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plomnebenfach
작년에 쓴 글 '강렬했던 올해의 여름'의 마지막에 나는 다음 학기에도 계속해서 분수 작업을 할 것 같다라고 썼는데 정말 내내 분수를 그렸다. 깊게 남은 잔상을 소진이라도 하려는 듯 그리고 또 그렸다.
거침없이 솟아나던 분수의 물줄기는 써머타임이 끝나고 일제히 꺼졌다.
강렬한 햇빛 아래 거리를 오가던 수많은 사람들과 시원하게 물방울을 튀기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물줄기는 사라지고, 쌀쌀하고 이따금씩 부슬비가 내리는 황량한 가을을 지나 어두컴컴한 겨울이 왔다. 겨울에도 나는 계속 분수를 그렸다.
무작정 그리고 싶어 그렸던, 아니 그려야 했던 강렬한 열망의 여름이 지나고 형상에 대한 고민과 생각들을 정리한 2023년 겨울이었다. 마치 분수처럼 계절과 함께 발산과 소강으로 자연히 흘러간 2023년이었다.
작업노트 :
분수는 끊임없이 물줄기를 쏟아낸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쉴 새 없이 뻗어 오르는 물줄기는, 단단한 지지대와 함께 한 이미지를 이루며 그 안에서 고정된 형상과 유동하는 형상이 교차한다. 이 물줄기가 닿는 최고점은 분수의 형태가 가장 커지고 힘이 집중되는 순간의 가장 웅장한 형상이다.
분수의 물줄기가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그 지점을 기록해 완전한 조각으로 한 화면 안에 새겨 넣는다. 에너지가 극대화되어 존재감이 강렬해진 그 순간의 형상이 유동하는 대상이 한순간 완전한 형태로 실재하게 되는 것처럼.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형상을 영원으로 붙잡아 그림을 그린다.
Diplomnebenfach
2023년 12월, 분수 작업으로 Diplomnebenfach 시험을 봤다.
직역하면 부전공 시험이지만, 사실상 Diplom 전에 의례적으로 진행되는 전시와 프레젠테이션의 과정이다.
중간에 몸도 아프고 그림도 잘 안 나와서 스트레스가 정말 많았다. 다음 학기로 미룰까 계속 고민했었는데 결국 계획대로 마쳤고, 미루지 않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2023년 겨울은 차가운 아틀리에, 차가운 분수, 고통스러운 장 뒤틀림으로 기억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최선을 다했고, 전시도 만족스러웠어서 오히려 더 행복한 마음으로 남아 있다.
시험을 보고 작업을 정리해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그래도 1년은 넘기지 말아야지 하며 일 끝나고 마음을 내서 정리하는 글이다.
나는 내년 여름에도 분수를 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