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심심하고 동그란 여자

60번째 발행이 준 선물

by 뭉클



지붕이 있는 건물로 들어섰는데
우산을 쓰고 있을 필요는 없어


자기 이해와 자기 수용: 행복의 충격

1만 암페어짜리 저용량 배터리 같은 사람이 있다. 순두부나 유리를 닮아 깨지기 쉬운 사람도 있다. 그걸 인정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받아들이는 만큼 좁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휴식은 의무이고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건 기질이며

정리하고 이완하는 과정은 오늘의 중요한 과제이다.


60번째 글을 쓰고 나서 산 하나를 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 이해, 자기 수용. 일단 받아들이면 나는 나의 모양만큼 작아졌고, 그래서 응축된 힘으로 다시 있는 힘껏 확장되었다.



알아차림: 종이 위에 펼쳐 놓고 내려다보기

종이 위에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판단 없이(아니, 판단까지 판단 없이) 펼쳐 놓으면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반응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한참을 응시하고 있으면 '세상엔 더 재밌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많아.'라고 생각하게 었다.


마녀는 매혹하는 것인가, 매혹당하는 것인가. 본분을 잊지 말자, 마녀여!



직면하기: 닥치기 직전이 가장 초조하다

문제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는 건 고민이고 대치였다. 하지만 주제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 건 문제 해결이었다. 오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문제가 이미 해결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별일은 없었고, 별일도 결국엔 다 지나갔다.



우선순위: 5초의 지혜

할 일이 잔뜩 쌓여 밀려온다는 느낌에 압도될 때 5초를 센다. 1, 2, 3, 4, 5. 밀려오는 호흡에 할 일들을 나열하고 내쉬는 호흡에 배열을 시작한다. 그 짧고 응축된 시간이 끝날 때쯤 가장 다급하고 중요한(둘 다 해당되는 일은 별로 없다) 일을 찾는다. 다급하거나 중요하다고 '느끼는' 일들은 환영과 같다. 원하는 일은 국 하게 다. 우선순위가 생겼을 뿐이다. 시간이 부족해서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그것대로 잘 된 일이다.

살면서 숨이 가쁠 정도로 다급한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나자마자 했다.


그거면, 됐다.



인정하기: 대안을 거절하면 얻는 자유

일 년 전 밥을 먹다가 나에게 어릿광대 같은 행동으로 장난을 친 사람이 있었다. 초면에 할 거라고 보기 힘든 행동이었고 나는 단호하게 지적했다. 선을 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학창 시절에나 느낄 법한 놀림 후의 빨간 얼굴이 되었고 일 년 내내 그 일이 어이없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나이 먹고도 어른이 되지 못한 '다 똑같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억울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 사건으로 드러난 내 밑바닥이었다고. 보고 싶지 않은 민낯을 그가 건드린 것뿐이라고. 인정하자 일 년 내내 시달리던 악몽서 해방되었다.


처음엔 사과라는 걸 해볼까 했었다. 원인 제공 여부와 관계없이 내 반응에 대해. 그런데 이 부끄러움은 누군가 덜 실수했음을 가린다고 옅어지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우리 각자의 시간을 거쳐 깎여나가 동그래질 거라고. 그 시간의 힘으로 옅어지는 것이라고. 모닝페이지의 마지막 줄엔 이렇게 적었다.


해결하든지, 무시하든지.


나는 어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만큼이나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 일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기분이 나아지려면,

기분이 나빠지려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감사는 수행언어: 말하자마자 이루어진다

어떤 날엔 감사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 질투하지 않고

저 사람이 어떤 면에서 부러운지 살피자.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내지 않고

내 목소리를 고민하면서 살겠다.


감사란 '살피고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강박적 여행자인 티베트의 셰르파들은 돌무더기와 기도 깃발로 자신의 족적을 표시해 인간의 진짜 고향은 집이 아니라 길이며 삶 자체가 발로 걸어가는 여정임을 상기 시킨다.



마녀의 건강법을 쓰면서 이렇게 나아질 줄은 몰랐다. 글에는 정말 마법과 같은 효능이 있는 것일까. 원래 독서는 나에게 숨쉬기 같은 것이었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아서 작년 10월 말부터 올해 2월 말까지 4개월간의 글쓰기는 루틴의 힘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검열과 자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해독제 같은 글쓰기였다. 다만 이제는 좀 더 단순하고 분명한 글을 꿈꾼다.


3월의 몸과 4월의 책에 대해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방법은 사실 단순하다. 스트레스 안 받고 건강하게 먹고 자주 움직이는 것. 이 당연한 것들이 현대에는 방법론까지 만들어가며 해야 하는 억지스러운 것이라서 우린 진정 발전하는 걸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가정엔 이모님들이 있고 직장엔 최첨단 시스템들이 즐비해도 우린 여전히 '다른' 스트레스를 받고 완벽하게 인위적인 것을 먹고 직장인 기준 평균 8시간~10시간은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한다.


가짜로 가득하다.


끊임없이 편리한 방향으로 뻗어나가 효율적인 세상이 되었지만 대책 없이 게으르고 쓸데없이 부지런하다. 되도록이면 덜 하면서 더 해내는 자연스러운 삶.


오늘도, 마녀는 꿈꾼다.




*이 글은 책 <서평가의 독서법>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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