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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봇 Jul 03. 2020

10. 취미가 술인데요?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10. 취미가 술인데요?


 "제 취미는 술이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마 대부분은 '술 잘 마셔요?' 라고 되묻기 마련일 것이다. 좀 더 명확하게 '술 만드는거에요.'라고 이야기해도 '엥? 소맥이요?' 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고.


 그만큼 술이 취미라고 하는 것은 좀 특이하게 들릴 것임을 알기에, 그리고 회사에서 '주량이 얼마에요?'라고 반드시 돌아올 질문들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취미로 술을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나는 술을 좋아한다. 퇴근하고 시원하게 마시는 캔 맥주도, 그리고 오피스텔 1층에 있는 와인셀러에서 파는 2만원 대의 괜찮은 와인도. 해외로 여행을 갈 때에는 항상 면세점에서 와인을 하나 사가서 여행 첫날 밤 친구들과 마시곤 했다. 작년에는 팀장님이 위스키를 좋아하셔서 해외를 다녀오는 팀원들에게 위스키를 사비로 부탁하시기도 하셨고, 그 위스키는 결국 우리 팀의 회식에서 맛보게 되었다. 얼음 잔에 희석해서 온더락잔으로 만들어주신 것을 먹었을 땐, 갑작스럽게 위스키에 푹 빠지기도 했었다. 한 때 바를 가면은 칵테일 대신 '위스키' 온더락을 하나 주문해 마셨고, 친구들은 이게 뭐가 맛있냐고 너무 쓰다고 그랬지만 생각보다 향긋한 그 풍미에 꽤 오래 빠져 있기도 했었다.


"칵테일은 뭐 마실까?"


 그랬던 나이기에 일찌감치 칵테일도 많은 시도를 해보았었다. 가장 대중적인 준벅, 스크류드라이버, 미도리사워 같은 칵테일을 넘어 보통은 잘 시키지 않을 B-52 라던가, 싱가폴 슬링이라던가, 다이키리 등을 시켜서 맛보기도 했다. 당연하게 자주 찾는 칵테일 메뉴도 생기기 마련이었으나, 새로운 바를 가게 되면은 찾는 것은 달랐다.




"여기 시그니쳐는 어떤거에요?"


 칵테일 바를 새롭게 방문하면 언제나 물어보는 것은 시그니쳐 칵테일의 유무였다. 보통의 칵테일 바는 대중적인 레시피를 사용하는 곳이 많으나 그 이외로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칵테일 바마다의 시그니쳐 메뉴가 있다. 설령 메뉴판에 없어도 물어보면 대답이 나오기 일쑤였고, 그것을 즐기기 시작했었다.


 이런 경험을 몇 번씩 접했던 동기들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술에 대해 꽤 아는 애처럼 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내가 먹었던 칵테일도 무슨 술이 베이스인지 뭐가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했고, 단순히 취향에 맞거나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맛봤을 뿐 그게 어디 원산지의 뭘 원료로 한 술인지에 대해서는 쥐뿔도 몰랐다.


 와인을 추천해달라는 친구들에게 추천을 해주면 성공도는 꽤 높았다. 사실 레드와인 하면은 대부분은 '까베르네 소비뇽'은 들어봤다고 하여 그것을 주문하려 하지만 실제 먹었을 때 나는 굉장히 드라이해서 떫다고 느꼈었고, 이후부터는 그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와인을 주문하곤 했었다. 그렇게 해서 알아낸 멜롯(Merlot)이나 쉬라즈(Shiraz), 끼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쪽으로 추천했을 때 사실 여성분들에게는 언제나 호평을 받곤 했었다. 그 이외의 품종은 나도 모른다. 그냥 여기까지가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아는 체'였을 뿐.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마시는 술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알고 싶어졌다. 솔직히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따라서 어떤 술에 관한 콘텐츠를 접한 것이 한 20%, 밤에는 음악을 자주 틀어놓는 내가 어떤 뮤직채널의 라운지 바에서 나올 법한 재즈 음악들을 접했던 것이 20%, 집을 꾸미는 데 홈바가 있으면 어떨까 싶었던 마음이 60%정도였다.


"나 술 만드는 것 좀 배우려고."

"뭐? 막걸리 빚게?"


 아주 말도 안되어 보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대화였다. 그 당시 원데이 클래스에는 수제맥주 만들기도 있었기에 술을 만드는 것 하면은 칵테일이 아닌 다른 게 나올 수도 있었지만, 왜 막걸리가 먼저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날 점심을 그 친구와 곰탕에 막걸리를 먹었으니, 그 연상작용으로 나왔다고 이해하도록 했다.


"아니, 조주기능사 따려고."

"그게 뭔데?"

"칵테일 만드는거."


 조주기능사라는 단어(주조기능사라고 발음하다가 교정한지는 심지어 얼마 되지도 않았다. 참고로 주조기능사는 금속 만드는 시험이란다.)가 익숙하지 않은지라 대부분은 모르고, '칵테일 만드는 거'라고 하면 그제서야 다들 알아듣곤 했다. 솔직히 이 시험을 따야지만 바텐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진짜 바텐더를 하고 싶으면 바에서 말단부터 시작해서 차차 쌓아가는 게 더 맞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직장인이고 내가 바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걸로라도 간접체험을 하기로 했다. 명분이 있으니 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으니까.


"아! 야 근데, 너랑 잘 어울린다."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친구들 덕에 5월 중순즈음 선포했던 내 대략적인 계획은 '하반기의 이룩할 목표'로 자리매김했고 6월 말에는 서점을 가 술에 관련된 책을 사기도 할만큼 꽤나 본격적인 플랜으로 자라 있었다.


"너 조주기능사 준비한다며."

"응, 하반기에 시작하려고!"

"야 나도 관심있었는데 같이하자."


 그러던 도중, 우연찮게 동기한테서 같이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 친구도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잊고 지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3년차 나와 같은 직장과의 권태기를 겪고있는 그 친구 또한 오랜만에 그 단어를 들었고, 너무 해보고 싶어졌기에 내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혼자 하는 것보단 둘이 낫고, 술도 소분해서 나눌 수 있으니 당연히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참가 제의, 승낙했다.


"그러자!"

 
 비슷하게 동기들과 점심식사 자리에서 자기계발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이 시험을 떠벌렸고, 비슷한 방식으로 재밌어 보인다고 합류한 친구가 둘 늘어 4명이서 7월부터 하반기 시험을 준비하는 파티가 생겼다. 분명 혼자였으면 제대로 시도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함께 할 사람이 생기니 시작부터 남다르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한다는 것은 옛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뜻대로 되는 일은 없었다. 대학교 학과를 선택할 때에도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그랬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어떤 일이든 열정도 가지고 큰 효율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나,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레퍼런스 삼고 또한 주변에서 들으면서 여기까지 참고 잘 지내왔던 것 같다.


 근데 이제 안정적인 환경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거나 혹은 숨긴 채 지내기에는 너무 가련한 느낌도 들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찾아보려 했고,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때에는 소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은 그 소재 또한 내가 마주하고 겪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저는 술이 취미에요.'


 라고 아직은 당차게 이야기는 못한다. 그런 것 치고는 지식도 없고 마시는 것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까. 아마 하반기 진짜 이런걸 거쳐가면서 저 마음 속으로만 외치는 '작은따옴표'는 남들에게 내뱉을 수 있는 '큰따옴표'가 되어갈 수 있겠지.


 브런치 매거진으로도 정말 내가 술을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한다면 올려볼 생각이다. 내가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채널이 있음에 또 한 번 의욕을 느끼며, 칵테일과 관련된 책을 오늘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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