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은 어떤 곳일까?
삭막하고 척박한,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불모의 땅?
온대, 열대 중심으로 고착된 자연관에 의해 제대로 조명되기도 전에 기후위기를 언급할 때만 소비되는 외면받은 땅이다. 배리 로페즈는 자연을 대상화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거부하고, 북극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인간은 누구나 생에 한 번쯤 기억된 대지에 마음을 집중해야만 한다. 자신이 경험한 특정한 대지에 넋을 놓아야 한다. 가능한 모든 방향에서 바라보고, 경탄하고,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대지의 매 계절을 매만지고 그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상상을 해야 한다. 대지의 생명들과 숨죽인 바람의 모든 움직임을 상상해야 한다. 달의 광휘와 황혼과 여명의 모든 색깔을 기억해야만 한다. N. 스콧 모마데이
목차만 봐도 가슴이 설레고 웅장해진다.
들어가며: 전설만큼이나 먼 땅
1장 큰 곰의 땅 아르크티코스: 우아하고 세련된 이상한 움직임들
2장 사향소: 평온하게 강인하게
3장 북극곰: 통찰하는 방랑자
4장 일각고래: 해석 불가능한 코드
5장 대이동: 숨결이 길이 될 때
6장 얼음과 빛: 공포의 미
7장 땅: 마음을 감싸는 땅, 땅을 감싸는 마음
8장 항로: 열정과 탐욕이 얽힌 순수한 욕망
9장 역사: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
나오며: 영원히 살아 숨 쉬는 땅
북극은 생명에 위협적인 해빙과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냥터가 공존하는 곳이다.
"이 모험의 목표인 노획물의 가치와 포획의 즐거움이 동정심 따위에 희생될 수 없다."
유럽인들은 주제넘은 지적 우월감으로 거침없는 살육을 저질렀지만 북극의 아름다음과 에스키모인의 방대하고 특별한 지식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에스키모인들은] 지금 폰드 만(폰즈 만의 현재 지명)의 현대적인 마을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감정들, 즉 일리라와 카피아가 교차하는 심정으로 고래잡이 선원들을 바라보았다. 일리라는 외경심을 동반하는 공포이며, 카피아는 예측할 수 없는 폭력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공포다. 북극곰을 바라보는 것은 일리라다. 얇은 해빙 위를 걷는 것은 카피아다.
저자는 북극의 생태계에서 가장 큰 위험에 처한 존재는 활머리 고래가 아니라 원주민들의 통합적인 세계관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겐 세계를 통제하거나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서구 과학이 있을 뿐, 저 대지와 인간의 유대관계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고.
북극이라는 장소를 알게 됨으로써 삶의 보편적 요소에 대해 다른 시각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북극이라는 대지가 인간의 의식세계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대지를 이용하고자 하는 욕망은 대지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부유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래잡이 선원들과 다른 모험가들을 북쪽으로 이끈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과 돈을 버는 것이 부일까? 투누니르미우트 에스키모들이 폰즈만의 고래잡이 선원들에게 말한 부, 즉 가족들과 잘 지내며 고향의 대지를 넓고 깊게 이해하는 것일까?
스스로가 아직도 동물세계와 그다지 분리되지 않았다고 느끼곤 하는 에스키모들에게 우리는 자연과 완벽하게 분리된 사람들이다. 인간과 곰은 똑같이 가혹한 기후의 영향을 받으며 생태와 주거의 유사성을 갖지만 서로의 사냥감이 된다는 점에서 훨씬 더 깊은 관계를 갖는다.
에스키모인에게 곰을 만나는 일은 이겨냄으로써 살아남는 극복을 의미한다. 살아남으려면 통찰, 인내, 웃음이 필수이며 가혹한 땅에서 스스로의 삶과 다른 이의 삶이 존재함을 확신하게 된다. (토르나르스크, '힘을 주는 자'. 폴라에스키모들은 북극곰을 이렇게 불렀다.)
유럽인들이 북극을 묘사하는 방식은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서구 진보의 걸림돌이었던 냉혹하고 무관심한 북극이라는 땅에 유럽인들은 다소 낭만적이고, 자아도취적인 이미지를 투영시킨다.
북극의 거대하고 광활한 대지, 눈폭풍을 견뎌내며 대단한 결단과 확고한 인내로 얼음이 가득 찬 강들을 건너는 생물들의 대이동, 가혹함과 숭고함이 공존하는 경이로움.
자기 자신을 포함하며 나아가 그 자체로 신이자 빛인 어떤 세계를 겸허하고 열정적으로 포용하는 일은 아가페적 사랑이며 그것은 지성의 다른 이름이다. 공간이 인간의 인식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므로 우리는 광활한 대지 앞에서 철학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너무 아름다워서 울고 싶어 진다는 그 공간에서, 엄숙하고 냉혹하지만 적대적이지는 않다는 그 공간에서 우리는 삶의 역경과 고난, 그것을 극복하는 인내와 사랑을 배운다. 더불어 절제해야 지킬 수 있을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새로운 장소에 가면 무얼 합니까?"
"듣소."
예민한 감각의 부재와 제각기 다른 욕구로 이 땅에 대해 우리는 각기 다른 태도를 드러낼 수 있다. 에스키모의 이야기가 우리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말끔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고유의 언어를 배우는 일은 그 언어의 발화자들이 땅과 맺고 있는 관계를 알아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야생의 땅이 가진 풍부함과 신성함 속에 존재하는 지혜를 헤아릴 수 있을까? '페르 프레타 학테누스 네가카' 존재 자체를 부정했던 곤경에 처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미지의 바다를 끊임없이 헤치고 나간다는 뜻도 담고 있다고. 인간의 삶이 공포와 성취 사이의 여정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우리 삶에서 경외심과 경탄의 대상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오늘 내가 쫒고 있는 건 세상에서 분리되지 않고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일까? 자주 분리되고 고립되는 세상에서 조화로운 삶이란 무엇인지 자주 생각하는 요즘. 언제 펴도 나를 흔드는 놀라운 책.
*큐레이터 노트: 북극, 경외와 경의 그 사이 힘을 주는 자가 사는 곳.
*오늘의 책: <북극을 꿈꾸다>, 배리 로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