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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봇 Aug 09. 2020

13. 제가 후배는 처음이라, 나는 좋은 선배였나요?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13. 제가 후배는 처음이라, 나는 좋은 선배였나요?




 작년 4월, 생각지도 못하게 입사한 지 1년만에 후배를 받게 되었다. 분명 내가 속한 팀에 내가 신입으로 전입되었을 때에 신입이 이 팀에 배속되는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던 선배들의 말과는 정말 모순되었다. 나도 이례적이었는데, 연달아서는 더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입사한 지 1년만에 후배를 받는다는 사실에 반은 설렜고 반은 걱정이 되었다. 현재 내 일도 100%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판국에 누가 누굴 가르치나 하는 걱정 반과 직급차이와 연배 차이도 있는 선배들 사이에서 또래 하나 없던 내게 또래가 생긴다는 그 설렘 그리고 나를 믿고 바라봐주는 사람이 생긴다는 설렘이 공존했다.


 회사에서 1년 간 사람들과 지내다보면 그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된다. 동시에 다양한 선배들의 '닮고싶은 점과 닮고싶지 않은 점'도 머릿 속에는 각인이 될 시기이다. 그렇기에 마찬가지로 후배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나는 이런 선배가 되어야지'하는 청사진은 그럴싸하게 그려놓고 있었다.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먼저 들어가볼게요."


 업무를 마치고 퇴근시간이 되면 제법 칼같이 퇴근했던 나는 언제나 주변 분들이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웃으면서 인사하고 가곤 했었다. 그리고 앞자리에 앉아 있던 후배가 노트북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나는 후배에게 이야기했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먼저 들어가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요."


 후배와는 집을 가는 지하철의 방향이 같고, 집은 조금 멀어 기껏해야 네 정거장 정도만 같이 간다. 보통은 그럴 경우 같이 가면서 이런저런 나누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나는 그냥 인사를 하고 혼자 집에 가는 그런 선배였다.


"어, 안녕하세요. 여기서 뵙네요?"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선배를 만나는 날이면 내가 웃으면서 했던 인사였다.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고 에어팟을 정리하고 조금은 가까이 붙는다. 그리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나는 출근길과 퇴근길에 선배를 만나는 것이 조금은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데에 방해받지 않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이 시기에 내가 이어폰을 빼고 그 선배와 대화를 이어가야한다 생각하면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사회생활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후배가 들어오면은 후배는 좀 더 편하게 해줘야지라는 생각으로 나는 퇴근 시간이 겹치더라도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빨리 가거나, 화장실을 들렀다 가겠다는 이야기로 '먼저 가요' 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내 딴엔 배려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조금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나, 내가 너무 벽을 두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을까?'

'동기들하고 이야기할 때, 다른 동기들의 선배들은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하면서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런거 없이 칼같이 헤어져서 서운하진 않았을까?'


 10개월 정도 같이 일하고 지금은 내가 다른 팀으로 옮겨 간 지금, 그리고 이제 회사생활한 지는 3년차가 되어 익숙해진 지금 궁금해졌다.


'나는 과연 너에게 좋은 선배였을까?' 




 지금 팀에 배치가 되고나서 어언 반년이 지났다. 공교롭게도 배치가 된 직후부터 코로나가 터졌고 아주 지극히 당연한 회식금지와 연이은 재택근무로 우리 팀은 환영식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회식생활 없는 반년이 흘러갈 즈음, 이것이 너무나도 당연하여 나는 회사 술자리 없이 퇴근하는 일상이 많았고 그 흔한 선배들과의 술자리 번개 또한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다음 날 뭔가 유독 힘들어보이는 선배들을 보면은 번개가 가끔 있기는 했었고, 나는 거기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이로서 제안해주지 않으신 데에 대한 섭섭함을 은연 중에 조금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섭섭함도잠시, 내게 술을 제안해야 하는 선배는 참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PT가 있어서 조금 일찍 들어가볼게요!"

"오늘도 고생하였어요. 먼저 들어가볼게요!"

"약속이 있어서 얼른 가봐야겠어요. 내일 뵐게요!"


 PT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6시가 넘어서 내 할일이 마무리되면 잘 퇴근을 했던 나, 그리고 약속도 많은 20대의 한창을 불태우는 청춘의 아이콘처럼 보이는 내게 '오늘 술 마실래요?' 라고 이야기를 쉽게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웹드라마, 상사세끼 시즌2, 선배들의 살갑고 캐쥬얼한 말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집에 가는 신입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면 남들과 선을 긋고 내가 그렇기에 남들도 그럴 것이다라는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물론 정답은 없고, 사람은 너무나도 달라서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피로해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이벤트가 없으면은 저 사람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건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제가 후배는 처음이라..."


 3년차인 내가 보는 2년차의 후배를 처음으로 맞이하는 나는 많이 서툴렀다. 지금이라면 낮이나 점심시간에 따로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도 더 해보고 좀 더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선에서 좀 더 잘해줄 수 있었을텐데. 팀을 옮긴 지금은 그 친구와 같은 팀이 될 확률은 너무나도 적어서 이제서야 실천을 하기에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에 올 내 후배에게 그 시도를 해볼 수 밖에. 그래도 아직까지 궁금한 그 것을 꼭 그 나의 첫 후배에게 물어보고 싶다.


"제가 후배는 처음이라 너무 제 위주였던 것 같아서요. 나는 좋은 선배였어요?"


 그 어떤 대답이 돌아오더라도 아주 겸허히 그리고 또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웹드라마 상사세끼 시즌2, 상사의 마음이 이해가 될 때 자신도 꼰대가 되어간다.]
[웹드라마 상사세끼 시즌2, 상사의 마음이 이해가 될 때 자신도 꼰대가 되어간다.]


 나도 이제 후배를 받을 시기가 점점 다가올 것이고, 위보다는 아래를 맞이하는 횟수가 더 많아질 것이다. 나를 대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거나, 요즘 20대에 대해서 내게 묻는 차장님, 과장님들에게 올해들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거였다.


"저도 똑같아요. 이제 회사에서 같은 걸 보면 차장님, 과장님들하고 똑같이 생각한다니까요? 이제 저도 말랑말랑한 머리가 아니에요, 하하!"


 웃으면서 나도 그들과 동화되어가고 회사원이 되어감을 표출했다. 모두들 웃으면서 반응해주고 나도 그 때 즈음부터 그렇게 되기 시작했다고 '내가 니 미래야' 라고 웃으면서 대활 나누는 팀원들의 모습이 이제는 편안하다.


 회사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회사원 그 자체가 되어가며, 상사의 마음을 이해가 아닌 상사가 되어 갈 때, 나도 어쩔 수 없는 남들이 이야기하는 '꼰대'가 되어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기서 단 한가지만 더 기억하려고 한다.


'나는 좋은 선배이고 싶으니, 노력하겠다고.'


 다음주에는 내 첫 후배에게 연락해서 맛있는 저녁을 대접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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