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10대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꼭 문예창작이나 국문학과나 문헌정보학과를 지망하지 않았더라도 내게 글쓰기 친구를 만들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글방에 다녔더라면.
하지만 그때의 나만큼 세상도 무지했다. 내향인에 대한 시선도 '사회성 부족'에서 '하나의 성격이며 성향(스펙트럼 - 내향이기만 한 사람은 없다)'으로 인식되는 동안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집단에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평생을 사회 속에서 살아왔지만 그건 단지 집단주의 문화의 일면에 불과했다. 집단의 안녕은 여전히 중요하다. 개인의 욕구와 늘 상충하고 양립할 수 없는 차원에서는 둘 중 하나는 불가피하게 한 발 물러난다. 그래야 일이 굴러가니까.
하지만 개인주의는 집단주의 문화로 들어오면서 이기주의로 낙인찍히거나 여전히 집단주의에 머무른 채 말로만 개인주의를 채택하는 모양새가 되기도 한다. 이걸 동서양 국가 간의 차이나 도시와 시골(때론, 이 구분도 불분명하다)의 차이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집단의 특성에 따라 집단의 화합이 특히 우선시되는 곳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나를 공간 속, 맥락 속의 나로 인식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문학과 영어교육을 전공하면서 개인주의는 내게 신념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집단주의 문화에서 숨 쉬면서 적응해 온 인간이 내세운 논리라기엔 터무니없는 일. 수시로 내적 갈등과 가치 혼란을 느꼈다. 내가 되는 꿈은 요원해보였다. 나 다운 건 유난스럽고 다른 것은 자주 틀린 것처럼 보였다.
대중은 점점 똑똑해진다. 개인일 때 더욱.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개인은 사적인 개인과 완전히 다른 개체다. 온라인의 자아와 오프라인의 그것이 엄연히 다르듯이 우리는 이제 분열이 익숙한 시대에 산다. 마치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처럼. 나도 그 둘이 다르다는 걸 눈치채는데 오랜 시간을 들였으니까.
나조차 분열된 시대에 외부의 분열까지 감당하기에 벅찬 우린 돌아보고 질문할 시간조차 사방에 퍼져있는 미디어에 홀려 잃어버린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질문하고 답은 들을 수 없는 현대인의 고독을 시와 소설에서 읽고 쓴다.
내게 지금처럼 글쓰기 친구가 있었다면, 시 친구가 있었다면.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기보단 지금이 참 좋다는 뜻이다. 내겐 그저 하얀 벽과 뭔가를 적을 도구만 있으면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