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돌아온 금요일 저녁]
지친 몸으로 다시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책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의 북토크가 있기 때문이다. 책 내용도 좋았지만 작가 조이스박이 궁금했다. 어떤 사람일까. 프로필 사진이나 SNS에서 보이는 것처럼 당차고 목소리는 쩌렁쩌렁할까? 키는 어느 정도에 체격은 어떨까?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M: 오늘은 조금 지치네. 노쇼 no-show는 정말 하기 싫은데 책방 대표님한테 미리 말할 타이밍도 놓쳤고. 근데 가고는 싶고.
D: 좀 쉬었다 갈래? 한 시간 후면 내가 데려다줄게. 북토크 몇 시간 정도 해?
M: 두 시간 정도 한대. 질문하고 사인받고 하면 가 봐야 알겠지만.
D: 그럼, 북토크 하는 동안 난 좀 뛰고 나서 쉬다 데리러 갈게.
M은 북토크가 차로 2-30분 거리지만 지구 건너편에서 하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지던 차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벌써 열명 남짓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작고 조용한 토크가 시작되고 있었다. 조이스박은 생각보다 더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이야기를 해나갔지만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졌다.
이야기꾼에게 홀린 듯 사람들은 질문은 안 하고 책에 내용과 더불어 작가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M은 북토크에 왔지만 강연을 듣고 있는 듯하다. 책을 안(못) 읽고 온 사람도 생각보다 많은 편이군.
'질문할 게 많은데...'
M은 용기를 내 두어 번 손을 들고 질문을 시도하지만 한창 이야기 중인 조이스박은 보지 못한다.
M: '투명인간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손을 드는데 모른다고?'
잔뜩 민망해진다. 질의응답 시간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 참석한 북토크와 달리 이번엔 질문이 없어서 (북토크가 아닌) 어색하게 이어가는 강연이 되어버린 느낌 탓에 손을 들었던 차였다.
M은 '역시나 또 내 멋대로 생각해 버렸군.' 하고 이야기를 계속 듣는다.
(한참 후)
조이스 박:... 질문 있으신 분?
1: 작가님, 어쩌면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
2: 맞아요, 들으면서 빨려 들어갔어요.
3: 저번 북토크 때도 느꼈지만 어쩜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 이름까지 전부 기억하시는지...
M은 그냥 이렇게 집에 갈 순 없다 싶어 이번에도 손을 든다. 아이 콘택트. M은 조금 전까지 폭주하던 모습에 비해 수줍은 소녀가 되어 입을 뗀다.
M1: 처음엔 그냥 흔하디 흔한 페미니즘 에세이인가 했어요. (뻔했다는) 그런데 읽다 보니 여성-남성을 넘어서 '여성성'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되더라고요. 이건 단순히 페미니즘으로 분류되어서는 안 되는 걸까 생각이 들어서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여성성은 어떤 건지 궁금해요.
M2: 전통적인 이야기가 재해석되어야 하고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계속 읽혀야 한다는 구절 인상 깊었어요. 평소에 어떻게 이야기를 수집하시나요? 루틴이나 요령 같은 게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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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아주 작고 내밀한 숲. 조이스 박은 영어교육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영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고 문학 덕후였다. '저는... 가 너무 궁금한 거예요. 저는... 가 너무 재밌더라고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미소 짓는 조이스박은 또 한 명의 문학소녀였다.
재미를 따라가야지. 유머나 쾌락과는 다른,
호기심의 동의어 재미.
여성성을 재해석하며
재미도 자꾸 소생하는 밤.
밝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