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이렇게나 많이 먹어야 한다고요?

난 괜찮은 거 같은데

by 아침이



고통에 이름을 붙일 때, 우리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매일 아침 9호선 급행을 타고 출근한다. 열차는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만큼 사람을 가득 채우고 빠르게 달린다. 역을 지날 때마다 내리는 사람은 없고 오직 타는 사람들만 존재한다. 퍼스널 스페이스는 고사하고 앞, 뒤, 옆사람 사이에 꽉 끼어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답답하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안 된다. 얼른 핸드폰 액정으로 시선을 옮긴다. 내 ‘최애’가 손바닥 만한 화면 속 거대한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그것에 집중하며 액정 안의 세계로 정신을 분산시킨다. 무대를 직접 보던 당시 내가 느꼈던 감격 떠올리려 애쓰는데 뒷사람이 나를 밀어온다. 눈앞엔 나보다 키가 훌쩍 큰 남자가 거대한 벽처럼 서있다. 좁고 답답한 방에 갇힌 것만 같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순간 숨이 가빠온다.


아, 안되는데.


몇 번 크게 심호흡을 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호흡이 자꾸 엉킨다. 익숙한 감각이다. 손끝이 차갑게 변한 것 같아 뒤늦게 손을 주물러 본다. 어지럽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만 같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크게 호흡을 내쉰다. 누군가 ‘괜찮으세요?’ 물어오지만 대답할 여력이 없다. 열차가 역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내린다. 가방을 뒤져 보았지만 오늘따라 늘 갖고 다니던 상비약이 보이질 않는다. 결국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플랫폼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 호흡을 고른다.


멍하니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렇게 30분 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뒤,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일반 열차에 오른다. 회사는 당연히 지각이다. 이렇게 갑자기 공황 발작이 올 때면 파도에 쓸려가듯 어쩔 도리가 없다. 출근길, 공황 발작이 찾아오면 내가 겪는 일이다.


처음 신경 정신과에 가기로 결심했던 것 역시 공황 발작 때문이었다. 그날은 지극히 평범하던 하루 중 하나였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었고, 강의실로 돌아가 강의 준비를 했다. 어떠한 전조도 없었고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사건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숨이 막힌다.’ ‘호흡하기가 힘들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가 나를 덮치듯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휘감았다. 어서 빨리 이 공간에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언가 잘못 됐다'


정처 없이 걸으며 학교와 가까운 병원을 검색해 보았다. 그중 몇 개의 이름을 골라 후기들을 찾아보았다. 그때의 나는 정신과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가야 된다고 생각했고, 정신과 약물을 먹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저항이 컸다. 그래서 어떤 블로그에서 ‘이 병원은 약을 잘 처방 안 해줘서 별로예요’ 써진 후기를 보고 여기라면 믿을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인상 좋은 선생님이 계신 정신과 클리닉에 예약을 잡았다. 병원 가기 전까지 그런 증상이 또 발생하진 않았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우울한 기분이 들면 삶에 대한 의지가 자주 꺾였기에 검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을 하며 병원엘 갔다.


두어 시간 동안의 긴 검사 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 오기까지 용기 내신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시작이 반이기에 이미 치료의 반절이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상담이 시작되었다. 검사 결과 나는 중증 우울증으로 인해 호르몬 체계가 고장 나 있는 상태였고, 심리적인 문제도 있어 회복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약물 치료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열 알 가까이 되는 약을 처방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경과를 보며 상담을 병행하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었다고? 다들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나?'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체로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기에 병원의 진단을 받고 나서야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마음이 아픈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방치하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가 돼서야 ‘내가 힘들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것이다. 증상이 겉으로 드러날 무렵이면 이미 조용히 온몸에 퍼져 손 쓸 수 없는 암처럼 말이다.


나를 괴롭게 하는 증상들에 이름이 붙었다. 불안장애, 중증 우울증, 공황장애. 이름을 붙이고 나니 의외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의지가 약해서, 내가 게을러서,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나의 잘못이 아니라, 나는 아파서 그랬던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 보다 더 많이 애쓰느라 더 빨리 닳아버린 관절처럼, 마음의 힘을 너무 많이 써버려 남들보다 쉽게 지치고 쉽게 아파하게 된 거다. 그제야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아지기 위해 약을 먹고 있고, 상담을 받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몇 알의 알약을 삼키고, 잠들기 전 또 몇 알의 알약을 삼키며 살아간다. 내 마음은 절뚝거리며 하루를 걸어간다. 도대체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하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나는 영원히 우울증을 떨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어떤 사람은 짧은 기간의 치료를 통해 회복할 힘을 얻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아팠던 사람에게는 그만큼 오랜 시간 회복과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나 우울한 감정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병원의 문을 두드려 보라 말해주고 싶다.


모든 고통에는 이름이 있다.

그것에 이름을 붙일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를 끌어안으며 회복으로 걸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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