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대로 계속해서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아침 6시, 매일 똑같은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비척비척 일어나 씻고 어젯밤에 골라둔 옷을 입는다. 루틴대로 출근 준비가 완료 된다. 아침은 거르더라도 약은 꼬박 챙겨 먹는다. 집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서 내려 7시 11분에 출발하는 지하철을 타면 늦지 않게 회사에 도착한다. 무표정한 직장인들 틈에서 끼어 출근하는 일상은 괴로울 정도로 무료하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니. 가끔은 숨 막히게 지겹다. 하지만 3년 전만 해도 이 평범한 하루는 너무나도 바라던 일상이자 내가 얻지 못할 것 같은 하루였다. 이 지루한 일상에 도달하기까지의 아주 느린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2017년, 아빠의 죽음,
그다음 해 이어진 엄마의 죽음.
죽음과의 사투에 지친 나는 멈춰버린 시간 속에 머물기로 했다. 죽으면 여태 애써온 모든 것이 그대로 끝난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자 삶의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사라진 의욕은 수동적으로 죽음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그런 나를 간신히 붙들어 준 것은 매일 같이 내 안부를 확인하는 친구의 불안 섞인 애정이었으나, 은둔하던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건 뜻 밖에도 케이팝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최애를 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으니까. 생각보다 훨씬.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무료한 일상 속에 마주한 '최애'였고 아주 오랜만에 원하는 것이 생겼다. 멈춰 있던 시계를 다시 돌려보려 했으나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코로나와 부모님의 부재로 계획했던 미래는 이미 오래전에 어그러졌고,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별 수 없이 이전 경력과 관련된 일자리에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도 ‘나라도 나를 안 뽑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거듭되는 낙방과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사회는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는 내면의 목소리만 커져 갔다.
그러던 중 예전에 함께 일했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내 전공과 관련된 일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며 도와줄 수 있겠냐고. 집과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우선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렇게 발을 디딘 곳에서 벌써 3년째 근무 중이다. 이렇게나 인생은 알 수 없음의 연속이다.
인생을 계획하고 예측하는 것은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가. 20대가 된 후 내가 했던 고민의 반절은 부모님과 함께 할 미래였다. 결혼을 떠올리면 아름다운 드레스와 멋진 남편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휠체어를 탄 아빠와 신부입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생각했다. 해외에 나가 살려는 계획을 세울 때면 외동인 내가 한국에 없으면 부모님은 누가 어떻게 돌볼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내 미래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부모님을 부양하는 일이 덤으로 따라왔다. 하지만 아빠의 갑작스러운 폐암 선고와 엄마의 악화된 건강 앞에 그런 걱정은 부질없는 것이 되었다. 미래가 오기 전에 현실이 먼저 무너졌다.
당시 대학원에 다니던 나는 학업을 중단하고 본가로 내려가 아빠를 돌봤고, 아빠가 돌아가신 이듬해에는 엄마를 돌봤다. 결국 내가 그렸던 미래는 사라졌고, 나를 지탱해 주던 부모님도 나를 떠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모님이 남기고 간 물건들과 함께 덩그러니 나만 남겨졌다. 긴 자취생활로 서울에서 혼자 지낸 기간이 길어 혼자라는 감각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을 하게 된 것은 인터넷을 설치할 때 였다
'가족 결합으로 묶을 분들이 더 없을까요?'
'없는데요'
'부모님은 다른 통신사를 쓰시나요?'
그 물음 앞에 '부모님이 안 계신데요' 하고 대답하자 상대방이 당황했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것 말고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대충 얼버무리면 부모님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까지 발생했다. 계획하고 그려놓았던 미래가 전부 사라지고 하얀 백지만 남았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 앞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복잡한 미로 한가운데 떨어진 것 같기도 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것 같기도 했다.
내 삶을 끌어가던 중심축이 사라지자 우울은 금방 나를 잠식했다. 방향성을 잃어버린 채 죽지 못해 살아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죽음을 결심하면 열심히 집을 치웠다. 이유는 단순했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 집으로 돌아와 짐을 치우던 시간이 몹시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남겨진 적이 있었기에,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런 괴로움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집을 정리하고 나면 유서를 썼다. 쓸 말은 많지 않았다. 가진 물건 중 좋은 것은 아끼는 사촌 동생에게 주라고 말했고, 매일 같이 나의 안부를 물으며 살펴주던 친구에게는 미안하다고 적었다. 그때 내가 걱정했던 것은 오직 그 친구 하나 뿐이었다. 내가 죽더라도 자신이 부족해서라는 생각만큼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유서를 쓰고 나면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비겁하게 죽음을 내일로 유예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죽고 싶다는 말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그렇게 삶에 대한 욕구를 모으며 하루하루를 연장했다. 천천히 죽어가던 시간 속에서 우연히 한 케이팝 아이돌 그룹을 발견했다. 한 번도 깊게 접해보지 못했던 세계는 완전한 별천지였다. 내일이, 다음 주가 기다려지는 일들이 나를 기다렸다. 미래를 끌어와 생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정해둔 나이에 부모님이 남겨주신 돈을 다 쓰고 죽을 생각이었기에 시간과 돈을 쓰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꽤 오랜 시간 그 세계에 머물렀다. 좋은 사람들을 얻었고, 때로는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세계에서 나와 다시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곳에서 그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것을 통해 누군가는 위로를, 누군가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 누군가는 내일을 한 번 더 살아볼 이유를 찾았으면 좋겠다. 그 수많은 밤들 속, 나 역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