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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Mar 12. 2021

바래지 않는 나날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순간



창가 옆 꽂아둔 튤립 @shinibu_



 

 2021년 2월 15일, 인스타그램에 일러스트 그림 계정을 만들었다. 

나는 100일 동안 하루에 하나씩 그림을 그리고 업로드를 하기로 했다.

보통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자기 전 일기 형식으로 그 날의 느낌과 본 풍경을 그린다. 하지만 때때로 아무 생각 없고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미적지근한 나날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오늘 하루는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고 고민하다 핸드폰 속 앨범을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즐겨찾기 하트를 눌렀던 사진들을 다시금 보곤 했다. 그 날들을 다시금 마음에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 그 날의 날씨, 느꼈던 감정, 사랑했던 순간이 뒤섞여 그리는 동안 행복해했다. 뒤돌아보니 인생에 있어 거대한 성취나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내 안에 쥐었을 때의 기쁨보다 과정의 나날, 순간 순간에서 오는 작은 평화와 같은 시간이 나를 살게끔 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다보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나이대에 걸맞은 삶의 모습을 기대하고 (혹은 기대 되어지고) 퀘스트를 깨나가듯이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삶을 살게 되기 쉽다. 그렇게 우리가 가진 결과로 행복은 갈린다. 나 또한 오랜 시간 그 굴레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최근까지 나의 삶도 '이것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의 일련이었다. 대학교에 합격하면, 알바를 그만두면, 조금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등등. 목표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나를 채찍질했고 왜 이것밖에 못하나며 자책하고 속상해했다. 하지만 설령 그토록 원하던 일이 이루어졌어도 기쁨의 순간은 금세 녹이 슬었고 나는 또 다른, 반짝이는 것을 찾아 쫒았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허한 마음을 껴안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깨달았다. 나는 단 하루도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평생을 조금만 더 달리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조바심을 내며, 나는 그렇게 행복을 늘 미래에 두고 끝없이 미뤄왔다.


 나는 하루하루 현재에 머무르기로 했다. 예전에는 산책을 하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해야 할 것들을 세고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느끼는 바람과 햇빛, 공기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찬찬히 걷는다. 그렇게 그동안 놓쳤던 내 삶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순간을 그릴 때 나는 더 행복해졌다.


 이렇게, 좋아했던 나날들을 곱씹으며 매일매일 한 장씩 그린 그림에 글을 쓰고 한 권의 책으로 엮으면 어떨까, 나는 생각했다. 그런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책에는 행복의 에너지가 가득가득하지 않을까?

사랑했던 날로 채운 기록은 그래도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았음을. 또한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도 기쁨으로 전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기로 했다.   


사랑했던 순간들과 앞으로 사랑할 시간들을 위하여.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런 반짝이는 순간은 영원히 바래지 않는 듯하다.




2021년 3월 12일 , 봄을 맞이하며.

바래지 않는 나날들







저의 '일러스트 계정'은 여기 https://www.instagram.com/shinibu_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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