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라는 허상
진심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와는 다르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한두 살 더 먹을수록 사람에게 진심이란 게 있는 건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마음이란 있겠지만 진짜 마음이란 없는 것 같다. 진짜 마음이 있기 위해서는 가짜 마음도 있을 텐데 가짜 마음이 처음부터 가짜가 아니라 진짜 마음이 변해서 가짜 마음이 되면 그 마음은 진짜일까 가짜일까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싫기 때문이다.
지난 봄, 소중히 여기던 친구 한 명을 잃어버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둘의 관계를 적당히 지탱해주던 추가 한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서 ‘이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맘을 가지기가 쉽지 않기에 아주 천천히, 조심히 관계를 세워가려 했고, 지난 1년 6개월 동안 함께 만나서 걷고, 대화를 나누는 모든 순간들이 즐거웠던 만큼 어떤 이유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단절된 이후로 한동안 ‘대체 내가 뭘 잘못했지? 왜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끊어내야만 하는 거지?’라는 자괴감 비슷한 물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프고 원망스럽던 시간들을 지나니 자연스레 그 사람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서, 함께 했던 그 순간들이 그리웠다. 한번 어긋난 관계를 예전과 똑같이 돌릴 수는 없더라도 그저 아주 얇은 실처럼 이어져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한번은 꼭 다시 만나는 편이 이후에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혹시나 그 사람도 나를 다시 보고 싶을 수 있으니, 내가 당신을 향해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 전해주고 와도 좋겠다 싶었다.
용기를 내어 간신히 찾아간 곳에서 아주 짧게 그 사람을 볼 수 있었지만 오히려 처음 만난 그때보다 훨씬 더 퇴보한 그 느낌만 받고 돌아왔다. ‘잘 지냈어요?’ 라는 간단한 안부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의 슬픈 눈과 어색한 웃음이 섞인 묘한 표정을 보며 나도 함께 슬퍼졌다.
밤에 다시 한번 문자를 보냈다.
“얼마 전 명함을 정리하다가 S씨 이름을 봤어요. 잘 지내는지 궁금했고 인사나 안부 정도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머뭇거려지더라구요. 놀랐다면 미안해요. 그렇게 단절되고 나서 처음엔 당황스럽고 솔직히 원망도 조금 했는데 이젠 정말 괜찮아졌어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괜한 노파심에 얘기하면 S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하나도 없으니 맘 편히 잘 지내요. 용기가 없어서 제대로 인사 못 했어도 잠시나마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조심히 들어가요.”
역시나 답장은 없었고, 이렇게 정말 이 관계는 끝이라고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은 진심이었는데 나를 향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둘 다 변해버릴 마음이었을까. 나를 향해, 타인을 향해 늘 정직하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까지 그럴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photo by 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