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12. 우리 할말은 하고 삽시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얼굴에 큰 뾰루지가 났다. 노랗게 농익지 않아서 짜기 위해서 힘을 써도 부어오르기만 할 뿐, 아마 진정시킬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손으로 만져보니 아직 이틀은 있어야 농익을 것 같아 억지로 짜는 것을 포기했다. 하필이면 코 옆이라서 눈에도 너무나 잘 띄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기름기가 가신 얼굴을 보니 뾰루지는 한층 더 도드라져 보였고 기분은 순식간에 나빠졌다. 아침의 출발이 좋지 않았다.
얼굴에 최대한 티나지 않게 여드름 패치를 붙였다. 봉긋하게 올라오거나 약간의 붉은 기, 그리고 패치 자국이 여간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게 최선이라 생각하고 준비를 마쳤다. 출근하기 전 거울을 보니, 오늘의 의상 보다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크게 신경이 쓰였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에 들어설 때에도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사람들이 마치 내 여드름 패치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에 휩쌓였다. 괜히 손으로 패치를 한 번 매만지고 그 봉긋한 느낌을 증오했다.
사무실에 도착하고서 여느 때처럼 팀원 분들과 인사를 하고 점심식사도 같이 했다. 하루를 온전하게 보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씻기 위해서 욕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았을 때, 여드름 패치가 눈에 들어왔고 기름기가 있는 얼굴에 붙였던 패치를 떼어내기 시작할 즈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는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이 뾰루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다른 분들도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음을.
생각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내 얼굴에 난 큰 뾰루지가 아침부터 신경 쓰여서 너무 화가 나고 시작이 망쳤다고 해도 내 얼굴을 가족보다도 많이 보는 회사 사람들은 눈치도 못 채는 경우가 많다. 혹눈치를 챘더라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크게 넘어 가곤 한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전혀 없다. 결국 내가 만들어 낸 불쾌함 그 뿐이다.
잘 생각해보면 어제 다른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조차 기억도 못하는 세상이다. 내 하루의 일상은 너무 바쁘고 내가 마주하는 일상도 너무나 터프(tough)하여 남들에 대한 정보는 크게 머릿 속에 남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제 했던 실수도 일 주 전에 내게 상처를 입혔던 누군가의 말도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게 된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눈치를 보고 걱정을 한다.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나를 감출 필요도, 결점을 그렇게 크게 감춰야할 필요도 없다. 실수는 누구나 하고 결점은 누구나 있고, 우리는 너무나 바쁘고 남들은 기억에 크게 남지 않고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느끼니까.
한 번은 이런 사건이 있었다. 회사에서 PM으로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분석을 진행했고, 유의한 결과가 나오자 나는 기존에 운영하던 양식을 뒤엎어 보고서를 새롭게 만들었다. 3주 정도 시간을 들여 최종적인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를 진행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를 통해 보고 당시에는 제법 좋은 반응들이 보여주었다. 나는 성공적인 보고였음을 실감하고 뿌듯함을 느껴 한시름 놓으며 다른 업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건은 2주 정도 지나서 여기에서 발생했다.
보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보직자는 2주 뒤에 같은 내용을 똑같은 수준으로 지시했다. 정확히 내가 했던 내용 그대로를 말이다. 나는 혹시나 지난 번 보고에서 피드백을 주고 좀 더 추가적인 사항을 원하는 건가 싶어 고민했으나, 주어진 내용은 동일했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말을 건넸다.
"이거 지난 번에 보고 드렸던 건데, 좀 더 디벨롭이 필요해서 그러시는 거세요?"
"어? 이거 보고 했었나? 언제?"
허탈함, 헛웃음, 당황스러움. 그래서 이야기했다.
"지난 번에 제가 보고했던 자리가 그거였잖아요. 괜찮은 자료라고 좋아하셨는데, 잊으셨어요?"
누군가는 적당히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던 이야기일테지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 보직자 분은 당황스러워 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서는 자기가 확인하겠다고 하고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멍한 상태로 그 날의 일을 망쳤고 느꼈다. 결국 내게는 중요한 일들이라 생각했던 것은 남들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상당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이룩해 낸 성과 뿐만 아니라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도 동일함을.
아마 거기서 그냥 '알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같은 자료를 좀 더 추가해서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두어 번 계속해서 할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보면서 행동하는 것보다 정확한 지시로 확실하게 발전시키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나는 입을 열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판도는 꽤나 많이 바뀌었다. 해당 업무는 손대지 않아도 되었고 시간은 절약되었다. 눈치보지 않고 나를 표현하는 것은 나쁘지 않고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겪었다.
돌이켜보면 취업을 준비할 때에도 그랬다. 아마 지금도 그렇겠지만,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족보'처럼 내려오는 자기소개서와 면접후기들이 상당히 많다.
'10년 뒤에 이루고 싶은 일과 포부에 대해서 적어주세요.'
이런 자기소개서 질문에 답변을 쓸 때에는 기승전결을 어떻게 잡고 어떤 내용을 적어야한다던가 하는 그런 족보와 방식들이 있다. 동시에 면접에서도 어떤 질문에는 최대한 어떤 내용을 피하고 어떤 말들을 해야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등의 내용도 빈번하게 전해져 온다.
'면접에서 자기소개와 마지막 할 말은 어떻게 말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도 정말 하나같이 정설로 전해져 온다. 1분 자기소개에 들어가야 하는 내용들과 마지막 할말에서 하면 좋은 말들이나 질문들 리스트는 면접후기나 취업 관련된 카페에만 가도 정말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주어지는 기회가 많지 않은 만큼 가장 무난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면서 리스크를 회피하고자 함이겠으나, 나는 취업을 준비할 때부터 이런 방식에는 꽤나 회의적이었다.
그런 나였기에 나는 합격 자기소개서나 면접 팁 등을 보지 않았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일화들을 키워드별로 정리하고 쓰고 싶은 대로 적어냈다. 어차피 인생 살아온 것은 난데, 누구보다 잘 알고 느끼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실제 자기소개서 돌려보기를 하는 친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랬다.
'네 자기소개서는 정말 너 같다.'
면접에서 1분 자기소개서나 마지막 할말도 언제나 그랬다. 내가 취업을 준비했던 시기는 여지껏 살아온 인생을 반추할 수 있는 기회이자 시기였기에 그 간의 일생에서의 내 가치관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치관을 담아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그대로 투영했고 반응이 좋았던 것인지, 취업문이 높은 문과생으로서는 제법 많은 4개의 회사에 최종 합격했다. 나를 표현하는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취업을 하고서 면접 스태프로 두 번 참여한 적이 있었다. 새롭게 면접을 보는 취업준비생들이 각각의 세션에 맞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인솔을 해주는 역할이었다. 오전과 오후 두 번으로 나뉘어진 섹션에서 약 20여 명의 지원자들이 면접관들과 1:1 면접을 진행했었다.
1:1 면접을 진행하게 되면 나는 바깥에 앉아서 기다렸고 면접 이야기는 내가 집중만 하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잘 들렸다. 시작되는 1분 자기소개와 여러가지 질문들 그리고 마지막 할 말의 순서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이 면접 스태프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딱 하나가 있었다.
'20명의 1분 자기소개와 마지막 할 말의 구성이 진짜 똑같다.'
같은 얘기를 내용만 조금 다르게 20개를 듣는 느낌을 스태프인 나도 느꼈는데, 직접 평가해야 하는 면접관들은 어땠을까? 다들 천편일률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한다라는 것을 인터넷으로 봤을 것이고 면접스터디를 준비하면서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모험과 시도를 했던 내 입장에서는 조금의 아쉬움이 들었다. 다들 자기가 느낀 바와 겪으면서 얻은 것들은 다들 있을텐데, 그것이 합격의 '주류'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과 맞지 않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것이다. 나중에 후회가 남고 이렇게 얘기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미련이 남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서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아 후회를 하는 것은 좋은 피드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한 번 '도전'을 해야 한다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나의 이런 '할말하고 살기'에 걸맞는 행동은 일 적인 부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연애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이불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만한 행동에 대해서 부끄럽지만 두 개의 이야기를 소개해보겠다.
보통 썸을 탈 때에는 아직 연애를 하는 사이는 아니니까 더 많은 말들을 하거나 요구하기에는 오버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혹자는 구구절절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관계를 끝내는 게 구질구질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예전에는 그런 말들을 의식해서 점점 나와 이 관계를 억지로 끌고 있는 사람에게 모진 말을 하지 못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 썸은 달랐다.
우리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어쩌면 오버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우스울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할 말은 하고 끝내려고 해. 너는 굳이 나를 사귈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이 관계를 미적지근하게 붙잡고 있는 것도 알고 있어. 처음엔 그래서 그 마음을 혹시나 좀 더 돌릴 수 있을까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결국은 너는 변하지 않더라. 그래서 끝났다는 것은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냥 지나가도 될 일을 너한테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가 가련하더라고. 그래서 메시지 보내. 잘 지내고 안녕.
작년 겨울 즈음 썸을 탔던 친구에게 이런 메시지를 던진 적이 있었다. 보통 같았으면 '아 그냥 지친다.' 하고 넘어가거나 내게는 이미 마음이 없어서 점점 연을 끊는 그 사람과의 연락을 나도 점점 접는 식으로 마무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아닌 것 같아.' 라는 말을 한마디 하지 못해서 결국 내게는 상처를 주고 있는 그 사람에게 아직도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어느 순간 가련해 보였다.
또 한 번은 연애중인 그 사람의 마음은 이미 식어 끝이 보이는데 먼저 헤어지자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아직 좋아하는 내가 이별을 먼저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이미 변한 것도 너무 잘 알고 있고 헤어지고 싶은 것도 알고 있어. 나랑 만나자는 약속은 그렇게 미루고 연락도 뜸해지고 만나도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는데 그걸 모르면 눈치 없는 바보겠지. 근데 끝까지 마음 먼저 식은 네가 나한테 이야기하진 않더라. 그래서 답답해서 내가 얘기하려고."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건지, 친구들에게 가서 '차였다' 라고 이야기해서 위로받으려고 했던 건지, 아니면 정말로 나한테 미안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남이 될 마당에 내게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했을까 싶어 그냥 속시원하게 내질렀다.
결국 내가 좋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하는 연애인데, 이 순간 마저도 좋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나를 보면서 던진 그 이야기들을 내 친구들에게 했을 때에는 '너도 참 유난이다.'라는 말을 제법 들었다. 그러나 술이 무르익어 갈 즈음에 회자되는 내 이별 이야기에 대해 친구들은 '그래도 속은 시원하네.' 라며 저마다 아까의 유난 이라는 말을 덮었다.
나와는 달리 그 사람이 자기 친구들과 만나 하는 내 마지막 문자나 이별 대화는 술 안주 거리로 잘근잘근 씹히곤 했을테지만, 난 아직도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말을 안했으면 그 때 그렇게 이야기할 걸 이라면 분명 후회했을 것 같아서 말이다.
'90년대 생이 온다.' 책이 성행하면서 40대 이상의 직장인 분들이 세대간의 간극을 줄이는 데에 꽤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나이대의 분들 사이에서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에 대해서 '꼰대'냐 '안꼰대'냐를 나누면서 장난 치는 모습도 더러 보곤 했다.
'나이스 트라이'! 하지만 처세술 한 권으로 처세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하고 '직장생활 잘하는 법' 이라는 책을 하나 읽었다고 직장생활의 베테랑이 되지 않듯, 90년대 생을 그 책으로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셨다면 조금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겠다. 물론 이 말은 '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꼰대가 아니진 않습니다~' 라며 조롱하는 것도 90년대 생이 갑이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판단하시려고 하셨다면 한 발자국만 물러나셔서 좀 더 관찰해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아이러니한 노파심이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그런 적이 있었다. 회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한참 나오고 우리 회사에 대한 가치, 그리고 과거에 당신들이 겪었던 영광에 대해서 길게 늘어 놓는 자리였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뭐 재미있는 화두도 아니었고 적당히 들으면서 맞장구 쳐주는 정도의 화제였다. 과거의 이야기는 내가 모르니까, 내가 아는 영역이 아니니 조용히 들으면서 반응을 하는 정도였다. 이야기가 길어져 집중도가 떨어져 다른 생각을 할 즈음 화살이 내게 날아왔다.
"우리 회사 정도면 그래도 훌륭하지.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애들이 허다한데, 일단 우리 회사 들어오면은 애사심도 엄청 생기고 다들 그렇지. 우리 때랑 똑같아. (밤봇)아,그렇지 않냐?"
자 여기서 질문, 만약 부장님이 나를 콕 집어서 이렇게 이야기 했을 때, 가장 모범답안은?
1번. "그렇죠. 저희 회사 정도면은 다들 오고 싶어서 난리죠!"
2번. "에이 무슨 소리입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세요!"
3번. (술을 마시면서) "오늘 술이 다네요."
4번. "요즘은 평생직장이란 것도 없어서 애사심 챙기는 사람도 없고, 여기 들어올 정도면 다른 곳들도 붙는 친구들이 많아서 가고 싶으면야 준비 다시 하죠."
그래, 1번 이게 아주 모범답변이었을 것이다. 근데 나는 그 당시 긴 이야기로 지루해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고,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질문에 4번으로 대답했다.
"뭐, 요즘은 평생직장이란 것도 없어서 애사심 챙기는 사람도 없고, 여기 들어올 정도면 다른 곳들도 붙는 친구들이 많아서 가고 싶으면야 준비 다시 하죠."
조금은 싸해진 분위기를 직감하고 말을 이어가려다 그냥 술을 마셨다. 사실이니까. 그리고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진짜로 기회가 생기면 이직도 하고 싶고, 평생직장이라는 단어를 머릿 속에 담고 살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좀 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날은 술이 꽤 달았다.
아마 대부분은 사실 저기에 대해 앞에서는 모범답안을 이야기하고 뒤에서는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이라는 신조어를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해봤자 입만 아프고 괜히 싸움만 일어날까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야할 말을 하지 않았을 때 현대인들에게 나타나는 질병이 있다. 바로 '화병'이다.
화병,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아서 속에 불이 나는 듯이 아프고 우울해지며 화가 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그 원인은 단호하게 '스트레스'라고 하며, 이를 지나치게 압박한 나머지 발생하는 신체적인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말이 있다.
'속 시원하다.'
'속에 천불이 난다.' 라고 하는 화병과 정말 대조되는 말이다. 보통 '속 시원하다'라는 관용구는 꾹꾹 눌러 담았던 말을 바깥으로 표출해서 자신의 분노나 설움을 해소했을 때 쓰는 말이다. 그리고 속 시원한 말을 '사이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칭송하고 그 썰들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뿌듯해한다.
그러니까 다르게 이야기하면 우리는 은연중에 '사이다 같은 행동'과 '하고 싶은 말'을 동경하고 원한다. 하지만 하지 못해서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옛말이 된지 오래이며, '참으면 화병 나.' 라는 말과 '사이다썰'이라는 말을 더 많이 접하는 요즘,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왜 당신은 편하게 있으면서 나는 고통받아야 하는 가? 같이 마주하는 이 공간에서 왜 누구는 고통받고 누구는 편할 수 있는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입을 열어야 한다.
"우리 할 말은 하고 삽시다."
표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온전히 알지 못한다. 누군가가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을 설령 안다 하더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괜찮은가 봐'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고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는 만큼 '나'를 온전히 표현하는 쉬운 길은 없다. 그리고 그건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알아냈다.
잘 되지 않을 결말을 뻔히 알지만 이야기하지 않는 그 썸과 연애에 대해서 했던 말도, 이주 전에 보고했던 내용을 까맣게 잊은 보직자에 대한 항변도, 남들이 비슷하게 써내려가는 족보가 싫어 온전히 내가 만들어 낸 자기소개서와 면접의 말들도, 그리고 요즘 애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장의 이야기에 톡 쏘는 말을 한 것도 꽤 시원한 결과를 가져왔음을.
물론 할말을 하고 살기 위해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 그건 바로 '내가 할 건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관리질, 반항이나 의견피력은 아주 고깝게 보일 것이다.
연애에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며, 만든 보고자료의 퀄리티가 좋지 않아서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을 경우에도 나는 묵일했을 것이며, 내가 만든 자기소개서와 면접의 말들이 '탈락'이라는 결과를 심어줬다면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매사에 열심히 노력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면서 내 권리를 찾아가려고 하며, 부당한 대응이 들어왔을 때 맞받아칠 수 있을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할말은 하고 삽시다. 만약 잘 못하겠으나, 할 말을 할 수 있는 건덕지를 만듭시다."
의무를 다 하지 않은 채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은 횡포다. 의무를 다 하고 나서 권리를 당당하게 피력할 수 있는 '진짜 나 다운 나'를 위해서 오늘도 정진(精進), 정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