형태가 얼마나 일그러져 있었는지 알게 된다.
사람은 타인을 나라고 착각한다.
타자의 숨결을 내 호흡이라 믿고,
타자의 미소를 나의 구조물이라 믿는다.
그래서 사랑이 무너질 때
사라지는 것은 관계가 아니라
오랫동안 외면해 온 ‘진짜 자기 자신’이다.
다만 인간은 그 붕괴의 순간을 공백으로만 이해한다.
어떤 고통은 그저 느껴질 뿐,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늘 애정과 사랑을 혼동한다.
애정은 관찰 가능하지만,
사랑은 관측자마저 흔들어버리는 사건이다.
사건 이후 이전의 나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애정은 “그래서 좋아한다”지만
사랑은 “그럼에도 사랑한다”이다.
사랑은 이성의 인과를 벗어난 자리에서 태어나
감정의 잔해 위에서만 존재를 드러낸다.
행복조차 사랑의 변주다
행복은 손에 닿는 순간 이미 사라지고,
충만은 도달하는 순간부터 결핍이 된다.
욕망은 항상 현재를 불신한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히 불만족의 존재이고,
사랑은 그 불만족이 형태를 얻은 가장 사적인 신화다.
나는 그를 사랑하며 나의 외연을 확장했고,
그를 잃으며 내면의 심연을 깨달았다.
타자는 내가 잃고 나서야
완전히 타자가 된다.
그제야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묻기 시작했다
상실 이후에야 비로소
‘나’라는 공간이 존재하기 시작했으니까.
내 안에서 타자를 진정으로 잃는 순간,
나는 나를 되찾을 것 이다.
사랑은 끝나도 남아 있고,
사라져도 작동하고,
부서져도 어떤 의미는 지속된다.
그 흔적들은 때로는 애증이 되고,
때로는 기억이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된다.
아마 사랑이란,
나를 잃어버린 자리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기 위해
인간이 통과해야 하는
가장 오래된, 가장 난해한 의식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