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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신 Aug 02. 2021

충동의 마음


 생각해보니 이십 대 초중반에는 충동의 마음이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이번해 봄과 여름 사이에 긴 머리칼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성격상 긴 머리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바닥에 빠진 머리카락들 정리에 갑자기 진절머리가 났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미용가위를 가져와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혼자 머리를 자른다. 독일 미용실에서 자르는 것과 내가 자르는 게 결과가 별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금 이상하게 잘랐다 하더라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긴 머리였다. 훅훅 자르는데도 시간이 꽤나 많이 걸렸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나는 오랜만의 충동에 지난 나날들이 생각났다. 이십 대 초중반에는 머리를 빨리 계속 계속 바꾸고 싶었고, 또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바꾸었다. 긴 머리, 파마머리, 단발머리, 짧은 숏컷, 빨간색 염색, 와인색 염색, 주황색 염색 등등. 


 나는 왜 그렇게 바꾸려고 했을까.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욕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헤어 스타일로 기존 이미지로부터 변화를 주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상황이나 마음이 지지부진할 때 새로운 머리와 함께 변화가 찾아올 거라는 약간의 미신 같은 믿음으로 혹은 다시 이제 새로운 시작의 다짐으로 머리를 바꿨었다. 내내 동동거리는 조급한 마음으로 살았으니 머리도 내내 바뀌었다.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니 얕궃은 머리만 내내 바뀌었다. 그때는 왜 그것을 몰랐을까. 나를 놓지 않으려고 그깟 머리를 바꾸면서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다시금 걸었었던 게 안쓰럽기도 하다.

 

 어느덧 웬 만치 머리카락이 잘렸다. 바닥에는 까만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여있다. 

머리를 자르는 내내 나를 오래 지배했던 지난날의 충동의 마음이 스쳤고 수북이 쌓인 머리칼을 보니 그동안 거슬렸던 잉여의 단면이 잘려나간 듯하다. 가벼워진 머리로 거울을 다시 한번 본다. 보여지는 형상을 오래오래 가만히 들여다보면 깊고 깊은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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