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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Jul 26. 2020

어쩌다 브런치 작가

알다가도 모를 삶

지난 6월 나는 어쩌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나는 92년생, 29살 독일에서 미대를 다니고 있는 늦깎이 대학생이다. 올해 2월 방학에 잠깐 한국에 왔는데 예정대로라면 4월에 다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 문제로 본의 아니게 한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고 내가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불안하기도 멍하기도 했다. 삶은 나의 의지와 의도처럼 흐르지 않는다. 꿋꿋이 나의 길을 걷더라도 가끔씩은 거대한 파도가 나를 덮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저앉거나 엉엉 울어버리곤 했는데, 이제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유연해진 건지 울어봤자 힘든 건 내 마음뿐인 걸 알아서 그런지 어느 정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시금 마음을 붙잡고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해, 엄마와 나는 1인 출판사를 냈다. 엄마가 글을 쓰는 작가라 그동안 작업해둔 원고들이 꽤 되어 쌓여 있었고, 나도 그림을 그리니 함께 합심해서 느리지만 꾸준히 우리만의 템포로 책을 만들자는 취지로 1인 출판사를 만들었다. 이름하야 도서출판 '이야기 바다'. 지난 겨울 나는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엄마의 동시 원고에 그림을 그리고 편집하여 올해 2월 첫 책, 동시집 [볼 시린 무]를 냈다. 그 다음 책 일정은 기약 미정이었다. 아무래도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도 하고 책을 작업한다는 건 힘든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 오래 있게 되었으니 집중해서 책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2년 전 그림 만들어두었던 것을 두 달 동안 재작업을 했다. 텀블벅이라는 펀딩 웹사이트에 올려놓고 작업을 병행했는데 덜컥 펀딩이 성사되어 마감기한이 생겼다. 편집과 인디자인을 독학해서 한 거라 모르는 부분은 계속해서 찾아가며 시간이 더 걸려 하루의 작업량이 꽤나 고강도였다.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10시간 넘게 작업했던 것 같다. 작업 외에도 해야 할 게 많았다. 첫 책은 독일에 있을 때 (물론 정말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긴 했지만) 작업을 끝내 파일을 넘긴 거라 몰랐는데 인쇄소마다 가격이 다 달라 돌아다니면서 견적을 내고 비교하는 일, 종이를 고르는 일, 샘플본을 뽑고 다시 재수정하고 인쇄 감리하는 일까지 할 일이 참 많았다. 그렇게 생각보다 빨리 연이어서 지난 5월 그림책, [아무도 몰랐던 해님 달님 이야기]가 나왔다. 한 두 달 정말 집중해서 작업한 탓에 출판 이후 번아웃처럼 다른 형태의 멍한 시간이 또 찾아왔다. 한 일주일 멍하니 보내다 약 2년 전부터 내가 쓰고 싶었던 글들이 생각났다. 몸과 마음의 관한 관찰기록인데 삶이 일정한 패턴 속에 놓여있지 않아 꾸준히 쓰기 어려웠다. 규칙적으로 살다가도 개인 그림 작업을 하다 보면 삶의 형태가 툭툭 끊기곤 했다. 긴장과 이완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나의 삶은 폭풍과 잔해였다. 큰 그림을 그릴 때면 오래도록 그리는 게 아니라 7시간이든 10시간이든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상관없이 이틀에서 삼일 내에 끝내야 한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림 안에서 흐름이 깨지거나 끊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그리고 나서 작업이 끝나면 힘이 탁 풀리곤 한다. 그 나머지 잔해 같은 시간은 작은 그림과 스케치로 메꾼다. 늘 이런 삶의 연속이었다. 그 안에서 기록을 하려 노력은 했지만 하루하루가 엮이지 않은 그저 편린 같은 조각이었다. 

 

 나는 예전의 써놓은 기록을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에 종종 글을 쓰긴 했지만 그건 나만의 기록이었고, 소통을 하고 싶었다. 브런치에 대해 얼핏 들어만 봤지 잘은 몰랐던 터라 일단 가입부터 했다. 여기서 글을 쓰려면 심사과정을 거쳐야 했다. 한글파일을 뒤적여 예전에 썼던 글 중 하나를 붙여 넣었다. 며칠 뒤 불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제야 부랴부랴 인터넷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검색해보았다. 신청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여러 번 떨어지고 다시 재도전을 했다. 나는 글을 딱 하나 제출했었는데 알고 보니 세 개까지 낼 수 있었다. 아, 내가 너무 아무 생각이 없었구나 싶었다. 내가 제출한 글은 단순히 나의 이야기, 기록에 불과했다. 작가 신청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나 여기서 글 쓰고 싶어 얼른 뽑아줘 하며 강요했던 셈이다. 브런치 작가 신청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시키고 이 플랫폼에서 앞으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 갈 것인지 설득의 과정이었다. 내가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목차로 잘 정리하고 그에 대한 글 두 개를 더 써서 세 개 꽉 채워 다시 신청을 했다. 며칠 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축하의 메일이 왔다. 합격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고 난 후라 그런지 새삼 기뻤다. 예전에 썼던 글들, 그리고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써내려 갈 생각에 설레인다. 실은 최근에 브런치에서 글을 꾸준히 기록하다가 내가 생각했던 흐름과 반해서 다 발행 취소를 했다. 피상적인 단순한 하루의 기록들 같아서. 


 앞으로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도록 주어진 자리가 생겨서 기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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