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9 (화)
어? 처음으로 새벽에 기침으로 깨는 일 없이 잤다.
(방심은 없지. 한 번 기대했다가 다시 터지니까 두통이나 기진맥진보다 좌절이 더 컸거든.)
근데 시험 감독을 하는 동안에도 발작성 기침은 없었고 단발성 기침 정도로 무난했다. 주기가 길어진 것만으로도 큰 진전. 아픈 몸이 빨리 나았으면 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내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됐다.
(이쯤 되면 성찰과 반추가 특기)
1N년차 직장인의 사춘기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을 다치고 나서 예민해지고 지친 마음을 다스리면서 원심력 반대편으로 계속 도망쳤었다. 남들 눈엔 꽤 열심인 방식으로. (우린 보통 그걸 승화라고 부른다.) 다들 내게 갓생을 산다고 했다.
뭐, 단순 일탈은 아니고 기존 삶을 유지하면서 이런저런 삶의 가능성을 톮아보는 재미난 실험이었으니 겉으로만 갓생인 척하거나 헛된 시간을 보낸 건 결코 아니었다. 내적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뭐든 배우는 거라서 그게 좀 더 극적이거나 무리였을 수는 있었다는 것뿐.
또한 적절한 균형이라든가 워라밸이라든가 하는 말은 죄다 뜬구름이므로 살다 보면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게 되는 것도 균형의 일부라고 느낀다.
체력관리, 멘털 관리, 시간 관리, 경력 관리 모두 잘 해내고 있다고 느끼던 차에 내게 찾아온 발작성 기침은 발작하는 삶과 무척 닮아 있었다. 불안과 강박으로 너덜너덜해진 삶.
집을 나설 때 문 잠금장치를 과도하게 여러 번 확인하기, 교무실을 벗어날 때 책상과 모니터를 계속 확인하기(멍하니 집중은 안 하면서 계속 확인하는 행동만 할 때도 있다), 이해할 수 없이 뻔뻔하고 당당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분노조절의 어려움, 어떤 드라마틱한 민원을 상상하면 지나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경향(대부분 사건은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벌어진다) 등등
"이번 기회에 목 관리 잘하게요, 우리. 목 많이 쓰는 직업이니까."
감기를 앓으면서 몸과 마음의 한계를 알고 살아야 한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건 마음이 약해졌을 때의 얘기고 여전히 루틴은 나의 힘이다. 루틴이 있어야 이벤트도 있는 법이니까. 다만 그간의 분노와 강박, 번아웃과 몸부림을 인정한다. 이따금씩 실망스러운 나도 삭제하거나 숨기거나 미워하지 말 것.
그나저나 나만 믿으라던 약사의 말... 용하네. 지켜봐야겠지만 처방받은 약이 이제 1회분 남았는데 약국에 다시 갈지 말지 망설여지는 걸 보면. 내일 약 없이 배즙으로 살아보다 다시 심해지면 약국에 가기로 했다. 오늘은 좀 기침 없이 자고 싶다.
7. 10 (수)
단발성 기침만 한다. 발작은 없다.
이젠 기침과 명랑이 공존하는 경지.
프리미엄 배도라지즙은 여전히 내 CPR.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잘지,
에어컨 바람에 서늘해진 목구멍에 서늘해져서 깰지,
기로에 놓인다.
언제나 선택은 후자.
7. 12 (금)
생활이 목구멍보다 앞선다. 나아가는 중이다.
더불어 다음 주 시수업 워크시트도 나아가는 걸 본다.
나아간다.
advance. walk towards. better than before.
나으면서 나아가는 모양이 흐뭇하다.
기침으로 절전모드가 되었지만
몸에 집중하는 동안
몸의 소리를 잘 들었고 반응했다.
넘어진 김에 돌아봤다.
애써 삼킨 불구덩이와 생채기도 들여다봤다.
몸이 나를 챙긴다.
시간이 나를 돌본다.
콜록콜록 한 번에 더운 시간을 여럿 뱉어내고
이제 깊은 잠에서 깨어날 시간.
내 옆에 쌓여가는 도서 목록들에 설렌다.
여전히 할 일들이 남아있지만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겠다고 다짐한다.
주문처럼 되뇌인다. 하나씩 하나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