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의 신경질적인 삶*

by 뭉클


_



H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즐긴다. 놀랍게도 그저 본인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 부담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는 건 맞지만 부담만 밖으로 줄줄 새어나간다.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도 아쉬움이야 남겠지만 돌아오는 겨울에 만족감 더 크겠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별을 모아 가둬놓고 흐뭇하게 바라보며 겨울을 기다리는 은둔자 H.


J는 H가 일주일 정도만 해도 될 고민을 한 달 동안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H는 당장에 누굴 도와주고 생색을 내려는 것도 대단한 영화를 누리려는 명예욕이 있지도 않다. H도 애초부터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잔소리를 안 하려고 애썼을 뿐. H에게 신경질적인 잔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문을 쾅 닫고 나가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거나 대들기 일쑤였다. 참다 참다 터지듯 꺼낸 말은 인내심이 부족한 지적질이 되었고 헌신과 배려를 미덕으로 삼는 H에겐 억울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다.


자기 자신의 목표에 몰두하기로 한다. 그러면 남에게 잔소리할 시간이나 에너지는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다 어째 앓는 소리를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여러모로 난감한 노릇. H는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쥐어짜는 방식이군. 삶을 루즈하게 사는 감각을 잃은 것일까?


_



분석에 통달한 나머지, 가가 쓰지도 않은 텍스트까지 읽어버리는 독자는 최악의 독자**만큼이나 작가와 극단의 대치점에 서 있다.



_



H는 어떻게든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한다. 카페에 앉아 노트를 꺼내 떠오르는 정념을 적어나간다. 마치 적는 것만으로 모두 해결될 것처럼. 이해되는 사람과 살아본 적이 없다. J가 이해할 수 없는 관계 앞에서 몸서리를 칠 때 H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리에게 이해와 오해 중 무엇이 디폴트값인지 되묻는다.


"어디 가요?" J는 매번 꼬치꼬치 캐물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하려다 말을 아낀다. 러니까 결국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지만 또 참는다. 어떻게 살 생각인지 묻지도 못한 채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표류한다. H는 다시 자신의 목표에 몰두한다. 하지만 더 이상 J에게 어떤 것도 털어놓지 않고도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수다쟁이 W의 말을 떠올린다. 남들에게 도통 관심이 없고 언제나 답은 본인이 가지고 있으면서 내게 답이 뭐냐고 묻는 여자지만, 희한하게도 내 결정적인 답 또한 W에게서 듣게 되므로 딱히 그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다. J와 너는 그래서 잘 맞는 거야. 도대체 그 까칠하고 괴팍한 애랑 뭐가 잘 맞는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해되는 사람과 살아본 적은 없다. 그게 나 자신일 때조차도.


그러니 이번에도 W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잘 맞는다고 했지, 누구 한쪽이 옳다거나 잘했다고는 안 했으니 이 또한 묘한 대답이다. H는 J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여전히 어디로 갈 건지 오늘 왜 울고 싶었고 어떤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는지 꿈은 왜 모조리 기억나고 그 광기는 어디서 배운 건지 신경질적인 주제에 왜 아직도 당당한지 이해할 수 없다. 이해되는 사람과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다가 딸의 관점에서 엄마와의 시간을 회고하는 글이 재밌어서 나도 H에 관해 써보았다.

**읽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콜록콜록 일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