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그리워 할 수 있도록

조규찬 - '그리움'

by 어진

photo by 어진.


일상이 평범해져서 그날이 그날인 것만 같은 그런 날에는 그리움마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그리워해야 할 대상이 잘 생각나지 않기 때문일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그리워하게 될 그런 순간이 오게 될 줄은 아마 꿈에도 몰랐겠지.


너무도 애절했던 순간이 있었다.연인은 아니었어도 누군가를 향해 흘러가는 마음이라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서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결국은 누군가의 실수로 혹은 오해로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받아서 더 이상 상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그런 때, 단절의 아픔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려야만 했던 무기력한 날들에 이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괴로운 내 심정을 달래야만 했다.


“그대는 나에게 살아감의 기쁨을 알게 해줬지만,

이젠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이 절망을 남겨뒀지”


좋은 사람과 보낸 그 시간들은 내게 스스로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해주었다. 그와 함께 걷고, 커피를 마시고 웃으면서 나눴던 대화의 주제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아도 서로에게 진실되이 자신의 생각을, 감정을 전했다고 지금도 확신할 수 있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생겼는지 알 수 없으나 조금씩 말이 없어지고 상대를 향한 태도에서 온기가 사라질 즈음 어렴풋이 관계의 종말을 예감할 수 있었고 늘 그렇듯 그런 느낌은 머지않아 곧 현실이 되곤 했다.


“이미 멀어진 그대에게 난 그저 낯선 사람일 뿐,

아름다울수록 더 쓰라린 우리의 기억”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면서 상처를 아물도록 두지 않았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나에게 왜 그토록 잔인하게 굴었는지, 꼭 그래야만 했는지 계속 곱씹었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 나는 왜 그로 인해 이렇게까지 아파해야 하는 거지. 차라리 그를 몰랐던 예전으로, 만나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모두 내 곁을 떠난다. 그리고 나는 이제 후로 더 이상 누구에게도 내 맘을 온전히 내어줄 수 없을 테다.


“아무리 잊으려고 해봐도 더 깊어지는 그리움”


역설적이게도 그를 잊지 않기 위해 노래를 들었다.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지 않기에 계속해서 노래를 들었고 그럴수록 내 안에 그를 향한 그리움이 더 커져만 갔다. 웃음, 표정, 느릿한 말투와 걸음걸이까지 세상 어느 누구에게서도 대신할 수 없는 독특한 그만의 무언가가 떠오를 때마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를 더 이상 알 수 없고 잘 살고 있는지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앞으로는 결코 만나지 못할 그 상황을 아쉬워하는 수 외에 별 도리가 없다.


“You were my everything, 날이 갈수록 난 야위어 가.

그대를 보고 싶은데 너무..”


그저 좋아하던 가수의 노래로 들었을 때는 와닿지 않던 부분인데, 이 노래가 나의 이야기가 되었을 때 내 심장을 찌르던 한 단어는 ‘were’라는 과거형 동사였다. 그 사람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어느 한 시점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딘가에 실존할 테지만 실존하지 않는 존재,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그.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거라고 위로했지만,

어느 새 눈물 속엔 그대”


조규찬의 ‘그리움’은 두가지 버전이 있다. 1999년도5집에 수록된 더 애절한 ‘그리움’과2002년도 Best음반에 수록된 조금은 차분해진 ‘그리움’. 감정이 한창 끓어오를 땐02년도 버전이 마치 변절자라도 된 것처럼 듣고 싶지 않았는데, 시간이 훌쩍 지난 요즘은02년도 버전이 내게 조금 더 와 닿는다. 그를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로 인해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은 요즘, 일상이 평범해져서 마음이 무뎌지는 순간에 떠나버린 그를 향한 그리움을 그리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리움’은 여전히 내게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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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