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 일상에 관하여.
진심이 짙게 담긴 농담으로 종종 ‘나는 조선시대에 양반 가문에서 한량으로 태어났어야 되는데..’ 라며 아쉬움을 내뱉곤 했다. 조선시대의 한량이 어떻게 살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상상하기로 날마다 꽃놀이, 물놀이와 시, 음악, 풍류를 즐기며 그날의 감정과 본능에 충실하게 살지 않았을까. 시간도 물질도 인간관계도 모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기에 부담감이나 갈등 따위의 고통은 깃털처럼 가볍고 하루가 늘 새롭게 기대되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그런 한량.
어느 순간부터 삶의 가장 중요한 영역을 생존을 위한 돈벌이에 내어주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돈을 엄청 잘 벌기라도 하면 억울하지나 않겠는데.. 일은 일대로, 고민은 고민대로, 부담과 책임은 또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니 과연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다른 사람들도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항상 의문은 끊이지가 않는다. 반복적이고 무료한 일상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즐거움 – 혹은 살아야 하는 이유- 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보지만 대부분은 아주 특별할 것도 없는 뻔한 일들이다. 그렇다고 흘러가는 생을 멈출 수도 없기에 과연 이 루틴은 언제 끝이 날까, 과연 내 삶의 마지막은 어떻게 마무리가 지어질까? 때로 그 끝이 궁금하기도 하다.
회사원 신분을 졸업하고 내 삶의 구조를 스스로 세우기로 다짐한 이후로 하루의 어느 부분은 꼭 좋은 이들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주고받는 어떤 기운, 영향력이 일정 부분 채워지지 않으면 내 내면이 메말라가는 기분이 들기에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즐거움의 한 요소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중요한 의식 같은 행위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은 편안해서 좋고, 새롭게 만나 이제 막 알아가는 단계의 사람들은 신선하고 설레는 느낌이 좋다. 함께 일을 해도 좋고,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의 취향을 나누는 자리도 좋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목소리를 전하며 대화하는 그 만남들이 이전에는 일종의 취미였었는데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 누군가를 만날 에너지 자체가 고갈이 되어보니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만나고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그 행위 자체가 소중한 선물처럼 생각되었다.
바깥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와 혜원이의 얼굴을 다시 볼 때 설명할 수 없는 평안함과 안도의 감사가 나온다. ‘잘 다녀왔어요?’ ‘오늘 잘 지냈어?’ 한 마디에 하루의 무게가 고스란히 녹아내린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거실에서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며 함께 야식을 먹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TV는 그대로 켜진 채로 각자 서로의 핸드폰을 보는, 같은 공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 자체로 온전한 평화로움을 느낀다. 졸린 사람은 먼저 잠자리에 들고,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나는 가장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 기절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9월 24일까지 총 15,100번의 하루를 살았다. 성경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몇 번째 날’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15,100번째 날을 맞이한 것이다. 이 숫자가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참 많이도 살았구나 싶다가도 아무 의미 없지만 그래도 2만 번은 넘겨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야 우리 혜원이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테니 사는 게 고행이어도 그때까지는 꾸준히 내 몫의 삶을 살아 내야겠다고 다짐한다.
photo by 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