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의 나르시시즘

매일 조금 더 가까이

by 뭉클

_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몹시 거창하고 근사하게 제가 용납할만한 저 자신에 대해 적고 싶기 때문입니다.)


_



헤맴을 기록하는 일. 성장이란 이전에 가능하지 않던 일이 가능해짐을 뜻한다. 보이지 않던 흐름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대화가 들리고, 이해가지 않던 사람이 이해 가는 그런 과정.



인터뷰*

Q/

멘토-멘티 활동을 했다고 적으셨는데 그 얘기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음... 멘토로서 OOOOO활동에서 예시를 제공하고 멘티가 OO에서 어려움에 겪는 부분을 눈높이에 맞게 설명함... 정도로 적어서 낸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Q/

결국 멘토가 얼마나 활동을 잘했는지 자랑을 한 거네요.


A/

네? 멘토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 아닌가요?


Q/

멘토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A/

멘티의 성장을 돕는 일이요.


Q/

그렇죠? 그런데 왜 멘토가 잘한 일만 적어놓으셨죠?


A/

...



성장을 넘어 성숙한(혹은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힘들어한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창의적인 글쓰기를 무리 없이 해내는 사람에게도 관찰 일지는 어렵다. 그러니까, 글은 누군가를 인내심 있게 지켜보는 일이다. 사람, 사물, 생물, 무생물... 그 누군가를 오래 지켜보는 일은 관찰자와 피관찰자 모두를 성장하게 한다.


관찰일지 쓰기가 어려운 이유:

우리에게 서로를 오래도록 지켜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고, 심리적 허들이 강력하다. 명분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가오지 마시오. 취급 주의.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충분한가? 시간이 주어지기만 하면 되는가? 도대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더 잘 알아갈 수 있는가? 사람은 계단식으로 성장하지 않나? 어떤 계기를 만나고서야 그 성장이 드러나지 않나? 그 순간에 관찰자와 피관찰자 중 누군가 그걸 목격할 가능성은? 피관찰자가 그걸 기억하고 기록할 가능성은?


이쯤 되면 취재의 양과 질은 의심받기 시작한다. 서로를 알 시간을 그렇게 줬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고요? 관찰자는 피관찰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군요. 수시로 기록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어떤 활동을 했다고 적는 것은 멘토의 자랑을 나열한 셈입니다. 멘티의 성장을 인내한 흔적이 보이지 않아요.


성장을 인내한 흔적이라...


그건 분명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다만 언어화되지 못했을 뿐이다. 감정 쓰레기통도 뒤져보고 매일의 일정 기록도 살펴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장하는 주체가 자신의 성장을 얼마나 믿고 인지하고 표현하느냐이다. 표현할 수 있다는 건 표현할 언어를 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에 나는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지 언급했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매일 아침 그렇게 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옷매무새 그 모든 것들이 미칠 영향에 대해서. 어제 한 말을 잊은 사람처럼.


그리고 우리가 수업 중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지에 대해 (감히) 언어화해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열린 질문보다 약간의 선택지가 있는 성장 질문은 우리가 미래관찰일지를 쓰는데 마중물이 되었다. 내가 이전에 이런 작업이 단정적이며 단순하다고 치부했다면 그건 내가 만든 선택지를 피관찰자들이 참고하되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넘어서도록 안내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인내한 흔적을 기록하면서 여러 감정 중에 버릴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감정 쓰레기통을 구태여 뒤져 무엇하겠냐마는, 그 쓸모없음의 쓸모를 발견한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여기 적어둔다.




*얼마 전 입시특강을 듣고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H의 신경질적인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