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

간직해야할 것.

by 어진

지난 일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학교 동기였던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잘 지내냐? 요즘 바뻐? 우리 교회가 영상시스템 견적을 받았는데 한번 봐줘" 그리고서 타업체에게 받은 견적서 2장을 첨부로 보냈다. 눈으로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거 뭐야..?' '뭐라고 답변해야 하지?' '한바탕 욕을 해줄까?' '아니면 컨설팅 비용을 적어서 보내줄까?'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냥 조용히 '나오기'를 눌러 카톡 방을 나왔다.

그 친구와 대학 시절에는 제법 친하게 지냈었지만 졸업 후로 거의 보질 못하다가 지난 5년 전인 14년도, 군산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도 영상 공사를 한다며 같은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연락을 받고서 군산까지 내려가 온갖 설명과 장비를 다 보여주고는 결국 타업체가 공사를 진행했는데 그 후로 5년이 지나 같은 일로 다시 연락을 한 것이었다.


출근길에 운전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목사 일을 십수 년을 해도 이렇게 사람에 대한 이해가 떨어질까? 사람의 영혼은 중요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본인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걸까?' 상대를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하나의 대상화나 도구로 보는 시각에는 이제 몸서리를 칠 만큼 싫다고 느껴진다.


그리고서 며칠 뒤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동력은 지난 과거의 좋지 않았던 기억에 대한 반대급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인을 볼 때 - 함께 일하는 멤버나 거래처 직원, 고객에게도 - 사람을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일이 보통의 상식적인 행위임에도 그 시선을 지켜가는 일은 제법 많은 손실을 감내해야 하기에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일터는 노동력에 대한 대가로 비용을 지불하는 곳이어서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친구사이나 교회 공동체 등에서 그 조직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을 수단화시키려는 태도가 보이면 그 순간에 나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아마도 내가 2-30대에 몸담았던 곳에서 불합리하거나 불쾌한 느낌을 받았던 그 기억이 기저에 깔려있다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될 때 부유물처럼 올라오는 까닭이다.


희안하게도 과거의 좋았던 일들은 금새 사라지고, 나빴던 일들은 어느 한 켠에 박제되어 지워지지가 않는다. 핸드크림은 매일 발라도 몇 분 지나면 없어지지만 12살 때 참치통조림을 따다가 손바닥에 베인 상처는 30년동안 내 손에 남아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하루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일은 마치 지뢰밭을 지나는 일과 같아서 곳곳에 묻힌 지뢰를 밟지 않기 위해 아주 천천히 한발씩 내딛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에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리면서 또다시 천천히 걸을 뿐이다. 다만 비슷한 환경과 상황에서는 동일한 상처를 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어서 아팠던 기억들을 계속 떠올리며 그와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거나, 피하는 방식으로 나를 보호하려고 한다.






어제 조용히 대학동기의 SNS를 친구목록에서 삭제했다. 내가 기록하는 일상이나 가족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서 공감하고 댓글에서라도 '잘 지내?' 라는 관심 표현을 먼저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차라리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바에 더 좋은 사람들을 향한 기대와 설렘으로 내 감정의 방향을 선회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