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너와 나.
수능을 치르고서 홀가분하기도 하고 약간은 설레기도 한 날들이 하루하루 이어졌다. 거짓말처럼 수능을 마친 다음날부터 학교에서는 정규수업도, 야간 자율학습도 사라지고,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12시 조금 넘으면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던 우리들은 어느 친구의 제안으로 한창 일손이 필요했던 달력공장에서 다이어리와 회사 브로셔 등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3-4시간 정도 했고, 그 후에는 당구장으로 피시방으로 몰려다니며 마치 세상이 우리 것인 양 두려움도 걱정도 없는 호시절을 보냈다.
그해 연말의 마지막 토요일 저녁, 교회에서는 고등부를 마무리하고 청년부로 올라가는 진급식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보다 고작 서너 살 정도 많은 형, 누나였음에도 당시에는 하늘 같은 선배들 앞에서 바짝 긴장을 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선배들은 귀엽다는 듯 우리를 향해 더 환히 웃어주었다. 청년들과 예비 청년들이 처음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새내기 모두 한 사람씩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저쪽 끝에 못 보던 얼굴이 있다. 교회를 오래 다녔었기에 내가 모르는 동기들이 없어서 청년부 선배들 중 한 명이 함께 나온 건가? 생각했지만 새 친구가 자기소개를 할 때 가만히 들어보니 대전에서 서울로 갓 취업이 되어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마침 집도 가까워서 회사 언니의 권유로 교회에 처음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동기 여자 친구들은 워낙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면서 투닥투닥 많이 다투었기에 딱히 여자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새로 온 친구는 어딘지 모르게 좀 더 성숙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제 막 수능을 마친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기업으로의 취업이며, 대전에서 서울로 혼자 자취를 하기 위해 올라온 여러 요소들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화장이 다른 동기 여자 친구들에 비해 더 진했기에 또래의 이성에게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던 내게는 문화충격이 적지 않았다. (주관적으로) 예쁜 여성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며 수줍어하던 나로서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편하게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날 진급식을 마치고 몇몇 선배들과 새 친구와 함께 분식집으로 가서 떡볶이를 먹었지만 내내 어색하게 몇 마디 주고받았을 뿐, 당시 청년부 회장이었던 형이 내게 날이 춥고 어두우니 새로운 친구를 집으로 바래다주라고 했을 때 “내가 왜요?” 라며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는 분식집을 나와서 친누나와 함께 집으로 그냥 돌아왔다.
해가 바뀌고 날이 따뜻해질 무렵 대학교 신입생이 된 나는 으레 모든 1학년들이 그렇듯 학과 수업은 뒷전으로 미루고 날마다 교회의 선배들을 만나러 학교와 직장으로 놀러 가서 점심과 저녁을 얻어먹으며 스무 살의 봄날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온 새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서 직장인으로 본격적인 서울생활을 시작했고 교회에서도 남자 선배들과 친구들의 무한한 관심 속에 자신의 입지를 잘 다져가며 적응하고 있었다. 어떤 연이 있었던 걸까? 교회 동기에서 여자 사람 친구로, 그리고 그해 가을 서로의 연인이 되어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낸 세월이 이제 스무 해를 훌쩍 넘어가고 둘 사이에는 ‘제 나이에 맞는 건강함을 간직한’ 한 소녀가 있다. 대전이라는 도시는 고작 중3 때 엑스포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였었는데, 서로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던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과 함께 생의 형태를 완전히 새롭게 살아가는 그 자체가 경이롭기만 하다.
그 시절, 바래다주던 그녀의 집 앞 골목에는 노란색 할로겐 등이 빛나고 있었고, 그 불빛 아래에서 앳되고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와 나는 늘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그 순간들이 오랜 시간을 지나는 지금까지 우리 두 사람을 하나로 굳게 붙잡아주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린 날의 그 시절과 이제는 편안함으로 바뀌었을 예전의 설레던 감정들이 가끔씩 그리울 때도 있지만 지금의 순간들은 또 우리가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주리라고 믿는다.
ps : 어제 아내가 "오늘 우리 처음 사귄 날 아니야?"라고 했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을 했다. 그냥 "그렇네!"라도 덤덤히 대답했지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