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와 재미는 제로섬 게임*일까?
*제로섬 게임: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실점의 합계가 0이 되는 게임.
마녀로서 재미에 대해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어떤 저울질도 없이 의미만 추구하는 것은 정말 덜떨어진 짓이다. 이 저울질에서 매번 재미보다 의미를 고르면서도 결국 패배감에 젖어 있었음을 인정한다.
욕심은 너무 많고 재미는 너무 적다면, 논리적이고 일관된 기분도 없이 납득도 못하는 일상의 과업에서 번번이 실패하기 마련이다. 열심으로 가득 찬 삶에 기웃거리는 어둡고 연약하고 미약한 무엇, 고립감, 자유도 재미도 아닌 허무는 바빠지면 사라질 사사로운 사치일까? 나는 어느 때보다 재미를 탐구하는 일에 진심이다.
행복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상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리스인 조르바까지는 못 되더라도 행복은 대체로 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늘 할 일에 결코 넣어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이다. 추구해서 얻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다만, 행복은 철저한 감정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받을 수도 있지만 독학도 충분히 가능하다. 감정 교육의 필수 불가결한 중요성에 대해 깨달으면서 연이어 발견한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과대 평가 되었다.
내가 진정 추구하는 건 배고픔일까, 허기짐일까.
그럼에도 마녀도 인간이므로 무언가를 추구하고야 마는데, 이쯤 되면 진정 추구하는 것이 배고픔인지 허기짐인지 헷갈린다. 둘은 같은 듯 다르다. 배고픔은 비움에 집중하지만 허기짐은 채우는 일에 열광한다. 채워짐의 감각은 언제나 느리고 더디다. 인간은 채워진 상태보다 채우려는 기세를 더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불행의 추구이다. 언제나 행복은 불확실하고 불행은 명확하다.
뉴스 토크: 새로운 재미의 등장
최근에 뉴스가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원래 알았지만 몸소 체험했다고 할까. 또한 새벽에 읽은 몇 가지 흥미 있는 뉴스를 카톡에 공유해 두면 짝꿍과 하루 종일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짝꿍과는 수다를 떨기 위해 결혼 계약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매번 생각하므로 모닝 루틴과 맞물려 탄생한 뉴스 토크는 새로운 재미로 변모했다.
인문학: 아하 모먼트(Ah-ha moment)
카페에 들르면 양쪽에서 각각 점원과 키오스크가 나를 반긴다. 키오스크가 일은 잘하지만 키오스크만 덜렁 있는 카페는 어쩐지 썰렁해서 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AI가 썼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설이 더 이상 매력적일 수 없는 것처럼 일은 키오스크가 전부 다 하더라도 나는 사람을 보러 카페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AI의 시대에 인문학이 더 좋아져 버렸다. 세계문학과 고전을 파고들면서 나는 AI 따위가 인간의 불완전함과 결핍을 모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브런치 워크: 봄이 오면 다시 찾을 재미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별명을 짓고, 즐거웠던 시간엔 별칭을 붙이는 것은 나의 자랑이다. 아마도 재작년, 우리는 끝내주던 가을날 10km 내외 거리의 맛집을 하나 정하고는 걸어가서 브런치를 먹고 다시 걸어오는 경험을 했다. 걷는 내내 수다는 끝이 없었고 그 주제는 걸으면 바뀌는 가을 풍경이 랜덤으로 정해줬다. 짝꿍은 다음에도 또 가자고 했고, 나는 우리의 시간을 '브런치 워크'라고 이름 붙였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면 설렐 것이다. 브런치 워크가 떠오를 것이고, 벚꽃 빛깔의 레깅스도 덤으로 즐길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