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언어들에서 큐레이션 팀원을 모집합니다.
잘 익은 언어들이라는 생각보다는 작은 책방을 운영하면서,
수없이 쏟아지는 책 속에 보배를 발견하는 일을
함께 할 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분들을 만나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의논해 보고,
소정의 활동비도 지급할 예정입니다.
모임은 한 달에 오프라인 1회, 온라인 1회 정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발걸음 부탁드립니다.
북큐레이션을 공부하고 실천한 지도 1년이 되어간다. 학교 현장에 적용하는 일은 외롭고 고단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생색도 나지 않는 일이지만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매번 설레고 새로운 기획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미술관에 가거나 다른 사람의 큐레이션을 보고 배우면서 일상에서 잃어가던 활력도 되찾았다. 시야가 넓어졌고 머지않아 깊어졌다. 하지만 오래 하려면 함께의 힘도 절실히 필요했다.
며칠 전 SNS에서 한 책방에서 올린 피드를 보게 되었는데, 큐레이션 팀원을 구한다는 공고였다.
평소 눈여겨보았고 한 번 방문한 적도 있는 책방이었다. 집 주변엔 도서관 빼곤 서점이 거의 없어서 작은 책방들이 모여있는 책방 거리는 언제나 주말에 꼭 가야지 다짐만 하고는 못 가는 그런 곳이었다.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는 게 익숙했고 작은 서점은 주인이랑 눈이 떡하니 마주치니 성향상 좀 민망한 구석도 있었다. 언제나 들어가면 빈손으로 나오는 법은 없었지만. 하지만 도서관 독서생활을 시작하고 글쓰기를 이어가면서 도서관과 동네책방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던 차였다.
요사이 나는 내가 뭐 하는 사람일까 싶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인지, 그냥 매일 쓰는 사람인지, 책 고르고 책장을 편집하는 사람인지. 어느 하나도 나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부캐가 늘어나고 있는 사람 정도?
피드를 보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보다 팀원이라는 말에서 되려 고독했던 작년의 수고로움이 스쳐갔다. 진로 책장을 편집하는 과정은 상담 - 책 고르기 - 책장 기획 및 편집 순으로 이루어졌다. 어느 때보다 바쁜 해이기도 했지만 고른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과정은 큐레이션 책에서 읽히는 것만큼 매력적이지만은 않았다.
독자의 독서 목적과 수준, 책의 장르와 난이도 등을 고려해 책을 고르는 일의 어려움은 차치하고라도, '일반적으로 좋다고 하는 책이 과연 모두에게 좋은 책일까?'라는 의문도 생겼다. 한 권의 책에는 그에 맞는 독자가 있고, 한 명의 독자에게는 그에 맞는 책이 있다는 큐레이션의 제1 원칙으로 다시 돌아왔다. 체험은 언제나 가장 훌륭한 교과서다.
2주 후의 큐레이션 모임을 기다리며 이 설렘을 즐겨보려고 한다. 조금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담당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출근길에 생각해 본 관심 주제는 여성, 인문학, 글쓰기, 환경, SF, 추리소설, 다양성 정도였는데 버지니아 울프와 김초엽 사이의 스펙트럼에 있는 책들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은 기획자의 사고실험에 도움이 된다. 머릿속에서 이런 상상 저런 상상을 하다 보면 너무 이상적이라고 느꼈던 일들도 결국 실현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하려는 것은 하게 되어있다.
책 생태계 관련 예산 삭감 소식이 들려오던데 세상은 책을 읽는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걸까, 무시하는 걸까. 어찌 되었든 작년보다는 나은 큐레이터가 될 것이므로, 책 생태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용기를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