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임과 함께하는 여행 계획
이걸 진짜 다녀왔다.
엄청 즉흥적으로 계획된 여행이었다. 불과 여름방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여름방학을 시작하고 나서도 전혀 해외여행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친구와 6월 말쯤 카톡으로 대화를 하다가 정말 어쩌다가 이번 여름에 말레이시아의 페낭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딱히 여행지 선정에 이유도 없었다. 그저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영상 매체로 페낭을 접하게 된 기억이 있어서 후보지로 조사를 해보니 생각보다 괜찮아서 그렇게 정해졌다. 별로 복잡하지도 않았다. 일사천리로,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비행기 표를 예매하니 확실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항공권의 경우 왕복 40만 원 정도로 저렴하게 예매할 수 있었다. 애초에 말레이시아행이 그리 비싸지도 않았고, 적절히 미리 예매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값싸게 예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확실히 20살에 걸맞는 경험이다.
여행 기간은 길게 잡았다. 수요일 새벽 비행기로 출발, 그다음 주 금요일 새벽 비행기로 귀국. 페낭 섬만 확실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큼지막한 계획에 있어서는 거의 나는 친구의 의견에 따랐다.
우선 여행을 간다는 사실 자체로 충분히 신났고, 딱히 여행기간이며 장소까지 내가 반대 의견을 가질 요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더 빠르게 잡혀갔던 여행 계획이었다.
페낭의 별명은 미식의 도시였다. 이 부분이 여행지로 선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평소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였기 때문에 페낭에서 평소에 절제와 닭가슴살로 이루어진 나를 잠시 해방하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해외여행 계획을 내가 주도적으로 짜보는 것은 완전히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는 모두 부모님의 등 뒤에서 입국부터 체크인까지 모두 방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을 통해 모두 습득할 생각이었다. 다음부터는 확실히 나 혼자 갈 줄 알아야 하니까!
숙소는 총 2개를 예약하기로 했다. 4박, 4박 나눠서. 하나는 호텔이었고, 하나는 에어비앤비로 모두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랑 여행을 가면 거의 계획은 내 몫이 되는 것 같다. 페낭은 큰 섬이 아니기 때문에, 8박 정도면 거의 섬의 모든 곳을 다 돌아볼 수 있었다. 섬의 끝에서 끝까지 차로 1시간도 안 걸려서 갈 수 있으니.. 대충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예상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섬의 반정도는 산지이기 때문에 사실 둘러볼 수 있는 곳은 작은 페낭 섬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애초에 계획을 바쁘게 관광하며 둘러보는 것보다는 크게 구역을 나눠서 하루하루 여유롭게 둘러보는 느낌으로 짰다. 그리고 하루 정도는 갔다 온 곳 중 맘에 들었던 곳을 한 번 더 방문하고, 자유시간도 가질 계획이었다.
사실 페낭은 계획할 때부터 느꼈지만, 여행지로 완전히 특화된 곳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휴양, 관광, 자연.. 어느 것도 특색 있게 딱!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에 세 가지 모두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이건 여행 후에 느낀 점이고, 여행을 계획할 때는 페낭에 자리 잡고 있는 수많은 야시장과, 백종원 셰프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속 모습이 거의 여행의 모든 이유를 차지했다. 이번 여행의 큰 틀은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속에서 결정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렇다.
백종원셰프가 다녀온 모든 음식점을 다 다녀와볼 생각으로 모든 음식점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한 두 개 빼고 모든 음식점을 실제로 가봤다. 못 가본 한 두 개의 음식점도 사실 못 갔다기보다는 같은 음식을 파는 다른 음식점을 간 거라서 사실 큰 차이는 없다. 이 음식들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너무 풍부하기 때문에 에필로그에서는 말을 아껴야 한다.
페낭의 날씨는 우리나라의 여름과 흡사하다. 그래서 옷은 전부 나시와 반바지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평소 한국에서는 반팔티가 익숙했던 나라 나시티는 전부 구매해야 했다. 총 8개의 나시티를 구매했고, 상당히 좋은 선택이었다. 구매하며 더욱 운동에 열과 성을 가했다.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나시티를 입을 순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계획 수립을 위해 친구와 두 번 정도 만남을 가진 것까지 포함하면 여행을 준비하는 데 약 10만 원 정도 사용했다. 어디서 여행은 가기 전 설레는 순간부터 시작이라고 한 걸 봤다. 그 말에 적극 동의한다. 아니, 사실 여행 전후 그 영향을 미치는 모든 나날까지 다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이번 해외여행은 그렇게 시작 전부터 설레진 않았다. 내가 좀 어른이 됐다는 것인지, 순수함을 좀 잃어버린 탓인지. 엄마는 그게 내가 신경 쓸게 많고, 직접 책임져야 하는 해외여행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는데, 그런 건지. 그렇다고 기분이 안 좋았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누가 여행을 떠나는데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는가..
출국하기 전에는 본가에 들를 계획이었다. 원래는 친구랑 만나서 같이 인천공항으로 올라갈 계획이었지만, 친구의 일정으로 나 혼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뭐 그래도, 가족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환전은 따로 하지 않았다. 트레블 월렛이라는 앱을 친구를 통해 알게 됐고, 자동으로 앱 내에서 현지 화폐로 환전이 가능했기 때문에, 카드하나만 발급해서 현지 ATM기에서 현금을 출력할 계획이었다. 이후에 이게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꼬박 일주일을 넘게 다녀오는 장기간 여행이었기 때문에 주말 카페 알바도 대타를 구했다. 이후에 이것도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이렇게 보니 꽤나 여행에서 변수가 많이 생기기도 했다. 여행 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였기 때문에, 다시 한번 실감한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변수를 대비해 둘 필요는 있다. 동시에 예상치 못한 변수에 큰 무리 없이 잘 대처해 낸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덧붙인다.
원래는 배낭 하나에 모든 짐을 다 싸서 갈 예정이었다. 옷도 전부 부피가 작았고, 뭘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간단하게 하나 정도만 들고 갈 계획이었지만.. 부모님의 조언을 듣고 작은 캐리어하나를 더 챙겼다. 이것 또한 지금 보니 옳은 선택이었다. 아직 어린가 보다 나는.. 미숙하다. 이 정도로 여행을 준비해 나갔다.
그리고 새벽비행기였기 때문에 인천공항에서 밤을 새기로 했다. 마땅히 지하철 첫차를 타고 가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고, 그렇다고 주변에서 잠을 자기에는 불필요한 소비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본가에서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고, 캐리어를 싸들고 고속터미널로 가는 8시 반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 고속버스는 타기 전 신경이 쓰인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 지하철이나 일반버스처럼 도착시간이나 현 상황이 브리핑되지 않아서 생기는 불안감이 가장 큰 원인 같다.
애초에 밤에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은 설렘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해가 진 뒤, 밤에는 원래의 장소와 일상으로 복귀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의 그런 권태를 불러일으키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깨고, 어딘가로 ,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느낌이다. 평소와 다른 것에서 안정감이 없어지며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예상하고 계획된 일탈은 우리에게 기분 좋은 덜컹거림을 선물해 주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의 20살, 첫 번째 여행이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