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장에는 주인이 있다.

AI시대의 저작권

by 아침이




사람을 외형적 특징으로만 본다면 모두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와 성인, 동양인과 서양인, 남성과 여성 등 생물학적 특징에 따라 커다란 범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손가락 열개, 발가락 열개, 얼굴 속 눈코입의 위치까지 따지고 들어도 모두가 비슷한 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분명하게 다르게 생겼습니다. 같은 부모아래 태어나 동일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형제자매조차 결코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손가락 끝에 새겨진 무늬는 어떤가요? 그저 비슷한 곡선이 쌓여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지문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 고유하게 다릅니다.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들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부르는 이야기 구조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백가지 모양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있다면, 백 명의 신데렐라와 백 명의 왕자, 백 명의 계모와 언니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성경 속 솔로몬 왕은 ‘해 아래 새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완전하게 새로운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비슷한 형태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있을 뿐입니다. 손가락마다 지문이 각기 다르듯 이야기들에는 그것을 만들어낸 주인이 명확하게 존재합니다. 천만 개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펼쳐놓고 “당신이 쓴 이야기를 찾아보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작가는 헷갈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는 단순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뇌의 시간 끝에 탄생하는 창작물이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은 그렇게 탄생한 창작물에 대해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법적인 울타리입니다.


그렇다면 AI가 만든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은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것의 사용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일까요? AI는 고뇌의 시간이 없이 그저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명령어(프롬프트)에 따라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만약 고흐의 그림만을 학습시킨 뒤 유사한 결과물을 내도록 프롬프트를 입력한다면 그 결과물은 고흐의 아류작에 불과할 것입니다.



ChatGPT를 만든 OpenAI가 개발한 이미지·영상 생성형 AI 툴 Sora를 활용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스타일로 서울의 밤을 표현한 그림.


하지만 100명의 작가의 그림을 학습시킨 뒤 1%씩만 조합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게 한다면 어떨까요. 결과물에서 그 누구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면 새로운 창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그 결과물에 대한 사용권리가 누구에게 있는 걸까요? 현행 저작권법 제2조에 따르면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만이 저작물로 인정받습니다. 따라서 AI는 법적으로 ‘저작자’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AI 도구를 활용해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담아 ‘ 창의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일 경우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의 경우 AI 도구를 활용해 사람이 창의적으로 재가공해 만든 영상의 저작권을 인정하고 수익창출을 허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생성형 AI로 바다 영상과 파도 소리를 만들어 여름의 추억이란 주제의 영상물을 제작한다면, 그 결과물의 저작권은 저에게 있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가 입력한 프롬프트 한 줄에 만족스러운 영상과 음향을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AI가 수많은 원저작물들을 학습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원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사람이 누군가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AI의 학습도 그러한 영감의 범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AI가 누구의 것을 학습했는지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창작자는 타인의 지적재산권 침해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무단 수집은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AI개발사의 저작물 무단 학습에 대해 작가들이 집단 소송하는 일들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TDM(Text and Data Mining) AI 학습 목적의 데이터 수집에 대한 허용범위를 법으로 명확히 하여 원저작물의 저작권 침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데이터는 수집되고 있으며,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누군가는 ‘저작권이 인정되는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디자인 작업 시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소스를 구매하여 변형, 조합 후 포토샵과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든 결과물은 새로운 창작물로 인정받습니다. AI 도구를 활용해 사람이 만든 결과물도 이러한 방식으로 저작권을 인정받아도 문제가 없을까요? 하지만 그렇게 만든 결과물이 창작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기존 저작물과 유사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만들어줘 “라는 프롬프트 한 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고유한 디자인이라 믿고 구매한 가방이 사실은 유명브랜드를 카피한 제품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처럼, 내가 AI를 활용해 만든 결과물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면 그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요? 생성형 AI를 활용해 창작물을 만들려던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AI개발사가 원저작자의 동의 없이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하고 학습하여 활용한 것이 잘못일까요?


이러한 종류의 법적, 윤리적 질문은 AI와 저작권의 영역에서 현재 우리가 당면한 과제들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하면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20회 이상 개정 되어 왔다고 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창작물의 저작권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정의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문장에는 주인이 있으며 붓질 위에는 창작자의 영혼이 담겨있습니다. 창작자가 아무리 스스로를 속이려 할지라도 어디까지가 영감의 영역이며 어디서부터 표절인지 그 경계를 창작자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AI라는 도구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채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창작자들의 또 다른 뮤즈(Muse)나 훌륭한 조수가 되어 줄 수도 있고, 창작의 날개를 꺾고 도둑으로 전락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생성형 AI도구가 창작자들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칼은 위험한 도구이지만 요리사에게는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게 해주는 필수적인 도구인 것처럼 어떻게 쓰일지는 결국 최종적으로는 개인의 몫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손쉽게 창작물을 만들고 배포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나의 저작권이 쉽게 침해당할 수도 있고 나 역시 무의식 중에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기도 쉬운 환경입니다. 창작자라면 자신의 작품이 소중한 만큼, 무의식 중에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창작자 개개인이 발전하는 기술에 따라 창작윤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창작의 자유에 앞서 타인의 저작권을 존중하겠다는 의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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