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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떤 세 문장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잘 써지던가요?
아니죠, 물론. 그렇겠어요? 뭐, 써지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런 마음으로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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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누가 누구에게 쓰는 걸까요?
주체가 객체에게?
객체는 시를 쓸 수 없는 걸까요?
그런데 왜 그렇게들 써대는 걸까요? 그냥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면 어디가 덧나나요?
(...)
감정의 폭발입니다. 마음속에 담아두기엔 견딜 수 없죠. 그 죄책감, 그 사랑, 그 깨달음이요. 때론 지적인 힘이 그래요. 정념은 나쁜가요? 아니요. 다만 모두가 모두에게 정념으로 다가갈 수는 없을 따름입니다. 가끔은 건조한 어투가 더 사람을 흔들어 놓기도 하거든요. 물론 MZ는 심오한 전략이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로 감정이 없죠. 그런 비효율적인 건 안 키워요. 돈이 안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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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김리윤의 관념적, 서사적 세계에 발을 붙이지 못한 이유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몸 없음. 우리에겐 어떤 육체성이 시를 읽히게 한다고. 백은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한동안 김리윤이 등장했다. 비현실이고 가상현실이지만 믿어지는 것처럼 시가 아니려고 하지만 '우리가 시라고 부르는 것'에서 벗어난 '시'임을 인정했다.
개인을 이해하지 않고 집단을 이해할 수 있을까? 네
집단을 이해하지 않고 개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오
적어도 집단 속 개인은 분명 연구대상이다. 해체와 훼손을 일삼는 우리는 공감, 진정성, 쓸모로 화합을 이루려는 무리와 불화한다. 사과하지 않고 계속 싸운다. 이건 화해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먹음직스럽게 생긴 도넛보다 투명한 쓰레기에 더 신뢰가 간다.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정신없이 흘러가는 삶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대로 가다, 툭툭, 끊긴다. 누구보다 집중해야 쓸 수 있는 글을 백은선은 쓴다.
시간, 시대가 주는 경험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2000년대에 공부하고 2010년대에 일을 시작한 사람의 서사를 직면하는 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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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 읽어야 할 소설책 하나 추천해 주세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추천합니다. 읽을 때마다 펑펑 울었어요. 그냥 수다를 떨듯 통화하는 내용이었는데 어느새 몰입해서 마지막까지 도달했을 때 몰아치는 감정이라니.
소설과 에세이, 어느 쪽이 더 쉬우세요?
에세이는 100% 진실인 척하는 픽션이고, 소설은 남의 얘기인척 하는 일기장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나를 지나치게 드러내는 일이 익숙하지 않지만 내 경험에 내가 질려버릴 때가 있으니까요.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하게 되면 적어둬요. 절대 될 수 없는 나도 적어두고요.
기억과 마음에 대해 주로 쓰시는데요. 이번에도 그런가요?
네. 쓰면 쓸수록 기억과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이 기억과 마음의 주체인지 아닌지 헷갈리고요. 어느 순간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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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백은선의 시가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며 소설도 에세이도 시도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을 쓰는 일을 해내고 있다고 했다. 잘 쓴 거죠.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좋은 글에는 알맹이가 있는 법이거든. 괜히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아도 다 그 알맹이로 가는 길일 거예요. 그냥 멋있어 보이려고, '시'처럼 보이려고 허세 부리는 거랑은 다르지.
자기가 자기를 초과하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글 쓰는 사람한테 그게 제일 중요해요. 너무 진지하게 내가 되려고 할 때, 어디까지가 진짜 나인지, 그건 확실히 나인지...
시는 소설보다 그림에 더 가까웠는데, 백은선의 시는 영화를 더 닮았다. 계속 이동했고, 층층이 쌓였고, 하나씩 풀어냈다. 릴에 감긴 필름처럼. 구조와 형식에 대한 고민. 내용을 잡아주는 구조에 대한 고민. 그건 찬탄과 동경에서 끝나지 않고 자기만의 글을 쓰는 방법이었다.
평소보다 합평으로 가는 길이 길었다. 시인은 진실 두 가지와 거짓 한 가지를 지어내 써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게 거짓인지 맞춰보라고. 이 글을 쓰는 동안 몇 가지를 깨닫게 된다.
거짓말을 촘촘하고 뻔뻔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진실에 대해 쓰면서도 내 기억은 얼마나 믿을 만 한가.