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11. 14일간 외출이 불가능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축하드립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집에서 보내게 되셨으며, 휴가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휴가를 철회하시고 다른 날을 선택하세요."
보건소에서 문자로 날아온 격리 통지서를 마주했을 때, 그 통지서는 내게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2주 동안 집안에 칩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렇다. 여름이 되면 고온으로 인해 좀 잠잠해질 거라던 그 코로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물론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것은 아니고 정확히는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법정자가격리 대상자가 된 것이다.
법정자가격리대상자는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어 집에서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오피스텔 1층에 있는 편의점을 방문하는 것은 고사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 또한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음성인데.'라며 속으로 씩씩대어도 법이 그렇다니 수긍하기로 했다.
다시말하면 내 모든 생활은 원천적으로 집 안에서만 일어나야 하고, 바깥과의 소통이라고는 문 앞에 놓여진 배달음식이나 인터넷쇼핑으로 산 생필품들을 수거하기 위해 문을 여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사람을 접촉하는 것은 못하기에 '문 앞에 둬주세요!'라고 외치는 것이 소통의 단말마다.
공교롭게도 그 2주는 내가 자그마치 한 달을 기다려온 휴가주간과도 겹쳐 있어, 친구들과 놀러가기로 한 휴가계획을 모두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휴가의 날은 거짓말처럼 다가와 여행을 출발한 친구들의 들뜬 카카오톡만을 연신 보여주었다. 첫 번째는 억울함, 다음으로는 속상함, 그리고 허탈함이 순차적으로 느껴졌고 그럼에도 배는 주렸기에 나는 배달 온 도시락을 그 어느 때보다 맛없게 먹었다.
저녁에는 속상함을 달래기 위해 맥주를 세 캔이나 까서 먹었고 아침에 바싹 마른 입으로 일어나 전날 먹은 비워진 맥주 캔 3개를 보았을 때에는 뭐 그 슬픔을 오래 끌고 가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씻고 나오자 한결 나았고 암막커튼을 열자 햇볕은 밝고 따뜻했기에, 어쨌거나 적응해야 하는 이 2주 간의 삶에서 보다 보람차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했다.
'2주간 뭘 하고 지내야 잘 지냈다고 소문이 날까?'
사실 소문도 나지 않을 것이고, 그럴싸한 일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생각으로 시작했던 몇 가지 소소한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결국 조우한 이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머릿결이 상당히 좋아졌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가르마를 타겠다고 펌을 3번이나 했던 내 머리는 굉장히 건조하고 상해서 푸석푸석한 상황이었다. 상한 부분을 대체적으로 잘라냈어도 회사를 가기 위해 아침에 한 번, 돌아와서 샤워를 하며 두 번씩이나 감았던 머리는 머리에 있는 기름기를 빼버리기에는 충분했다. 또한 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했던 왁스와 스프레이는 화학약품으로 머리카락을 혹사시켰고 이런 행동은 결론적으로는 소위 말하는 '개털'에 가까운 느낌으로 머리를 만들었다.
이 칩거기간 동안 바깥에 나갈 일도 남들을 만날 일도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머리는 아침이나 저녁에 한 번만 감게 되었다. 그리고 왁스나 스프레이 같은 것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머리에 부담이 많이 줄었는지 2주차에 들어서자 샴푸를 사용할 때 머리에 걸리는 느낌이 사라졌고, 드라이기를 이용해 머리를 말릴 때에도 엉키는 구석 없이 머리가 잘 말려졌다.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자 제법 부드럽게 넘어갔고 머리에는 필요한 기름기만 남아 윤기가 났다.
두 번째, 홈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본다는 성공적인 홈트레이닝, 하지만 보통은 의지박약과 그다지 적당치 않은 기구들을 애꿎게 탓하며 실패할 것이다. 나도 그 실패의 반열에 들어가 결국 헬스장을 등록한 평범한 회사원 A씨였다. PT를 등록하여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해왔던 나머지, 집에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들었다. 그렇다. 나하고는 연관이 전혀 없을 것 같았던 그 단어의 위기를 느낀 것이다.
'근손실'
원래 마른 몸이었고 운동을 시작한지는 이제야 3개월 정도이기에 근손실이라는 단어는 나하고는 사실 맞지는 않은 말이겠으나, 그래도 가진 거 없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가졌을 때 소중함을 더 느껴서 그런지 갑작스런 불안감을 느꼈고,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유튜브에서 홈트레이닝과 관련된 콘텐츠를 섭렵하며 흉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홈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맨몸으로도 할 수 있는 루틴을 일주 간 꾸준히 따라했고 어차피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에 이것저것 시도해보며 끝끝내는 덤벨까지 쿠팡으로 주문하여 팔 운동을 곁들어 하기도 했다. 처음 30분으로 시작했던 홈트레이닝은 어느덧 2주차에 들어섰을 때는 한 시간이 넘어있었고 헬스장에서 기구를 사용할 때 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잖은 자극이 오기 시작했다.
열흘째 되는 날, 처음으로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홈트레이닝도 되게 할만하네?"
세 번째, 공부를 시작했다.
2주간 집에만 있다해도 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9시 출근과 6시 퇴근 원칙은 지켜진다. 평소와 다른 것은 통근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도 되고, 노트북을 닫는 순간부터 나는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고, 이전에 등록해 놓았던 온라인 클래스의 강의를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오래 들었다. 평소에는 회사와 운동을 다녀오면 지친 몸인지라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지만, 칩거 기간 동안에는 그 피로도가 훨씬 적었기에 공부를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다.
초급단계를 거쳐 어느 정도 중급에 들어서자 강의를 듣고 툴(Tool)을 이용해 어떤 결과물을 내는 것의 즐거움이 시작되었고, 어느 날은 새벽 2시까지 시간가는 줄도 모른 채 작업에 몰두한 적도 있었다. 잘 하지는 않지만 어제보다 나아지는 실력에 뿌듯해하며 잠이 들기도 했다. 비로소 어느 정도 공부에 재미를 붙인 셈이다.
솔직해지자면 내가 격리가 해제된 후에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아닐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술을 마시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격리를 핑계로 밀렸던 약속들을 잔뜩 잡아 사람들을 만날거고, 그러기에 운동은 뒷전으로 몇 번 더 빠지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오면 공부는 커녕 쓰러져 자기에 바쁠 것이고, 주말에는 가끔 술에 떡이 되어서 머리도 감지 않은 채 잠도 들 것이다. 14일 간의 격리 생활 간 얻었던 결실과 교훈을 무색하게 만들 것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오늘이 모여서 내일의 내가 되는 것도 사실이고, 한 번 해봤으면 두 번은 못할 것도 없기에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14일간 외출하지 못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정답은 없다. 그냥 그 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것과 필요했던 것을 할 수 있었을 뿐. 한 번은 괜찮은 경험이다. 하지만 두 번 하라고 하면 자신은 없는 그런 격리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