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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A

by 뭉클

나이는 18살.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고 예술 전반에 재능을 드러낸다. 쿠키를 굽고 네일아트를 즐겨하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공부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에 시달려 우울감을 보인다. 동그란 얼굴만큼 동그란 미소가 인상적.



A: 이 책을 골라주신 이유는요?


S: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신학교에 입학해. 이 책의 제목인 수레바퀴는 신학교의 전통과 권위 그러니까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권위를 의미하지. 한스는 숨 막히는 학교생활 중에 몽상가인 하일너를 만나게 돼. 그런데 한스에게 롤모델과도 같았던 하일너가 강제퇴학을 당하게 되자 한스는 학교에서 적응하는 게 힘들어졌어. 결국 신경쇠약에 걸리고 학교에서 쫓겨나 아무도 반기지 않는 고향으로 돌아가.


결국 한스는 죽게 되지.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어른들과 교육제도에 희생되어서 방황하다가 인생을 마감하지.


A: 그래서 추천해 주신 건 아니죠?


S: 글쎄, 주인공의 마지막은 비극이었지만 이야기는 언제든 다시 쓰일 수 있어.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이 구절 때문이야.


그래, 하지만 너무 힘들어 지쳐버리면 안 된다.
그러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될 테니까.


A: 헤르만 헤세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렇게 철학적인 책을 썼을까요? 작가에게서 제 모습이 조금 스쳤어요.


S: <데미안>은 14살 때 읽었던 소설인데 20대, 30대 아니 살면서 어느 시점에 읽어도 다르게 읽힐 책이지. 헤세는 한 때 잘 나가던 소설가였는데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평화주의자인 헤세는 부딪히게 되지. "인간만이 자연의 순환에서 벗어난 듯 착각을 한다."라는 말을 할 만큼 시골에서 글을 쓰고 정원을 가꾸면서 영적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었어. 그러니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경고문을 발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


A: 독일 극우 세력이 가만히 있진 않았겠네요.


S: 그들에겐 헤세가 매국노나 다름없지. 헤세의 책은 출판이 금지되었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내와 아들의 투병을 겪으면서 헤세는 칼 융의 제자인 랑 박사에게 정신 분석 치료를 받게 돼.


A: 손발이 다 묶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죽거나 아프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S: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위기의 순간마다 데미안의 도움으로 극복해.


A: 저한테는 데미안이 없는데요?


S: 근데 데미안은 실존 인물일까?


A: 네? <데미안>이 판타지였어요?


S: 데미안은 사라졌을 뿐이지. 실존하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몰라. 인생에서 위기의 순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결국엔 혼자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려주려고 했을지도 몰라. 헤세의 철학적 면모는 <싯다르타>에서 정점을 찍지.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데미안>을 넘어 <싯다르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정도를 넘어서 세상을 포용하는 수준이야. 극도의 성숙. 깨달음은 무르익지.


A: 싯다르타면 불교를 창시한 사람 아니에요? 부다 Budda!


S: 그렇지. 주인공 싯다르타는 인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이었어. 공부도 잘하고 잘생기고. 부모님의 자랑이자, 친구들에겐 동경의 대상이었지. 여자친구들도 주변에 많았겠지? 그렇게 모두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마음속 깊이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지.


A: 저는 아직은 이해하기 어려운 마음 같아요. 절대적인 진리나 초월적인 삶 같은 거요. 거창하게 생각만 많은 건 딱 질색이라서.


S: 싯다르타는 절친 고빈다와 함께 수도승이 되려고 출가하게 돼. 단식이나 금욕을 하면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참선을 하면서 나를 잠깐 잊는다고 해도 결국 현실의 나로 되돌아와야 할지 않을까?


A: 누군가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싱클레어한테 데미안이 있었던 것처럼.


S: 고타마라는 승려가 등장하긴 해. 진짜로 깨달은 사람. 하지만 깨달음은 데미안이 말했듯이 스스로 얻는 것 아닐까? 누군가가 가르쳐준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A: 그럼 또... 떠나요?


S: 싯다르타는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겠다'라고 다짐하면서 고빈다를 스승 고타마에게 맡겨 두고 떠나지. 헤세는 이 책을 쓸 때 본인도 체험하지 않은 일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잠시 글을 쓰는 일을 멈추었다고 해.


A: 근데 이미 출가한 상태인데 또 어디로 떠나요?


S: 싯다르타는 속세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고, 아름다운 기생 카밀라와 사랑에 빠지게 돼.


A: 금욕도 해보고 속세도 겪어보고 나서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걸까요? 결국 스스로 겪어봐야 알 수 있다는 말로 들리네요. 해탈했다가 번뇌로 다시 들어가다니, 생각해 본 게 정말 그런지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요?


S: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A: 계속 떠나네요. 아버지를 떠나서 출가하더니, 절친 고빈다도 사랑했던 카밀라도 떠나고. 홀로서기는 외로울 것 같은데, 자유로울 것 같기도 해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여정, 아니 그러한 길을 찾아내려는 실험이며, 그러한 오솔길의 암시이다.


“아, 고빈다! 나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허비해 왔고, 아직도 그것을 끝내지 못하고 있네.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그런 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네. 오, 나의 친구! 오직 깨달음이 존재할 뿐이지. 그것은 어디에나 있네. 그것은 내 안에 있고, 자네 안에 있고, 모든 존재 안에 있네. 나는 깨달음 앞에서는 알고자 하는 것, 즉 배움보다 더 사악한 적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서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탐구하고 삶이 자기 자신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라고 썼어. <싯다르타>에서는 그것이 배움이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서 왔음을 고백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 수레바퀴 아래에서 어쩔 줄 모르던 한스가 생각나는 밤이야.






데미안

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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