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밸류

나에게도 집이 있었다면

by 아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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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센티멘탈 밸류를 보고 왔습니다. 제7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고 해 보기 전부터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영화보기 전에 정보를 최대한 적게 접하고 가는 걸 좋아해서 예고편의 일부만 보고 너무 무거운 분위기는 아닐지 정도만 확인하고 보러 갔습니다.


공식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본정보]

개봉 2026.02.18.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드라마

국가 노르웨이

러닝타임 134분


[공식소개]

오래전 집을 떠났던 영화감독 구스타브가 배우가 된 딸 노라에게 “너를 위해 쓴 각본”이라며 신작의 주연 자리를 제안하러 돌아온다. 동생과 달리 아버지가 편하지 않은 노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그 역할은 할리우드 스타에게 돌아간다. 해지지도 않고, 헤어질 수도 없는 관계 속에서, 한 편의 영화와 함께 두 자매와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과 서로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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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집에 대한 어린 '노라'의 에세이를 통해 노라의 가족 안에 갈등이 있고 아이들이 그 갈등 속에서 자라났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정이 깨어졌고 시간이 흘러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영화감독인 아버지 '구스타브'와 두 자매가 재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세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갈등을 빚으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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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는 연극배우인 노라를 위한 대본을 준비했다며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이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깊었던 노라는 거절하게 되고 구스타브는 영화제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헐리우드 배우 '레이첼' 에게 이 역할을 부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레이첼과 영화를 찍는 동안 구스타브는 어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하기만 합니다. 레이첼 역시 구스타브의 옛 영화에 큰 감명을 받고 출연을 결심했으나 자신이 이 역활에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고민합니다.


그러는 사이 노라는 극단 안에서 불륜관계를 맺고 있던 유부남 애인의 이혼소식을 듣고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노라는 이미 불안장애로 인해 일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과거 자살시도한 경험이 있는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노라에 비해 동생인 '아그네스'는 남편과 9살 된 아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정상성에 가까운 캐릭터로 등장하며 아버지 구스타브와의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영화에 출연시키고자 하는 구스타브와 갈등을 빚게 되고 크게 싸웁니다 .싸운 뒤 아버지가 두고간 각본을 읽게 된 아그네스는 각본에 빠져들게 되고 언니인 아그네스에게 대본을 전달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매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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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고 엉망인 자신에 비해 안정적인 삶을 꾸려 가는 아그네스에게 우리는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너는 정상일수 있었느냐고 담담하게 질문합니다. 그 말에 아그네스는 자신에게는 '언니'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엄마가 무너져 있을 때 언니가 머리도 감겨주고 학교에까지 데려다 주었던 이야기를 하며 덕분에 자신이 이렇게 자랄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메세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고통 속에 있을 때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기댈 곳이 있다면 사람은 안정감을 느끼고, 인생의 험난함 속에서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람은 강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엉망이라고 생각했던 '노라'의 인생은 어쩌면 자신도 알지 못했던 동생을 위한 희생으로 '아그네스'라는 열매를 맺은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이 날을 이후로 결과적으로 노라는 구스타브의 영화에 출연을 결심하게 되고 역시 아그네스 역시 아들을 영화에 출연시키고, 가족은 서로 화해하며 끝을 맺습니다.


영화는 커다란 사건을 던지기 보다는 잔잔한 갈등들을 각 인물의 시각에서 담담하게 풀어 갑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집'과 '가족'에 대해 곱씹게 되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집이란 또 무엇일까요.


노라는 극 중 세사람의 집이 그러했듯이 마치 기초가 잘못되어 오랜시간 천천히 금이가고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건물처럼 위태롭고 불안정하게 살아갑니다. 어린시절 부모님의 갈등 속에서 불안하고 두려웠을 노라는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기 보다는 언니로써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슬픔을 삼키는 법만을 배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라난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감정을 토해내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노라가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감 속에서도 무대 위에 올라 배역 속에 숨어 울고 소리 지를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 외에는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노라의 모습 속에서 저를 보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지는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는 슬픔을 덜어내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 숨어 간신히 숨죽여 우는 것 외에는 눈물을 흘리는 법을 도통 모르겠습니다.


가족의 화해와 집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를 보고 나서 가족이 없이 홀로 남겨진 저는 무너진 잔해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깨닫고 어떤 것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저에게 주어진 가족은 이미 해체되었고 지난 시간으로 박제 되었습니다. 돌이키고 싶다한들 이야기를 들어 줄 가족이 남아있지 않기에 화해도 용서도 불가한 일에 그치고 맙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이제는 슬픔과 비통을 억누르고 무너져 내리기 보다는 괴로움을 쏟아내고 슬픔을 토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해 울지 못하는 저를 대신해 울어줄 수 있는 영화속 인생들을 발견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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